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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스’와 신경외과의 현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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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호 30면

일러스트 강일구

최근 TV 드라마 ‘닥터스’가 큰 인기를 얻고 마쳤다. 드라마는 두 신경외과 의사 유혜정(박신혜)과 홍지홍(김래원) 사이의 러브스토리뿐만 아니라 실제 신경외과 의사의 진료 영역을 비교적 실감나게 소개했다. 특히 최근 신경외과 영역에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의료진단 기술과 수술기법들이 실제 환자의 사례와 함께 생생하게 그려졌다.


과거 드라마에서 볼 수 있었던 신경외과 장면은 교통사고·뇌출혈·뇌종양 수술 또는 혼수상태이거나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환자의 수술 치료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선 반측성 안면경련, 수전증, 각성 수술, 심부 뇌자극수술(DBS) 등 그동안 의학 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웠던 신경외과 임상영역을 잘 다뤄 필자와 같은 신경외과 전문의에게도 신선한 느낌을 줬다


실제로 신경외과 영역의 치료 기술은 최근 신경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괄목한 성장을 이뤘다. 일례로 이비인후과 영역의 보청기나 인공와우 등으로도 치료가 어려운 난청의 경우 뇌간에 전기 자극을 줘 새롭게 청력을 회복하는 수술도 필자의 수술팀에 의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또한 SF 영화에서 봤던 인공 시력, 기억력 재생, 감정의 조절 등 수많은 뇌의 기능에 대한 이해와 이를 통한 기능의 조절이 곧 신경외과 임상영역으로 편입될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인류 건강증진에 큰 공헌을 할 것이란 장미빛 미래의 신경외과가 과연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임상분야에서 전통적 의미의 신경외과란 메스를 사용하는 외과 학문의 하나다. 물론 최근 메스의 의미는 과거와 달리 다양한 기법의 적용으로 바뀌었다.그러나 아직도 외과란 신체 부위에 직접적 변화를 주어 치료를 하는 위험성이 따르는 의학 분야다. 특히 뇌와 척수의 조직은 다른 어떠한 인체 장기보다 예민하고 쉽게 손상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수술 과정에서 어떻게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치료하는가가 아주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배우기 위해 장기간의 전공의 수련과정을 거친 후 전문의 수련 과정과 연수를 추가적으로 받게 된다. 이러한 수련과 연수, 연구 과정을 통해 배운 기술과 지식으로 실제로 환자를 치료하며 느끼는 신경외과 의사의 희열과 보람은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벅차고 감동적이다.


그런데 우리의 의료 현실은 이미 희열과 보람을 점차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 요새 우리나라에서 신경외과란, 속된 표현으로 ‘수련시절 고생은 죽어라 하지만 획일화된 보험제도 때문에 대접도 받지 못하는 신세’다. 또 사명감보다는 응급환자나 중환자를 돌보려고 늘 병원 근처를 떠나지 못하기 때문에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게 된다. 의료사고의 위험도 안고 산다.


이 같은 신경외과의 의료 현실을 의료인은 물론 정부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누구도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자 나서지 않는다.


임상 여건도 어렵지만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뒤떨어지고 부족한 연구 여건이다. 신경외과 의사는 의과대학에서 교수를 하면서 환자를 보기도 하지만 연관 연구도 수행해야 한다. 드라마 ‘닥터스’에서 주인공이 심부뇌자극 관련 임상연구를 하는 장면도 그러한 맥락의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와 달리 국내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신경외과 교수가 드라마처럼 의미있는 임상연구를 하기에는 환경이 턱없이 열악하다. 필자의 판단에 국내에서 제대로 연구다운 연구를 하는 신경외과 교수는 극소수라고 생각한다.


국내 연구비는 크게 늘었다. 정부나 기업에서 연구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뇌에 대한 연구비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도 매우 부족하다. 필자는 최근 한 국제학회에서 미국 교수를 만났다. 그는 자기가 근무하는 대학과 정부로부터 각각 5000만 달러의 연구비를 받았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이 연구비로 뇌기능 조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큰 성과를 거두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한국 연구자로서 시기심이 날 정도로 부러웠다. 우리의 현실은 이와 너무나 다르고 정부 관련부서의 상황 인식도 부족한 것 같아 무척 아쉽다.


신경과학 연구, 특히 뇌 연구 중 임상영역과 연계된 질병의 기전과 치료 방법의 연구는 임상 적용까지 기간도 짧고 연구결과가 바로 인류복지 증진에 도움이 된다. 최근 이슈로 떠오른 인공지능과 뇌지도 연구는 향후 10년 간의 뇌과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인공지능과 뇌지도의 연구도 임상과 맞물려 뇌기능 연구와 함께 진행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뇌기능의 이해는 향후 직접적으로 신경기능 조절을 통한 치매, 정신질환 등 다양한 신경계 질환을 치료할 수는 신경외과 영역의 신세계를 열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정부의 관심과 인식 부족이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 대한민국 신경외과의 현실이 어떤지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장진우연세대 신경외과 교실 주임교수·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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