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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최대 규모 지진] 기자의 경주 진앙 공포의 1박, 발밑에서 땅이 3-4초간 흔들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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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여진이) 또 오는갑네. 우짜노. 무서버 죽겠데이."

계측 이래 최대인 규모 5.8 지진이 발생한 12일 오후 11시쯤. 이번 지진의 진앙(경북 경주시 내남면 부곡2리)에서 약 200m거리인 경주시 내남면 부곡1리 마을회관. 박삼순(81) 할머니가 마을회관 벽을 급히 붙잡으면서 이렇게 비명처럼 소리쳤다. 앞서 오후 7시44분에 규모 5.1 지진이 발생하고 오후 8시32분에 규모 5.8의 지진이 일어난 뒤 10여분 간격으로 계속 '우르릉'하는 굉음을 동반한 여진이 이 마을에 계속 몰아닥쳤다.

심한 진동을 동반한 여진이 잇따르자 내남면 부곡1리 주민 140여명은 이날 공포의 밤을 보냈다. 낡은 주택이 많은 탓에 마을 곳곳은 담이 무너지고 벽에 금이 가거나 기왓장이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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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김동열(55)씨는 "두번 째 강진이 난 뒤 집 담장이 어긋나버렸다. 방 바닥으로 큰 물줄기가 쓱하고 훑어 지나가는 듯한 공포감이 아직도 내 몸에 남아 있다"며 불안해했다. 자정쯤 찾아간 부곡2리 마을회관은 부곡1리에서 불과 약 200m 거리였다. 마을회관은 이번 지진의 진앙으로 지목된 내남면 화곡저수지 옆에 있었다. 주민들은 강진을 피해 마을회관 안이 아니라 밖에 나와 서 있었다. 오후 10시까지는 마을회관에 들어가 있었지만 강진에다 여진이 계속 이어지면서 나왔다고 했다. 마을회관 건물 실내의 벽 타일 수십 개가 떨어지는 등 건물 자체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몸까지 부르르 떨며 길에 나와 서 있던 안순갑(72)할머니는 "창문 틀이 흔들릴 만큼 굉음과 진동이 또 발생했다. 오래된 옛날 집인데 무너질 것 같아 무서워서 그냥 밖에서 오늘 밤을 보내야겠다"고 말했다.

기자가 이 마을을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우르릉'하는 굉음과 진동은 계속 이어졌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8시32분 강진 발생 이후 13일 오전 9시까지 경주를 비롯해 대구·경북 일대에선 약 210회 여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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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앙 마을에서 14㎞쯤 떨어진 경주시청 인근 동천동 주민들도 지진 공포에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했다. 13일 오전 2시쯤 기자가 찾아간 동천동의 한 편의점 앞. 50대 편의점 주인이 피곤한 얼굴로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기자가 "왜 나와서 계시냐"고 묻자 그는 "지진 진동이 계속되고 있어 이러다 또 강한 지진이 발생할까봐 무서워서 밖에서 손님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동천동의 한 모텔 업주도 불안한 마음에 길에 나와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추석 연휴 직전이라 손님이 많지 않지만 도저히 무서워서 모텔 안에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6시쯤 다시 찾아간 부곡1리 화곡저수지 앞. 주민 이옥순(80)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집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오전 5시까지 계속 진동과 굉음이 났다. 집에 못 들어가서 대문 앞에서 밤을 보냈는데, 창고 배관이 모두 터져 침수가 일어났고 담장 곳곳에 금이 갔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오전 8시쯤 찾은 포석정이 있는 경주시 배동. 이곳 주민들도 공포의 밤을 보냈다고 입을 모았다.포석정 주변에 모여 있는 20여채의 한옥의 경우 3~4집 건너 한 집에서 기왓장이 부숴져 있었다. 배동 일대를 살피며 다니는데 오전 8시24분에 여진이 약 2시간 만에 또 발생했다. 기자의 발 아래가 3~4초 동안 흔들렸다. 잠시 뒤 국민안전처는 경주시 남남서쪽 10㎞ 지점에서 규모 3.2 지진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공포에 휩싸여 불안한 밤을 보내는 대신 다른 주민들을 챙기며 땀을 흘린 주민도 있었다. 박종헌(61) 부지2리 이장은 12일 첫 지진이 발생할 때 축사에서 소를 돌보고 있었다. 땅이 울퉁불퉁 흔들리고 쿵쿵하는 굉음이 들리자 그는 순간 지진이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그 직후 그는 200m쯤 떨어진 마을회관으로 뛰어가 주민들에게 대피 안내 방송을 급히 내보냈다. 다시 2차 강진이 나자 이번에도 대피 방송을 신속히 한 뒤 마을 곳곳을 다니며 집에 있던 주민들을 밖으로 대피시켰다. 한 60대 주민은 "어찌할지를 몰라 무서워 우왕좌왕했는데 박 이장이 집에 있으면 다친다면서 나오라고 소리쳐서 집 밖으로 긴급히 대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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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10시쯤 찾아간 경주시 황남동 한옥지구. 한옥 수십여채의 기왓장이 밤새 지진 와중에 무너져 있었다. 골목에 주차된 차량도 일부 파손된 상태였다. 한옥에서 기왓장이 떨어지면서 차량을 부순 것이다. 한옥지구 주민들은 "오래된 한옥이 모여 있는 동네라 강진이 또 발생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불안해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1시쯤 경주시를 찾아 황남동 등 지진 피해 지역을 돌아본 뒤 사고 대비와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할 예정이다.

경주=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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