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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같은 침대에 누워 다른 꿈을 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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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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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강전 1국> ●·커 제 9단 ○·강동윤 9단

6보(60~72)=적당히 밀고 밀리는 중앙전은 부드러운 타협으로 보이지만 두 기사의 속내는 타들어가는 도화선의 불꽃처럼 치열하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랄까. 중앙에서 엉켜 터덕터덕 벽을 쌓고 있으나 꿍꿍이의 방향은 다르다. 흑은 이미 좌상 일대 백의 강력한 두터움의 그늘을 상당 부분 지워버렸다는 전과를 올렸다. 백도 비슷하다. 60으로 어깨를 짚어 우변 잠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62부터 72까지, 제압돼 있던 백을 움직여 하변의 백의 영역으로 탈바꿈시켰으니 흑의 전과에 뒤지지 않는다.

72로 하변을 건널 때 흑의 다음 한 수가 어렵다. 수성(守成)을 생각한다면 A가 무난하고 공략을 꿈꾸면 B를 노려볼 수 있겠는데 커제도 결정이 쉽지 않은지 수읽기의 숲으로 들어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기로다. 약점을 보강하는 그림은 빤하니까 적극적인 공격의 추이를 볼까.

결론부터 말하면 ‘참고도’ 흑1의 공략은 무리다. 백2부터 흑9까지의 공방으로 하변에 게릴라전의 근거를 확보해도 백10, 12로 봉쇄망이 뚫려서는 흑이 좋을 게 없다. 묘한 흐름이다. 전국의 실리와 세력의 균형으로 판단할 때 조금이라도 흑이 유리하다는 게 검토진의 견해인데 커제의 표정은 꼭 그렇지도 않다는 느낌? 문득, 몸을 뒤로 젖혀 바둑판을 멀리 바라보던 커제의 손이 움직인다.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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