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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못 먹느냐?" 의원들 고성···"사상 초유의 국무위원 필리버스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3일 국회 교육사회문화부문 대정부질문에서 국무위원들이 장시간 발언을 하는 보기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지난 2월 테러방지법 통과 저지를 위한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장시간 발언을 통한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연상케 했다. 대정부질문 이후 예정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 처리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였다.

이날 오전 새누리당은 해임 건의안 처리를 막기 위해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의원들은 본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오전 10시에 예정된 대정부질문은 오후 2시 30분에야 시작됐다.

질의에 나선 여당 의원들은 국무위원의 답변을 길게 유도했고, 국무위원들은 최대한 길게 답변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대정부질문에서 질의하는 의원의 발언 시간은 15분으로 제한되고 초과할 경우 마이크가 꺼진다. 하지만 답변자의 발언시간엔 제한이 없다.

새누리당 의원 중 첫 질의자로 나선 정우택 의원은 국무위원들을 두루 불러 현안에 대해 충분히 발언하도록 기회를 줬다. 질의가 끝나자 박주선 국회부의장은 “(질문과 답변에) 통상 30분 정도 걸리는데 정 의원은 55분을 쓰셨다”고 말했다.

다음 질의를 한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은 황 총리에게 “박근혜 정부에 100점 만점에 몇 점을 주겠느냐”고 질문하자 황 총리는 세계 경제 사정 등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유 의원이 발언을 끊고 “길게 설명하지 말고 질문에 요지만 짧게 답해달라. 100점 만점에 몇 점이냐”고 재차 물었다. 황 총리는 “그렇게 말씀 드리긴 어렵고…”로 다시 운을 떼며 또다시 국제경제 상황과 북한 핵문제 등을 설명했다. 유 의원은 이후 두 차례 더 황 총리의 발언을 끊으며 재촉하다가 결국 “더 듣고 싶지만 시간이 없으니까 그만 듣겠다”며 답변을 막았다.

이어 야당의 반발이 터져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원내대변인은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정부 관계자를 대거 소집해 시간 끌기를 목표로 답변 늘이기를 지시하는 것을 의원들과 다수 당 관계자들이 목격했다”며 “사상 초유의 정부 필리버스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번째 질문자로 나선 더민주 홍익표 의원은 모두발언에서 “국무위원들은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국회의 권위와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새누리당 임이자 의원은 통상적으로 하는 모두발언을 생략한 채 곧바로 이기권 노동부 장관을 불렀다. 그러곤 “지난해 이뤄낸 노사정 대타협의 핵심 내용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한 뒤 약 14분간 설명을 들었다. 그러자 더민주 의원들 쪽에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적당히 하세요 이제!”라는 고성이 터져나왔다. 새누리당 홍철호 의원은 이준식 교육부총리가 자신의 물음에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짧게 답하자 “좀 답변을 깊게 해 달라”라고 말해 의원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오후 7시가 되자 새누리당은 본회의를 중단하고 또다시 의총을 소집해 “야당이 해임 사유도 되지 않는 건으로 해임건의안을 남용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김도읍 부대표는 “정 의장은 식사를 하러 가면서 식사 정회도 없이 본회의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며 “국무위원들은 식사도 못 하고 답변 자르기, 윽박 지르기를 당하며 대정부 질의에 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후 7시 50분쯤 다시 본회의장으로 돌아온 새누리당 의원들은 단상에 있던 정세균 의장과 고성을 주고받으며 충돌했다. 의원들이 “국무위원은 인권도 없느냐. 식사할 시간은 줘야 할 것 아니냐”고 고함치자, 정 의장은 “새누리당 의총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 아니냐” “의원들은 필리버스터 할 권한이 있지만 국무위원은 필리버스터 권한이 없다”고 맞섰다.

한편 청와대 핵심 인사와 비선라인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대해 더민주 홍익표 의원이 “재단 설립 취소를 검토할 용의가 있느냐”고 질문하자 주무 장관인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금까지 검토한 것과 외부의 법률자문에 따르면 현재로선 설립을 취소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없는 것으로 검토됐다”고 답했다. 황 총리는 관련 의혹 제기에 대해 “유언비어와 관련해 불법에 해당하는 것은 의법조치도 가능한 것 아니냐”며 “의혹은 누구든지 얘기할 수 있지만 의혹제기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 총리의 발언에 대해 더민주 금태섭 대변인은 “독재시대의 악법을 되살리겠다는 의미인지 분명하게 해명하라”고 거세게 요구했다. 국민의당 손금주 대변인도 “의혹을 조사할 수 없게 국감 증인채택조차 막으면서 유언비어라는 핑계마저 만들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충형ㆍ안효성 기자 adche@joongang.co.kr

[사진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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