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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런 주택시장 … 정점 머지 않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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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호 18면

주택시장이 혼란스럽다. 정부 정책부터 시장 움직임까지 그렇다.


주택정책이 가계부채대책과 뒤섞이면서 갈 길을 잃었다. 지난달 말 범정부적으로 주택공급 축소를 통한 가계부채 억제를 주내용으로 하는 ‘8·25 가계부채 관리방안’이 발표됐다. 올 들어 가계부채 증가 주범으로 떠오른 집단대출(중도금 대출)을 줄이기 위해 분양에 제동을 걸겠다는 뜻이다.


이 대책에는 정부의 고민이 짙게 배여 있다. 부채를 해결하는 최선은 소득을 늘려 빚을 갚는 것이다. 충분히 갚을 수 있는 빚은 큰 걱정이 없다. 하지만 경제상황이 만만치 않아 이게 힘들어지게 됐다. 돈을 벌 자신이 떨어지자 빚 액수를 줄이기로 한 셈이다. 정부가 밝힌 대로 그 동안 추진해온 ‘상환능력 제고를 위한 소득증대’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다. 신규 분양물량을 줄이면 자연히 집단대출은 감소할 수 밖에 없다. 수원지의 물을 막으면 강물이 줄어들 듯. 정부가 ‘근본적인 대응’이라고 할 만하다.


청약규제 빠져 효과 떨어져그런데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안이했다. 눈앞에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수원지를 찾는 것은 한가해 보인다. 물이 넘치는데 수도꼭지만 잠그겠다는 셈이다. 당장 둑부터 높여야 하지 않을까. 공급절차를 까다롭게 해 공급량을 줄이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공급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수요를 꺾는 것이다. 공급자는 수요가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팔려고 하지만 수요가 없으면 판매를 줄인다. 집단대출을 줄일 목적이면 청약문턱을 높이든, 전매제한을 하든 청약 메리트를 줄여 분양시장의 수요를 줄이는 게 가장 낫다.

정부도 이를 알고 있지만 국내 경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건설경기 위축을 우려해 손을 대지 못했다. 하지만 불을 끄는 데는 급한 대로 찬물을 끼얹어야 한다. 정부가 걱정하는 만큼 주택경기가 갑작스럽게 얼어붙지 않게 하면 된다. 단번에 고강도 대책을 쓰는 게 아니라 단계적으로 강도를 높여나가면 된다. 처음에 신호를 주는 게 중요하다. 가벼운 신호에도 시장은 반응할 것이다. 중도금 대출 규제가 분양시장의 가수요를 걷어내려는 목적이듯 적절한 청약규제도 실수요는 건드리지 않고 청약거품을 뺄 수 있다.


문제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지 모른다는 정부의 걱정보다 현실에 대한 인식이다. 국토부는 “강남 재건축 일부를 제외하곤 과열을 걱정할 정도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멈추지 않는 ‘분양 폭탄’을 심각하지 않은 수준으로 볼 수 있을까. 지금까지 분양된 물량만으로도 내년부터 2018년까지 2년간 아파트 72만가구, 다른 주택을 합치면 120만가구가량 입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한해 주택수요를 39만~45만가구로 잡고 있다. 최대치인 45만가구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50%가량 더 많은 집이 새로 들어서게 된다. 이 정도면 소화불량 정도가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공급과잉 우려가 나왔지만 정부는 올해 분양물량이 지난해보다 25~30% 줄어들 것으로 낙관만 하고 손을 놓고 있었다. 정부 예상과 달리 올 들어 7월까지 분양된 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 줄어드는 데 그쳤다.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손을 썼더라면 분양폭탄과 집단대출 문제가 이렇게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불과 두 달 전인 6월 말 중도금 대출 규제를 꺼냈지만 가래로 막기에도 분양시장 열기가 너무 뜨거웠다. 두 달 뒤 나온 이번 대책도 헛다리를 짚은 셈이라 정책 발표 효과가 없다.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 시장오히려 시장은 정부를 비웃는 듯한 모양새다. 대책이 나온 뒤 청약경쟁률은 더 높아졌다. 8·26대책 후 부산에서 처음 분양된 GS건설의 ‘명륜자이’는 8일 1순위 청약접수 결과 346가구 모집에 18만여명이 신청해 평균 523.6대 1의 올해 부산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9월 둘째주 주간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0.13%로 올 들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모두 신규 분양을 줄이겠다는 정부 정책의 ‘풍선효과’다. 공급 감소 전 막판 물량을 잡으려는 청약자가 몰리고 공급 감소에 따른 기존 주택 가격 상승을 기대한 수요가 늘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이해다. 정부가 공공택지 물량을 줄이겠다는 건 새로운 얘기가 아니고 이미 시행되고 있는 내용이다. 모든 지역의 분양을 억제하겠다는 게 아니라 공급과잉 가능성이 커 미분양 우려가 높은 ‘미분양 관리지역’에서다. 여기다 불과 며칠 전까지 공급과잉 우려 먹구름이 짙던 주택시장에 웬 갑작스런 공급 감소 햇살인가. 그동안 분양된 물량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앞으로 분양이 몰린 지역에서 분양 속도가 좀 늦어지는 것 뿐이다.


대책이 효과를 내지 못하면 정부는 더 강도 높은 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굳건해 보이는 시장도 결국은 강한 대책에 맥이 빠지게 된다. 분양시장의 열기가 점점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의 어설픈 대책이 시장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있다.


안장원 기자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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