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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중국 방패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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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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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논설위원

어느 날 용산 미군기지 상공에서 북한이 곧 개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15kt급 핵폭탄이 터졌다 치자. 미국 국방부는 65만 명이 숨지고 반경 4.5㎞ 이내 건물은 반파할 것으로 봤다. 희생자는 물론 한국인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인은 어떨까. 용산 기지를 노렸으니 미국인 피해가 제일 클 법하다.

과연 그럴까. 2014년 서울에 온 외국 관광객은 1140여만 명. 이들의 평균 체류 일수는 4일로 하루 평균 12만 명이 서울에서 돌아다니는 꼴이다.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는 1위가 명동. 그 뒤로 동대문시장, 고궁, 남대문시장, 남산 순이다. 죄다 용산 기지에서 3~5㎞ 내다.

한데 외국 관광객의 35%가 중국인이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북한 핵이 투하되면 2만~3만 명의 중국 관광객이 명동 일대에서 노닐다 희생된다는 얘기다. 미국 관광객은 전체의 6%로 1만 명 안팎의 용산 주둔 미군을 합쳐도 중국인의 피해가 클 게 분명하다.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두고 시비가 붙으면 늘 등장하는 논리가 있다. 주한미군 인계철선론(引繼鐵線論)이다. 인계철선이란 부비트랩에 쓰는 철사로 툭 쳐도 폭발물이 터진다. 인계철선처럼 주한미군도 공격당하면 미국이 자동으로 개입하게 되니 절대 빼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내년까지 수도권 일대 미 2사단마저 평택으로 이전하게 돼 있다. 북한의 수도권 공격 시 미국의 자동개입을 보장해 주던 인간방패가 사라지는 셈이다. 이럴 경우 자국 관광객 안전을 걱정하는 중국이 미국보다 북핵 사용에 더 반대할지 모른다.

관광객뿐 아니다. 중국 자본도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 2013년 4.8억 달러로 미국(35.2억 달러)의 7분의 1도 안 됐던 중국의 직접투자액은 2년 만인 지난해 19.7억 달러로 급증했다. 미국(54.7억 달러)의 3분의 1을 넘겨 머잖아 추월할 기세다.

얼마 전 ‘중국 자본이 강남 아파트까지 침투해 걱정된다’는 글을 썼더니 한 지인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라며 핀잔을 준 적이 있다. “중국의 인적·물적 진출이 훌륭한 안보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얼마 전 한 중진 정치인이 “휴전선 근처에 중국인 전용 카지노를 세우면 북한 도발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하필 카지노라서 그랬지 근본적 발상까지 웃어넘길 일은 아니다. 북핵 위협 앞에 속수무책이나 다름없는 터라 어느 때보다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상황이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