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년 임대 보장, SNS로 입주자 뽑는 ‘어쩌다 가게’의 실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기사 이미지

‘어쩌다 가게’ 망원점의 한가운데에는 길이 있다. 길·계단을 따라 가게가 이어진다. 망원점 전경. [사진 노경 작가]

서울 망원동의 다세대 주택가에 사방이 온통 하얀 건물 하나가 최근 들어섰다.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았는데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4층 규모(대지면적 212㎡, 연면적 590㎡)의 건물에 11개 상점과 5개 사무실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건물 모서리에 달린 간판은 달랑 하나, ‘어쩌다 가게’ 뿐이다. 건축사사무소 사이(SAAI)와 콘텐트 디자인 회사인 공무점이 합심해 2014년 동교동에 첫 문을 연 ‘어쩌다 가게’, 셰어하우스인 연남동 ‘어쩌다 집’(2015년)에 이은 세 번째 프로젝트다.

망원동에 2호점…희망자 몰려
4층 건물에 상점 11개, 사무실 5개
느슨한 연대, 시설 공유, 소통장소로

SAAI의 이진오 공동대표는 “9개의 가게가 모인 ‘어쩌다 가게’ 동교점을 처음 기획할 때만 해도 아는 사람끼리 모여 재밌게 오래오래 장사해보자는 생각으로 출발했다”고 전했다. 그렇게 모인 서점, 위스키바, 실크스크린 공방 등 작은 가게의 콘텐트가 입소문을 탔다. ‘5년간 임대료를 올리지 않고 임대를 보장한다’는 계약조건도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가 오르면서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 논란으로 뜨거운 도심에 ‘어쩌다 가게’의 실험은 사회적 메시지로 꽂혔다.

기사 이미지

망원점에 둥지를 튼 사람들. 업종은 다르지만 함께 여는 이벤트의 재미가 쏠쏠하다. [사진 김상선 기자]

‘어쩌다 가게’ 망원점은 건물 자체를 임대·개조한 동교점과 달리 아예 ‘어쩌다’ 프로젝트의 컨셉트에 맞게 신축했다. 건물에는 출입문이 따로 없다. 건물 한가운데가 앞뒤로 뚫려 있을 뿐이다. 두 덩어리의 건물이 가운데 복도와 계단을 두고서 서로 교차하듯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망원동의 골목길을 따라 건물 내로 들어와 상점들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4층에 도착한다. 이 대표는 “백화점 진열대처럼 건물안에 상점이 있는 게 아니라 작은 가게들이 층층이 모여 건물을 이루고 있는 느낌을 주게끔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망원점도 동교점과 마찬가지로 5년간 임대료를 동결했다. 월세는 가게 크기에 따라 40만~180만원 선으로 책정됐다. 공무점의 안군서 대표는 ”5년 뒤에도 같은 임대료 받는 게 사업의 목표고, 처음 입주한 사람들이 이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면 프로젝트가 성공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입주 공모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이뤄졌다. ‘어쩌다 가게’ 동교점이 입소문을 타 망원점 입주 설명회에는 입주자의 세 배 수가 넘는 사람이 모여들기도 했다.

기사 이미지

1층에 자리 잡은 서점 ‘B 라운지’의 모습. [사진 노경 작가]

전직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식물샵 ‘슬로우 앤 스테디’, 여성 맞춤옷을 저렴하게 파는 ‘엠마우드’, 매달 추천 및 진열하는 책이 바뀌는 서점 ‘B라운지’ 등이 자리 잡았다. 가게의 크기는 공방의 경우 9.9㎡(3평), 음식점은 19.8㎡(6평) 정도로 작다. 혼자서 운영할 수 있는 공간 규모를 분석한 결과다. 그렇게 작은 가게를 모아놨더니 가게끼리 관계가 생기고 공동 이벤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지하 ‘P 라운지’의 경우 밤에는 바로, 낮에는 입주 공방들의 수업 공간으로 쓰인다. 때때로 거문고 독주회도 열리고, 대학교 극예술연구회에서 아마추어 공연도 한다. ‘슬로우 앤 스테디’는 복도와 계단, 입점된 다른 가게 등 건물 전체에 식물을 전시한다. 디자이너 안숲(29)씨는 “가게 자체는 작지만 건물 내에서 공간이 확장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향초샵인 ‘유어브리즈’의 이은혜(37) 대표는 “다른 업종끼리 모여서 여러 프로젝트를 기획하다 보면 오히려 시너지가 난다. 공동체 같기도 하다”고 전했다. ‘어쩌다’가 내세운 느슨한 연대가 지속가능성, 공유, 소통과 엮이면서 단단해진 셈이다.

이제 출범 3년 차인 ‘어쩌다’ 프로젝트는 홍대권역을 넘어 점점 확장하고 있다. 현재 사이건축과 공무점은 왕십리에 ‘어쩌다 시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형 주상복합 건물의 상업공간 및 광장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다. 규모가 2314㎡(700평)에 달한다. 삼청동에 독립 큐레이터들이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인 ‘어쩌다 갤러리’ 프로젝트도 계획하고 있다. 이들이 구상하고 있는 ‘어쩌다’의 종착지는 ‘어쩌다 동네’다.

“‘어쩌다 가게’로 출발했지만 브랜딩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10년 계획을 세웠는데 마지막은 ‘어쩌다 동네’입니다. 어쩌다 가게, 집 등이 한 블록 내에 있다면 주변 임대료도 마구 오르지 않겠죠. 좋은 사람들이 모여 내는 시너지 효과는 상상을 초월합니다.”(안군서 대표)

글=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