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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로마, 평창, 그리고 인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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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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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JTBC 디지털뉴스룸 부장

2007년 여름 20세 이하(U20) 월드컵 축구 대회 취재차 캐나다 몬트리올에 갔다. 기성용·이청용 등이 뛴 U20 대표팀은 미국·폴란드와 비기고 브라질에 한 점 차로 져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당시 한국의 세 경기가 열린 곳이 몬트리올 올림픽 경기장이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주경기장이었던 그곳은 지붕 개폐식 실내 경기장이다. 여닫는 데 드는 막대한 전기료와 관리 비용 탓에 햇빛이 필요한 천연잔디 대신 인조잔디가 깔려 있다. 한때는 메이저리그 몬트리올 엑스포스(현 워싱턴 내셔널스) 홈 구장이었으나 2004년 구단이 연고지를 옮긴 뒤로는 이벤트 전시장 정도로 사용됐다. U20 월드컵을 열면서 야구장 전광판이던 한쪽 벽면은 검정 휘장으로 가렸고, 부채꼴 야구장은 펜스를 둘러 직사각형 축구장으로 꾸몄다. 유랑 서커스단의 쇠락한 천막 공연장을 보는 듯했다.

이 경기장의 설계 당시 건설 비용은 1억3400만 캐나다달러. 그러나 잦은 설계 변경과 사고 탓에 16억1000만 캐나다달러를 투입하고서야 완공할 수 있었다. 그 빚은 올림픽이 끝난 지 30년 만인 2006년 다 갚았다. 그 때문에 경기장 별명도 ‘더 빅 오(The Big O)’라고 쓰고 ‘The Big Owe(빚더미)’라고 읽는다.

지난 21일 이탈리아 로마의 비르지니아 라지 시장이 2024년 올림픽 유치 반대를 선언했다. 그는 “올림픽 유치를 지지하는 건 무책임하고 감당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로마가 1960년 올림픽 개최를 위해 진 빚을 아직도 갚고 있다”는 것이다. 60년 가까이 빚을 갚는 로마와 비교할 때 30년 만에 빚을 턴 몬트리올은 ‘선방’한 셈이다.

내일이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 D-500일이다. 지난 7월 공개된 감사원의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 실태’ 감사 결과를 보면 예상 적자 규모가 최소 2244억원이다. 남은 준비와 실제 대회 운영에서 그 규모가 늘어날 게 뻔하다. 그 정도는 이제 국민에게도 ‘상식’이다. 입을 다물고 있는 건 아무리 지적해도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당국과 강원도 및 조직위 등 주최 측에 ‘쇠 귀에 경 읽기’이기 때문이다. 옳지만 싫은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게 유행인 시대다.

그 와중에 강원도 평창이 지역구인 염동열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18일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경기장의 사후관리를 ‘서울올림픽기념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맡기자는 것이다. 공단 명칭에서 ‘서울올림픽기념’을 떼자는 내용도 있다.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예산 절감과 효율성. 하지만 속내가 뻔하지 않은가. 국민적 반대를 무릅쓰고 건설을 밀어붙인 그 많은 경기장의 사후 관리 비용 책임을 강원도민만 지지 않고 온 국민에게 나눠 지우겠다는 것 아닌가. 어차피 의원으로 뽑아주는 건 지역구민이니까.

인천시 지역구 의원들은 느끼는 게 없나. 인천도 2014년 아시안게임 개최에 따른 빚더미에 짓눌려 허덕이는데 국민체육진흥법을 더 고쳐 아시안게임 경기장 관리까지 국민체육진흥공단에, 아니 온 국민에게 떠맡기지 않고 말이다.

장 혜 수
JTBC 디지털뉴스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