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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부시대 흔적 많은 히타, 닭꼬치집 즐비한 구루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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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규슈의 낯선 두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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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날 규슈올레 구루메ㆍ고라산 코스를 걸었다. 삼나무 숲길의 정취가 그윽했다.

자유여행의 즐거움은 불확실성에 있다. 미리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좋고, 마음 내키는 대로 목적지를 바꿔도 좋다. 일본 규슈(九州)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규슈 여행의 거점 후쿠오카(福岡)에서 렌터카를 빌리거나 기차를 타고 떠나는 길, 문득 발길을 돌려 낯선 도시에 들어서도 나쁘지 않다. 후쿠오카에서 기차나 자동차로 1시간 안쪽에 있는 두 도시를 소개한다. 두 도시 모두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그러나 규슈를 여행했다면 한 번쯤 지나쳤을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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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유후인 가는 길에서

규슈에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는 단연 유후인(由布院)이다. 오이타(大分)현의 산중 온천마을 유후인은 아기자기한 모습 덕분에 한일 두 나라 여성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일본의 여러 기관이 매해 발표하는 전국 온천 순위에서 3위 아래로 밀려난 적이 없다.

후쿠오카에서 유후인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자동차를 타고 규슈 내륙 산악도로를 달리거나, 유후인노모리(由布院の森·유후인의 숲)같은 낭만 어린 관광열차를 타거나. 두 여정 모두 오이타현 어귀에 있는 작은 산골 마을을 거쳐야 한다. 인구 7만 명이 채 안 되는 히타(日田)시다.

한국인 여행자에게는 평범한 산촌이지만, 히타는 에도 막부시대 천황이 직접 통치했던 유서 깊은 도시다. 그 시절 규슈 지역의 세금은 히타에 먼저 모였다. 200년 전만 해도 규슈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였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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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시 마메다마치에 있는 150년 전통의 찻집.

히타시 마메다마치(豆田町)에 옛 도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150년 묵은 찻집, 230년 전통의 약국, 100년 역사의 양조장 등이 지금도 옛 방식을 고수하며 영업을 한다. 에도 막부시대 수도 교토(京都)를 여행하는 기분이다.

히타의 도시락집 오하라차야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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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대나무 도시락 하나테보(花てぼ)다. 유후인의 유명 료칸(旅館) 카메노이 별장의 총요리장이 차렸다는 도시락집 오하라차야(大はら茶屋)는 은어구이를 비롯한 특산물 요리를 대나무 도시락에 담아 낸다. 음식도 좋았지만 대숲의 정취가 더 좋았다. 점심시간에만 문을 연다. 1인 2500엔(약 2만5000원).

아마가세 산소텐스이의 숲 속 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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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메다마치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아마가세초(天ヶ瀨町)는 예부터 온천이 유명한 고장이다. 이 온천 마을 외곽의 깊은 산중에 고급 료칸(旅館) 산소텐스이(山莊 天水)가 숨어 있다. 3만3000㎡(1만 평)에 이르는 숲 속 료칸 안에는 20m 높이 폭포 옆의 대욕탕을 비롯해 노천탕만 9개가 있다. 지역 식재료로 낸 가이세키(會石)는 화려하다. 한국인 직원이 상주한다. 1인 2만3000엔(약 25만원)부터.

구루메노동자의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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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올레 구루메ㆍ고라산 코스의 명물 금명죽. 노란 빛을 띠는 대나무다.

후쿠오카현 남부의 구루메(久留米)시는 규슈를 대표하는 교통의 요지다. 규슈를 종단하려면 구루메를 거쳐야 하고 횡단할 때도 구루메 근처를 지나야 한다. 인구 30여만 명의 구루메는 규슈 최대의 산업도시이기도 하다. 1931년 이래 세계적인 타이어 회사 브릿지스톤이 본사를 이곳에 두고 있다. 솔직히 여유와 휴식보다 각박한 일상이 더 어울리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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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메시 다이호의 돈코츠라멘.

여행과 인연이 없어 보이던 구루메에 요즘 들어 여행자가 속속 모이고 있다. 노동자의 고단한 일과가 구루메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낳았기 때문이다. 공장 노동자의 얄팍한 지갑과 부족한 시간, 그리고 허기진 배를 달래준 구루메의 소울푸드가 돈코츠(豚骨)라멘과 야끼도리다.

돈코츠라멘은 돼지뼈 육수로 낸 라면이다. 후쿠오카가 유명하지만 발상지는 구루메로 알려져 있다. 1930년대 이후 구루메 노동자를 위해 개발된 메뉴라는 것이 정설이다. 구루메 돈코츠라멘의 전통을 1953년 문을 연 라멘집 다이호(大砲)가 잇고 있다.

구루메역 앞 포장마차에서 시작한 다이호는 현재 2대 가츠키 히토시(香月均史·58)가 운영하고 있다. 구루메에만 본점을 포함해 12개 매장이 있는데, 본점과 분점 1곳이 『미쉐린 가이드 후쿠오카·사가』편 ‘빕 그루망(Bib Groumand·3500엔 이하 맛집)’ 부문에 선정됐다. 본점에서만 하루 300~400그릇의 라멘이 나간다. 돈코츠라멘 800엔(약 8000원).

구루메시의 라멘집 모히칸 라멘의 점장. 남자 직원 모두 모히칸 머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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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구루메에서 가장 뜨거운 라멘집은 모히칸 라멘이다. 매장의 남자직원 모두가 모히칸 머리를 하고 있다. 신세대 스타일의 라멘집으로 메뉴도 다양하다. 돈코츠라멘 580엔(약 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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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꼬치구이 야끼도리.

야끼도리는 닭꼬치구이다. 그러나 구루메에서는 소·돼지의 온갖 부위도 꼬치에 꿰어 구어 먹는다. 노동자의 긴 하루를 마감하는 음식으로 야끼도리만 한 것도 없나 보다. 구루메에는 180곳이 넘는 야끼도리 집이 있다. 구루메 시내의 호타루카와(ほたる川·반딧불이의 강)는 60개가 넘는 메뉴를 자랑하는 야끼도리 전문점이다. 맥주가 어울렸을 때 더 맛있다. 야끼도리 코스 1인 2780엔(약 2만7800원).

● 여행정보=히타와 구루메 모두 규슈올레와 인연이 있는 도시다. 히타시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고코노에·아마나미(九重·やまなみ) 코스가 있다. 17개 규슈올레 코스 중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은 코스 중 하나다. 구루메시에는 남쪽 고라산(高良山·313m) 중턱에 구루메·고라산 코스가 있다. 지난해 12월 개장한 규슈올레 막내 코스다. 규슈는 자유여행이 편리하다. 우선 기차여행. JR 규슈 레일패스는 단기 체류 외국인 전용 패스다. 일정 기간 동안 규슈 지역의 JR열차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북부규슈용 3일권 8500엔(약 8만5000원). 선큐패스는 규슈 지역의 버스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이다. 북부규슈용 3일권 8000엔(약 8만원). 렌터카는 ‘여행박사’를 비롯한 국내 여행사에서 예약할 수 있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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