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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이틀만 빼고, 곰이 끝까지 웃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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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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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두산이 1995년(전신 OB시절) 이후 21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1루측 관중석을 가득메운 두산팬들은 우승이 확정되자 응원가를 목청껏 불렀다. [사진 김민규 기자]

2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t-두산 경기. 두산이 0-1로 지고 있던 6회 말 무사 2루에서 오재일(30)이 kt 선발 주권(21)의 체인지업을 받아쳐 오른쪽 담장을 넘겼다. 2-1로 역전하는 투런포이자 올 시즌 두산의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하는 축포였다. 두산 선수들이 포효했고, kt팬 일부를 제외한 1만9000여 명의 팬들도 벌떡 일어나 환호했다.

막강 선발진
최강 장타력
무색무취 리더십

김태형(49) 두산 감독은 담담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동점주자 국해성(27)과 역전주자 오재일이 더그아웃으로 들어오자 가볍게 주먹을 맞대는 것으로 격려하고 뒤로 빠졌다. 김 감독의 메시지는 짧지만 묵직하다. 말수가 적은 대신 행동으로 실천한다. 원래 시원시원한 성격의 그는 부임 첫 해인 지난해 정규시즌 3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여유와 자신감이 넘친다. 두 번째 우승을 기대하는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만도 한데 김 감독은 “지난해 우승팀이 다른 목표가 있겠나. 당연히 우승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날 9-2로 이겨 9연승을 달린 두산은 1995년 이후 21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90승1무 46패)을 차지했다. 올 시즌 두산이 1위 자리를 내준 것은 이틀(8월 6일, 10일)뿐이었다. 2위 NC와의 승차는 11.5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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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경기를 남기고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한 두산은 2년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사진 김민규 기자]

두산 선발 장원준(31)은 6이닝 동안 안타 8개를 맞았지만 8개의 삼진을 잡고 1실점으로 호투했다. 장원준이 15승(6패)째를 올리면서 두산은 니퍼트(21승)·보우덴(17승)·유희관(15승) 등 한 시즌 15승 이상 투수를 4명이나 배출하게 됐다. 프로야구 35년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김 감독은 “모든 선수들이 평균 또는 그 이상의 활약을 해줬다”고 평가했다. 미국에 진출한 김현수(28·볼티모어)의 공백은 박건우(26)·김재환(28)·오재일이 함께 메웠다. 정수빈(26)의 백업이었던 박건우는 올해 타율 0.334를 기록하며 주전으로 도약했다. 10년 가까이 유망주에 머물렀던 오재일(26홈런·87타점)과 김재환(36홈런·119타점)도 동시에 폭발했다. 두터운 선발진과 강력한 장타력을 앞세운 두산의 선 굵은 야구는 김 감독의 스타일을 닮아갔다.

두산은 팀 도루 9위(83개)에 그쳤지만 팀 타율(0.297), 득점(889점), 타점(832점), OPS(출루율+장타율, 0.849) 부문에서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면서도 팀 홈런은 SK에 한 개 뒤진 2위(173개)다. 감독이 나서지 않아도 다들 치열하게 경쟁하고, 신나게 뛰고 있다. 김 감독이 꿈꾸는 두산다운 야구가 부임 2년째에 구체화되고 있다.

그는 선수 시절 ‘불곰’으로 불렸다. 덩치가 작고 후배들과 장난도 잘 쳤지만 카리스마가 있었다. 후배들에게 멍석을 깔아주면서도 그걸 벗어나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지난 5월 두산은 노경은(32·롯데)의 항명 사건을 겪었다. 노경은은 김 감독의 2군행 지시에 은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했다. 팀 분위기가 나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 김 감독은 선수에게 끌려가지 않고 재빨리 정리(트레이드)했다. 베테랑 홍성흔(39)의 거취를 두고도 잡음이 나오지 않는다. 홍성흔이 납득할 만큼 기회를 주고 순리대로 2군행을 결정해서다.

김 감독의 스타일은 ‘무색무취(無色無臭)’다. 감독의 지시가 아니라 선수의 의지로 움직이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그는 “김인식·김경문 감독 밑에서 꼼수 안 부리고 무리수를 두지 않는 야구를 배웠다. 주위에서 ‘색깔이 없다’는 소리도 듣지만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선수 시절이었던 95년, 두산(당시 OB)이 마지막으로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95년 OB는 LG와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선두 다툼을 벌이다 최종전을 이기고 1위를 확정했다. 올해 두산은 7경기나 남기고 우승을 이뤘다. 김 감독은 “아직 목표의 절반만 달성했다. 정규시즌 우승에 만족하지 않고 부족한 점을 잘 메워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글=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사진=김민규 기자

◆프로야구 전적(22일)
▶kt 2-9 두산 ▶NC 7-2 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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