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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좋은 물은 약 못지 않은 효능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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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있는 물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물’입니다. 약을 달일 때나 국을 끓일 때에 가장 중요한 것도 ‘물’입니다. 보기에는 다 같이 맑고 투명해 보여도 약 달이는 물에는 급이 있다고 했습니다.

물 정화할 때 정병 활용... 정병에 담긴 감로수는 중생의 목마름 해결

그럼, 어떤 물이 가장 좋은 물일까요? 새벽에 동트자마자 처음으로 길은 우물물을 정화수(井華水)라 했는데 하늘의 정기가 몰려있는 물이라고 생각해서 음(陰)을 보하는 약을 달일 때에 주로 썼습니다. 여기에는 신령한 기운이 서려있다고 보아 마음먹은 바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좋은 물을 쓰면 약은 달이기도 전에 이미 약으로 생각했고 계절에 따라 그 성질과 효능이 달라진다고 여겼습니다. 음력 정월에 내린 첫 빗물인 춘우수(春雨水)는 양기를 위로 뻗치게 하고 청명이나 곡우 때 받는 빗물은 맛이 달아서 술을 담그기에 가장 좋다고 했습니다.

가을에 내린 이슬과 겨울의 서리 녹은 물은 약의 효능을 모아주는 수렴의 효과가 있고, 섣달의 눈이 녹은 납설수(臘雪水)는 하늘과 땅의 정기를 머금어서 해독의 효과가 있고 전염병 치료에 좋다고 보았습니다.


불교에서 정병은 관음보살의 상징물



동의보감에서는 땅속 깊은 물줄기에서 나온 찬물이나 산속의 맑은 샘물로 달인 약이 효험을 빨리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가장 안 좋은 물은 한양 같은 큰 고을에서 길은 우물물이었을 겁니다.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의 우물물은 대접에 담아 하룻밤 놔둬 침전물을 가라앉힌 다음 웃물만을 약으로 썼습니다.

왕가나 대갓집에서는 대접 대신 정병에 물을 담아 정화시켰습니다. 정병은 원래 물을 깨끗하게 거르는 용도로 쓰이는 병이었는데, 차츰 그런 용도보다는 종교적인 의미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정병을 병을 치료해주는 관음보살의 상징물로 생각했습니다. 정병에 담긴 감로수(甘露水)는 중생의 목마름과 고통을 씻어주는 부처님의 자비를 의미한다고도 했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정병은 흑유정병입니다. 흑유정병을 만드는 흙은 청자를 만드는 것을 쓰지만 표면에 산화철 성분이 많은 흑유(黑釉)를 발라 구운 것입니다. 물을 따르는 주둥이 부분이 살짝 구부러져서 물을 따르기 쉽게 했고, 날렵한 조형미도 만들어냈습니다.

이 정병은 청동이나 청자로 정병이 제작된 시기인 12세기 말 고려시대의 유물로 추정됩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통일신라 후기에 들어서면서 약사여래를 모시는 것이 대중화됐다고 합니다. 불교를 숭상한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약사여래와 관음보살을 공양하고 예배 드리는 것이 세상이 편안해지고 질병에서 구원받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종교는 삶과 죽음, 질병과 건강과도 많이 연계돼 있습니다. 동의보감을 찬찬히 살펴보면 도교·유교·불교가 함께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과 가장 연계가 많은 종교는 불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불교철학은 동양철학이 모태가 된 한의학과도 공통분모가 많이 있습니다. 불교의 경전에는 병은 발병하기 전에 좋은 음식을 섭취해서 예방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예방의학인 한의학과 이론이 비슷합니다. 사찰음식은 한약재를 이용한 약선(藥膳)음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또 있습니다. 예로부터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효험을 기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병이 난임(難姙)입니다. 난임은 피임을 안 한 지 1년이 넘어도 아기가 안 생기는 것을 말하는데, 요즘에는 결혼이 늦어져서 점점 그 비율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양방병원에서 검사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도 임신이 안 되는 경우, 한의학 관점에서 보면 원인이 뚜렷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의학에서는 난임의 원인을 네 가지로 나눕니다. 첫째가 자궁허한(子宮虛寒)인 경우입니다. 자궁이 약하고 차서 배란·수정·착상이 잘 안 되는 경우입니다. 자궁이 기형인 경우가 많고 정자의 진입이 잘 안됩니다. 대부분 손발과 아랫배가 차고 항상 기운이 없다고 호소합니다. 처음부터 임신이 안 되는 원발성 난임인 경우입니다.

둘째가 자궁 내 어혈(瘀血)이 많을 때입니다. 자궁 내 혈행 순환이 잘 안 되면 배란장애가 오고 염증이 잘 생깁니다. 난소나 난관, 나팔관에도 염증이 생기게 되면 난관이 막히게 되고 혹도 잘 생깁니다. 상체로는 열이 많고 하체로는 냉해지게 되어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럽게 됩니다. 생리통이나 생리불순이 있고 덩어리진 생리혈이 나오는 사람에게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셋째로는 신기(腎氣)가 허약한 경우인데, 신장과 자궁기능이 떨어지면서 내분비 기능이 조화롭지 않게 되고 호르몬 대사에 문제가 생겨 아기가 잘 생기지 않습니다. 체내에서 생기는 노폐물인 습담(濕痰)이 몸에 쌓인 비만 체질이나 체력이 없고 너무 야윈 체질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넷째로 간기울결(肝氣鬱結)일 때입니다. 과다한 스트레스를 받고 걱정이 많으면 기(氣)가 울체되고 정서가 불안정해져서 배란과 착상이 잘 안됩니다. 임신을 했었거나 출산을 하고 둘째를 기다리는데도 안 생기는 경우입니다. 불공을 꾸준히 드리고 나서 아기를 갖게 되는 경우가 이러한 간기 울결이 풀렸을 때입니다.

난임의 한의학적 원인은 한의사에게 진료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본인이 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건강한 아기를 갖고 싶은 사람은 자궁의 기능을 충실하게 하기 위해 다른 장기와의 조화와 균형에도 신경써야 합니다.

그러려면 편식을 하지 말고 산성 식품이나 자극적인 음식, 술과 담배를 피해야 합니다. 변비가 되지 않도록 하면서 잠을 푹 자고 과로를 피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복부를 따뜻하게 하고 짧은 바지와 치마는 안 입는 것이 좋습니다. 최소한 이틀에 한번은 족욕을 하는 것이 좋은데, 족욕을 할 때에는 무릎 아래까지 물에 담그는 것이 효과가 좋습니다. 그래야 난임을 치료해주는 족삼리와 삼음교혈이 자극이 되고 덥혀집니다.


불임 때 남성이 먼저 검사 받는 게 바람직



몸이 차고 생리가 불순한 사람은 구절초와 애엽(약쑥)을 달여 마시고 어혈이 있고 더위를 잘 타는 사람은 익모초를 차로 끓여 마시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됩니다. 항상 피로하고 어지러우면서 성에 관심이 없는 난임 환자는 당귀나 구엽초를 달여 마시는 것도 권할 만합니다.

난임은 남성 쪽에 원인이 있는 경우가 20%가량 됩니다. 최근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남녀 모두에게 원인이 있는 경우가 30% 정도 되고, 50% 정도가 여성에게 난임의 원인이 있다고 합니다. 남성 불임은 정자 수 감소, 기형 정자, 정자운동 장애일 때가 가장 흔합니다.

임신을 시도한 후 1년 이후에도 아기가 없다면 검사가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여성보다는 간단히 검사를 할 수 있는 남성 쪽이 먼저 검사를 받아 보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윤영석 -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7대째 가업을 계승해 춘원당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학 관련 유물 4500여점을 모아 춘원당한방박물관도 세웠다. 저서로는 [갑상선 질환, 이렇게 고친다] [축농증·비염이 골치라고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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