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전기료 상품 100개…일본은 인터넷 결합요금까지

중앙일보

입력 2016.09.20 02:01

업데이트 2016.09.20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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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각 가정은 연초에 전력회사로부터 한 장의 안내문을 받았다. 전력판매 시장이 개방되니 상품을 고르라는 내용이었다. ‘전력상품 메뉴판’에는 통신업체·유통업체·가스회사 등이 제시한 다양한 요금제가 망라됐다. 예컨대 소프트뱅크의 인터넷 서비스와 전기를 결합상품으로 구매하면 요금을 낮춰주거나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주는 식이다. 경쟁이 시작되니 기존 전력회사들도 수성에 나섰다. 계절별·시간대별로 요금을 다양화했다. ‘휴대전화 번호이동제’처럼 다른 전력회사 상품을 쓰던 소비자가 넘어오면 요금을 깎아주는 상품까지 등장했다.

공기업이 전기 독점하는 나라는
OECD선 한국·멕시코·이스라엘뿐
정부가 전기요금 사실상 결정

도쿄 신주쿠의 오바야시 도모키(大林朋樹·52)는 여러 업체를 비교한 끝에 할인 폭이 큰 도쿄가스를 선택했다. 단독주택에서 아내·아들과 함께 사는 그는 여름에는 에어컨을 많이 써 전기요금 부담이 컸다. 그는 “월 2000엔 정도 요금이 내려간다는데 바꾸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4월부터 전력 소매시장이 자유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지역별 전력회사가 독점하던 시장을 2000년부터 단계적으로 열기 시작한 이후 16년 만에 완전히 개방한 것이다. 특히 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가동이 줄면서 전기요금이 오르자 일본 정부는 ‘경쟁’을 통해 부담을 낮추려는 처방을 했다. 그 과정에서 소비자 선택권도 크게 확대됐다.

미국도 주별로 소매 경쟁을 도입해 전력회사 선택이 가능하도록 했다. 텍사스주의 경우 인터넷 홈페이지에 거주지 주소만 입력하면 100여 개 전기요금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전력회사는 시스코·마이크로소프트 등 정보기술(IT) 회사와 협력해 원격으로 가전기기를 조종할 수 있는 서비스 상품도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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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본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2000년대를 전후해 전기 판매시장을 열기 시작했다. 현재 공기업이 판매시장을 독점하는 곳은 한국과 멕시코, 이스라엘뿐이다.

비슷한 시기 한국 역시 전력산업 개편에 착수했지만 한전에서 발전사만 분리한 뒤 작업이 중단됐다. 독점시장이 유지되면서 요금은 사실상 정부가 결정했다. 김대욱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유가로 전력생산 원가가 올라 한전이 큰 적자를 낼 때도, 반대로 저유가로 한전이 큰 흑자를 낼 때도 요금에 제때 반영되지 못했다. 이때문에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비가 고착되는 등 후유증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판매시장이 독점이니 그나마 나눠놓은 발전사 간에도 경쟁이 일어날 리가 없다. 한전이 ‘정산’ 방식을 통해 전기요금으로 거둔 수익을 발전사들에 나눠주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 등 발전 자회사들은 8∼35.3%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경영 효율과는 큰 관계없이 최대 상장사 평균 이익률(5%)의 네 배가 넘는 수익성을 낸 것이다.

발전사 분리 이후 눈에 띄게 달라진 점도 있다. ‘낙하산’이 투입될 자리가 늘었다는 점이다. 현재 한전과 한수원은 산업부 출신이, 동서발전은 기재부 출신이 각각 사장을 맡고 있다. 감사직은 정치인 출신이 단골로 차지한다.

전수연 국회예산정책처 공공기관사업평가관은 “발전사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건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뿐 아니라 효율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① 민간기업에 전기 소매시장 개방해 소비자 선택권 넓혀야

② 한전 11조 이익은 산업부 쌈짓돈…전력기금 4조 쌓아두고 갖다 써

한전과 자회사들의 시장 장악력이 공고화되자 민간 기업은 에너지 신(新)사업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가령 A사는 1초 단위로 전력 사용량을 측정해 새로운 전기요금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스마트미터기를 개발했다. 한전의 미터기는 15분이나 1시간 단위로만 측정이 가능하다. 이 업체는 국내 대신 일본 납품을 준비하고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한전 출신 인사가 사외이사나 고문으로 있는 부품업체가 카르텔을 형성해 국내 시장에선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세종=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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