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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배신하는 ‘열심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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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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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열심히 일하는 관료다. 공직자 중에서 그만큼 성실한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 지난해 4월 언론 합동인터뷰에서 그는 “장관 끝날 때까지 1년 365일 매일 출근하겠다”고 말했다. 그때까지 그는 단 하루도 쉬지 않았고 약속은 이행되고 있다. 출장 중이 아니면 휴일에도 상황실에 꼭 들른다.

식사 자리에서도 일 얘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분위기가 딱딱해진다 싶으면 농담을 던지기도 하지만 웃기는 데 별로 소질이 없다. 본인도 어색해한다. 그는 “국가가 안전해지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진정성이 느껴진다.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지만 그가 ‘훗날’에 대한 욕심 때문에 불철주야 일에 매달리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스스로 “이 나이에 내가 뭘 더 바라겠나”라고 한다. 그는 올해 64세(1952년생)다.

근면함은 그의 삶 자체다. 한국전쟁 중에 태어나 군인의 길을 택했다. 해군사관학교 재학 때는 생도대장을 맡았다. 군 간부로 성장한 뒤로는 제3함대사령관, 해군 작전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차장(대장)을 역임했다. 잠시도 긴장을 풀기 어려운 제독의 생활이 몸에 익었을 것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군 간부는 그를 “자존심 센 강골 군인”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초대 국민안전처 장관이 됐을 때 군에서 기른 리더십과 상황관리 능력을 임명권자가 높이 샀을 것이라는 분석 기사가 나왔다. 실제로 그는 새 조직 통솔과 관리에 충실했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간부와 직원들도 휴일을 반납해 가며 일해 왔다.

지진 대응 문제로 국민안전처가 쓰나미를 맞았다. 박 장관의 마음도 재난 상태일 것이다. 기상청에서 지진 정보를 받은 뒤에 재난대응 문자메시지를 보내도록 돼 있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메시지가 뒷북인 것은 당연하다. 홈페이지가 다시 다운된 것은 정부전산종합센터의 실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방지하는 ‘전략적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박 장관은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골퍼 중에서 박인비와 전인지는 연습량이 적은 편에 든다. 그런데도 경기에서, 특히 큰 대회에서 펄펄 난다. 전인지의 스승인 박원 코치는 “샷 연습에만 몰두하면 창의력이 부족해진다”고 말한다. 요즘 기업 신입사원 면접에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로는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미안한 말이지만 무작정 열심히 한다고 일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