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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최대 규모 지진] 원전 멈출지 말지 3시간 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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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경주 지진이 원자력발전소에 미치는 계측 값을 구하는 데 시간이 걸려 지진 발생 4시간이 지나서야 원전 가동 중단 결정을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학계와 시민단체는 우물쭈물하는 사이 자칫 대형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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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경주에서 규모 5.1의 첫 지진이 발생한 시각은 오후 7시44분. 한수원에 따르면 당시 진앙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약 27㎞)의 월성원전 지진계측 값은 0.0615g(g는 중력가속도)였다. 한수원은 “원전 안전 운영에 영향이 없 다”고 발표했다. 국내 원전은 지진계측 값이 0.1g 이상이면 규정에 따라 4시간 안에 수동으로 가동을 중단하고, 0.18g 이상이면 자동으로 정지하게 돼 있다.

한수원, 계산하느라 시간 걸려
전문가 “결정 4초 만에 끝내야
후쿠시마도 고민하다 때 놓쳐”

오후 8시32분, 첫 지진과 멀지 않은 곳에서 더 큰 규모(5.8)의 지진이 발생했다. 월성원전 지진계측기의 값은 수동 가동 중단에 가까운 0.0981g로 나타났다. 잠시 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계측 값은 0.12g로 표시됐다. 이때 원전 가동을 중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수원은 머뭇거렸다. 2차 지진을 두고 더 정밀한 측정이 필요하다며 지진 응답 스펙트럼을 이용한 값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 계산이 끝난 시각이 오후 11시50분. 기준치인 ‘0.1g’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한수원은 6분 뒤 월성 1~4호기의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 첫 지진 발생 후 4시간12분, 두 번째 지진 후 3시간24분이 지난 시각이다. 한수원은 “전국 24호기 원전자료를 모두 종합해야 했기 때문에 중단 결정까지 4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원전 전문가들은 이런 결정 과정이 규모가 큰 지진에서는 원전을 더욱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계산방법이 복잡하더라도 4시간을 4초로 줄일 수 있는 기술과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규모 5.8이 전진(前震)이고, 규모 6.5~7인 본진(本震)이 뒤따라온다고 가정한다면 끔찍하다”고 말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후쿠시마 원전도 바닷물을 냉각수로 주입할 것인지 여부를 고민하다 시간을 놓쳐 폭발했다” 고 말했다.

월성원전이 지진 취약 지역에 설치됐다는 문제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이번 지진의 진원은 지진 가능성이 큰 활성단층(양산단층)상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근에는 원전 6기가 가동 중인 월성원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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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은 이날 “원전 가동을 중단하고 강진에 견딜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후 원전의 안전성도 문제다.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원전이 노후화되면 내진 강도가 약해지는 부분이 나올 수 있는 만큼 시급히 점검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최준호·성시윤·김민상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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