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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더비를 장악한 차이나머니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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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미국·유럽의 미술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의 침체기를 침체기를 겪었다. 힘을 잃어가는 미술시장에 차이나머니가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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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첸(오른쪽)·왕웨이 부부가 낙찰받은 모딜리아니의 누워있는 나부.

현대미술의 중심지는 자본을 따라 움직인다. 영국 런던에 본사가 있던 소더비는 1964년 미국 최대 미술품 경매 회사였던 파크버넷를 인수했다. 83년 들어서는 미국의 억만장자 알프레드 토브만(A. Alfred Taubman)이 소더비를 사들였다. 이에 따라 소더비 본사는 런던에서 뉴욕으로 이전됐다. 지난달 말 30년 만에 소더비의 주인이 바뀌었다.

중국의 타이캉(泰康)생명보험이 소더비 지분 13.52%를 2억3300만 달러(약 2611억원)에 사들이면서다. 미국 헤지펀드계의 큰손 대니엘 로브(Dan Loeb)가 가진 지분(11.38%)과 포인트72(Point72 Asset Management)자산 운용사의 스티브 코헨(Steven Cohen)회장이 보유한 지분(5.5%)를 제치며 소더비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소더비 최대 주주가 된 타이캉생명보험을 이끄는 인물은 천둥성(陳東升·59) 회장. 그는 90년대부터 홍콩 소더비를 출입하며 미술품 경매에 대한 열정을 나타낸 인물이다.

천 회장은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외손녀 쿵둥메이(孔東梅)의 남편으로 현재 생명보험회사(타이캉)와 미술경매회사(자더)의 대표를 맡고 있다. 자더의 모회사인 자더국제는 타이캉의 지분 23.7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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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 전환기의 작품을 주로 수집하는 천 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천이페이(陳逸飛)의 1972년 유화 ‘황하송(黃河頌)’이다. 72년 피아노협주곡 ‘황하’를 주제로 한 선전화다. 총을 든 전사는 무산계급을 상징하며 공산 해방을 위해 조국과 민족의 찬가를 노래하는 듯한 애국주의 작품에 속한다.

약 25년 전 천 회장이 직접 설립한 중국 최초의 경매회사 자더는 지난해 5억5000만 달러(약 6200억원)의 수익을 기록했다. 자더의 성공 배경에는 중국 내 미술품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이 있다.


중국 순수미술 시장 매출액에서 미국 제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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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부동산 재벌 조셉 라우가 소장하고 있는 앤디 워홀의 마오.

중국의 순수미술 경매액은 지난 8년간 세 배 성장해 지난해 약 49억 달러를 기록했다.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중국(홍콩 포함)은 올해 상반기 전 세계 순수미술 시장 매출액 65억3000만 달러(약 7조3175억원) 중 35.5%인 23억2000만 달러를 차지하며 미국(17억 달러)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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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국제 미술시장 분석회사 아트프라이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미술계와 컬렉터들이 ‘중화주의’를 탈피해 전 세계의 미술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원래 중국 컬렉터들은 자국의 고서화와 근현대 미술품에 집중해왔다.

지난해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서구 크리스티·소더비 경매에 중화권 갑부들 응찰소식이 들리더니 중국의 재벌 컬렉터들이 서구 근현대미술 회화 구입을 주도하면서 미술시장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킨 것이다.

지난해 11월 9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모딜리아니의 ‘누워 있는 나부’가 낙찰 예상가인 1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어 1억7040만 달러(약 1980억원)에 낙찰됐다. 세계 미술품 경매 사상 둘째로 높은 가격이었다.

도대체 누가 샀을까. 중국인의 미술품 경매 낙찰액으로는 최고가를 전화로 부른 이는 바로 상하이의 금융 재벌로 꼽히는 선라인그룹의 류이첸(劉益謙·53) 회장이었다. 그는 “세계적 박물관들이 모딜리아니 누드화를 많이 소장하고 있다. 이제 중국 미술품 애호가들이 굳이 외국에 가지 않아도 중국 땅에서 훌륭한 예술품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구매 동기를 밝혔다.

그의 관심사는 현대 미술품에서 중국 골동품까지 아우른다. 최근 최고가를 기록한 중국 미술품 대부분을 그가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세기 송나라 왕조의 꽃병을 1470만 달러(약 160억8700만원)에,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명나라 성화제(成和帝) 때 제작된 8㎝에 불과한 술잔을 2억8100만 홍콩달러(약 367억원)에 낙찰받았다.

중국 화단을 대표하는 치바이스(齊白石)의 수묵화 ‘송백고립도(松柏高立圖)’는 베이징 경매에서 4억2550만 위안(약 718억원)에 구입해 중국 현대회화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해 6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한국 작가인 김환기의 1950년대 작품 ‘푸른 산’을 40여 차례 경합 끝에 1384만 홍콩달러(약 19억8000만원)에 낙찰받았다.

류이첸의 아내 왕웨이(王薇·53)도 중국에서 손꼽히는 미술품 수집가다. 현재 상하이에 미술관 2개를 운영 중이다. 특히 지난해 4월 상하이 푸시(浦西) 지역에 세운 롱(龍)미술관은 대지 3만 3000㎡ 에 전시 면적만 1만 6000㎡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영화거물 왕중쥔, 부동산 거부 왕젠린이 큰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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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젠린 완다그룹 회장과 파블로 피카소의 클로드와 비둘기.

중국 영화업계의 거물 화이브러더스의 왕중쥔(王中軍·56) 회장도 미술품 경매 시장을 쥐락펴락 하는 큰손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소더비 경매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명작 ‘정물, 데이지와 양귀비 꽃병’을 6180만 달러(약 672억원)에 낙찰받았다. 올해에도 뉴욕 소더비 경매에 나온 파블로 피카소의 ‘소파에 앉은 여인’을 2990만 달러(약 345억원)에 사들였다.

중국 부동산 갑부인 왕젠린(王健林·62) 완다그룹 회장은 1990년대부터 미술품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로 중국 화가들의 작품들을 수집했으나 2000년대 들어 중국 본토 바깥으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2013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피카소의 1950년 작품 ‘클로드와 비둘기’를 당시 예상가격보다 두 배 이상 높은 2820만 달러(약 326억원)에 매입했다.

태드 스미스 소더비 최고경영자(CEO)는 미술 시장을 차이나머니가 견인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5월 뉴욕, 6월 런던 경매에서 최고가 작품은 모두 아시아 수집가들에게 팔렸다. 경매를 통해 서구 미술품을 사는 아시아 고객 수가 상반기에 12% 증가했다.”

물량으로 승부하는 중국의 미술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부를 과시하기위해 일부러 눈에 띄는 미술품 경매 시장을 찾는다는 주장도 있다. 개인자산 100억 달러가 넘는 조셉 라우(Joseph Lau·65)는 2006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앤디 워홀의 ‘마오’를 1740만 달러에 낙찰받았다. 크리스티 측 예상가격(800만∼1200만 달러)을 훌쩍 넘기며 당시 ‘워홀 작품 중 역대 최고가’라는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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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성 타이캉생명보험 회장이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천이페이의 1972년 유화 황하송.

지난해 말에는 스위스 제네바 소더비 경매에서 핑크 다이아몬드(16.08캐럿)와 블루 다이아몬드(12.8캐럿)를 각각 2870만 스위스프랑(330억원), 4860만 스위스 프랑(560억원)에 구입했다. 그는 “이 다이아몬드를 7살 딸 ‘조세핀’을 위해 샀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중국의 미술시장을 ‘덩치만 큰 미성숙한 청소년’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중국판 포브스라고 할 수 있는 후룬리포트의 설립자인 루퍼트 후지워프(Rupert Hoogewerf)는 “중국 부자들이 미술에 관심을 갖는 현상은 분명 좋은 일”이라면서도 “(그들이) 미술에 대한 깊은 이해는 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컨설팅 전문기업인 펜쇼엔베르란트어소시에시츠 회장 마크 펜은 중국의 미술시장이 이제 막 싹트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경제가 번창하는 곳에 예술도 있다.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미술 공동체에 처음부터 관여해 유리한 입장에 서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중국은 최적의 장소다.”

임채연 기자 yamfl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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