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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바스키아·코헤이 나와… 아이 같은 단순한 마음으로 골랐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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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호 14면

고키타 토무의 ‘이혼’(2008) 앞을 걸어가고 있다. Photographer Hong Jang Hyun Photo Production Gary So @ Mad Carrot Production

K팝의 선두주자인 빅뱅의 탑(본명 최승현·29)이 현대미술품 경매 큐레이터가 됐다. 세계적인 경매회사 소더비와 함께 ‘#TTTOP’이라는 이브닝 세일 이벤트를 기획, 10월 3일 오후 6시 30분 홍콩 컨벤션센터(프리뷰 전시 9월 30일~10월 3일)에서 개최한다. 272년 전통의 소더비가 아시아 팝스타와 함께 경매 이벤트를 공동 기획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개인 소장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미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가의 작품 중에서 탑이 고른 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19일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와 이어 진행된 프리뷰 전시장 투어를 함께하며 탑으로부터 이번 행사를 기획한 사연을 들었다. ?

키스 해링의 ‘무제’(1982) 시리즈를 보고 있는 탑

장 미셸 바스키아의 ‘보병대’(1983), 캔버스에 아크릴, 165 x 230.5cm

조나스 우드의 ‘무제(갈색 톤 위에 빨강과 분홍)’(2009), 리넨에 유채, 190.5 x 122cm

가네우지 텟페이의 ‘눈사태#1’(2016), 플라스틱, 레진 등, 60 x 45 x 30cm

“젊은 사람들이 미술에서 감동 느꼈으면” 작품은 어떻게 골랐나. “그냥 아이 같은 단순한 마음, 제가 탐나고 갖고 싶은, 우리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것들을 모았던 것 같아요. 좋은 영감을 주겠다 싶은, 이것도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겠지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봤고요. 바스키아 같은 경우 인종차별이라는 주제를 무섭게 그린 작품들이 많은데 그런 건 그렇게 좋아하지 않거든요. 이번에 고른 작품은 바스키아 작품치고는 밝고 발랄한 에너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죠.”(소더비 측은 탑이 원하는 아티스트 리스트를 먼저 보내왔고 어울리는 작품을 찾아보기 시작해 탑의 취향이 반영된 28점을 고르게 됐다고 덧붙였다)


단색화 작품이 많던데. “한국 미술이 가진 명상적인 느낌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습니다. 외가쪽 모든 여성들이 미술을 전공해 그런 걸 많이 보면서 자라왔고 외할아버지의 외삼촌이 김환기 화백, 이모부의 아버지가 이인성 화백이기도 하시고요. 김환기 화백 어린 시절 일기장 중에 ‘거장의 회화 안에는 음악이 있는 것 같소. 나는 어떤 노래를 부를까요. 계속 그 노래를 찾아갈 것이오’이라는 대목을 읽고 감동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음악 하는 사람, 캐릭터를 분석해서 몸으로 표현하는 사람으로서, 모든 그림 안에 운율이 있다고 생각했고 거기서 영감과 힌트를 얻고 또 감성을 배울 때가 많았습니다. 전 미술이라는 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특히 젊은 사람들이 미술의 고마움을 느끼고 감동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계속 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환기의 ‘비상’(1960·캔버스에 유채·62.9 x 92.7cm) 앞에 선 탑

김환기 작품 중 이번 것을 고른 이유는. “사실 김환기 화백의 작품은 점화로 유명한데, 70년대 말부터 완전히 미니멀로 가셨잖아요. 전 그 전 단계인 초창기 작품들도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68년도 일기장에서 그런 질문을 봤어요. ‘선이냐 점이냐. 나는 점이 더 개성적인 것 같다. 나는 점이다.’ 그리고나서 점화를 그리기 시작했대요. 외국에 계시면서도 한국을 너무 사랑하고 한국 도자기, 하늘, 새 이런 것들을 그리는 걸 굉장히 좋아하셨죠. 저는 특히 김환기 선생님의 블루 컬러를 몹시 좋아해요. ‘내 회화의 블루는 서양의 블루가 아닌 한국의 청색이다’는 말을 하셨는데, 어릴 적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조금씩 공부를 하고 느끼는 과정에서 이제 조금 알게된 것 같아요. 이번에 나온 ‘비상(Flight·1960)’는 미니멀로 가기 직전에 그린, 청색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1년 전부터 기획했다고 하는데. “사실 1년 반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일본의 어떤 컬렉터를 통해 소더비 관계자를 알게 됐고, 소더비도 젊은 컬렉터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듣게 됐어요. 이게 굉장히 상업적으로 보일 수 있고 한도 끝도 없이 안 좋게 보일 수도 있는 리스크가 제일 걱정이었는데, 그래서 저도 아예 개런티 없이 하겠다고 했어요.”


경매 수익금 일부는 아시아문화위원회(Asian Cultural Council·ACC)에 기부된다고 하는데. “저희 어머니나 이모를 봐도 그렇고 주변에서 재능이 많은데도 형편이 어려워 미술을 포기한 분들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어떤 단체에 기부할까 고민하다가 아시아의 신진 예술가를 후원하는 ACC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무라카미 다카시나 코헤이 나와도 학생 시절 이 재단 장학금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무라카미씨에게 먼저 연락했는데, 금세 답장이 왔어요. ‘저도 ACC에 굉장히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저도 동참합니다. 우리 함께 잘해봅시다’ 하시더라고요. 그분은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오타쿠적인 문화를 키치하고 팝아트로 승화시키는 작가인 만큼 둘이서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작품을 만들면 재밌겠다 생각했죠. 다음날 바로 제가 쓰던 베개를 세탁 않고 보내면서 거기에 무라카미씨의 웃는 꽃을 그려달라고 했어요. 완성되면 아크릴 박스에 넣어 벽에 걸겠다고. 예민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뒤샹이 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피카소나 마티즈 같은 페인터들 밖에 없던 1910년대에 ‘이것도 미술이다’ 한 것을 좀 오마주해보자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제목도 ‘자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sleep, or not to sleep - that is the question)’이라 붙였고요.”


“탑의 취향이 트렌드 변화 보여줘” … 총 28점 추정가 130억원 패티 웡 소더비 아시아 의장은 이번 기획에 대해 “국제 경매시장에서 한국 현대미술이 높은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고, 젊은 컬렉터로서 탑의 취향은 세계 트렌드 변화를 선두에서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매에는 28점이 나온다. 추정가 총액이 9000만 홍콩달러(약 130억원)에 달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앤디 워홀·키스 해링 같은 서양 거장, 백남준·이우환·정상화·박서보 등 한국 거장, 그리고 박진아 등 젊은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구성됐다.


탑이 작가들과 함께 컬래버레이션한 작품도 여럿이다. 탑과 절친한 사이인 일본의 코헤이 나와는 ‘픽셀-탑(둠 다다)’(2016)을 새로 제작해 내놨다. 탑의 뮤직비디오 ‘둠 다다’에서 나온 탑과 인형의 모습을 특유의 크리스털 구슬 작업 시리즈로 만들어냈다.


일본의 저명한 컬렉터이자 탑의 지인인 마에자와 유사쿠는 자신의 소장품인 장 미셸 바스키아의 ‘보병대(Infantry·1983)’를 내놨다. 바스키아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가 활동하던 80년대 뉴욕의 활기찬 모습을 특유의 노랑색 화면에 구현한 작품이다.


이우환 화백의 ‘바람과 함께’(1988)도 눈길을 끈다. 저명한 개인 소장가의 의뢰로 제작한, 가로세로 2m가 넘는 대작이다. 분방한 필치의 그림이 작가의 분출하는 에너지를 느끼게 해준다.


이밖에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을 캔버스로 옮겨 놓은 듯한 미국 조나스 우드의 ‘무제(탄 위의 레드와 핑크)’(2010), 금속 표면에 자잘한 낙서가 인상적인 이탈리아 루돌프 스팅겔의 ‘무제’(2012), 입체파의 후예인 미국 조지 콘도의 ‘하우스키퍼의 다이어리’, 후기 개념주의 회화의 맥을 잇고 있는 일본 고키타 토무의 ‘이혼’(2010) 등이 눈길을 끈다. ●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소더비·이안아트컨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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