ADVERTISEMENT

“주차료보다 불법 주차 과징금이 더 싸”…도로 위 흉기로 밤새 방치된 화물차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기사 이미지

대구시내 한 거리에 불법 주차된 화물차가 갓길을 차지하고 있다. 25일 대구미술관 앞(삼덕요금소→경기장 방향)에 화물차가 여러 대 주차돼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20일 오후 11시쯤 대구시 수성구 두산오거리에서 지산역 방향 4차선 도로. 손희성(32·수성구 만촌동)씨의 SM7 차량이 4차로로 달리다가 급히 멈췄다. 뒤따르던 차량 10여대도 급정거했다. 도로 가장자리 차로에 커다란 기름탱크를 실은 트럭이 차로 밖으로 튀어나온 채 불법 주차돼 있었기 때문이다. 손씨는 “급정거하면서 휴대전화가 차량 유리창에 부딪혀 케이스가 부서졌다”며 “날씨가 흐려 유조차를 못 봤다면 기름 탱크를 추돌했을 것 아니냐”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신천동로 등 51곳에 상습 불법 주차
야간 시야 확보 어려워 사고 유발
“차고지 조성 중”…대책 마련 시급

이준수(27·남구 대명동)씨의 퇴근길은 앞산순환도로. 매일 자정쯤 그는 달서구 상인동에서 앞산순환도로를 거쳐 집으로 간다. 이때 습관적으로 중앙선 가까운 차로로 달린다. 앞산순환도로 갓길에 불법 주차된 화물차들 때문이다. 그는 “눈이 나빠 밤엔 서행하는 갓길 쪽으로 달리고 싶지만 커브만 돌면 철근 등을 실은 트럭이 눈 앞에 나타난다”고 불안해 했다.

지난 6월 19일 오전 4시쯤 수성구 두리봉 터널 부근 도로. A씨(19) 등 4명이 탄 승용차가 14t 화물차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3명이 사망했다. 사고 원인은 커브를 돌던 A씨의 승용차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갓길에 불법 주차된 화물차를 추돌한 것이었다.

대구 도심의 화물차 불법 밤샘주차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화물차의 밤샘주차는 운행정지(5일)나 10만원 이상 과징금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운전자와 보행자의 눈을 가려 대형 사고를 유발하는 ‘도로 위 흉기’다.

기사 이미지

26일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화물차 불법 밤샘주차 상습지역은 도심에만 51곳이다. 제일 많은 곳이 북구다. 상습 주차구역이 18곳이나 된다. 신천동로 일대와 엑스코 주변, 대구실내체육관 주변 등이다. 수성구와 달서구가 각각 8곳으로 다음 순이다. 자연과학고 삼거리~시지이마트 앞, 인터불고호텔 주변, 앞산순환도로 일대 등이다.

대구경찰청 관계자는 “화물차 불법 주차가 근절되지 않아 지난 6월 말부턴 아예 지역별 6명의 전담 경찰관과 순찰차량 2대를 배치해 집중 단속을 벌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6월 20일부터 최근까지 경찰은 밤샘 주차 상습지역 51곳에서 2893건의 화물차를 적발해 지자체에 통보했다.

단속해도 불법 밤샘주차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구시엔 차고지 등록 의무가 있는 1.5t 이상 화물차가 1만3000여대가 있다. 하지만 대구시가 운영하는 공영 화물차 차고지는 1308대 공간뿐이다. 1.5t 이상 화물차 대부분은 개인적으로 돈을 주고 마련한 차고지 등에 차를 세워야 한다. 송현동에서 만난 한 40대 화물차 운전자는 “누가 돈을 계속 들여가며 임대한 차고지에 차를 세우겠느냐. 과징금을 내는 게 더 싸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260억원을 들여 내년 완공 예정으로 동구 신서혁신도시에 공영 화물차 차고지를 조성 중이다. 달성군에도 2019년 완공을 목표로 공영 화물차 차고지 조성에 들어간 상태다. 시민들은 “임시로 밤에 운전자들이 잘 볼 수 있게 상습 주차지역엔 ‘안전펜스’라도 설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