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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전후 틈새를 노린다…북 2대째 반복되는 핵도발 공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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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이 대선을 치르면서 대외정책이 무뎌지는 시점을 이용해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는 ‘대선 도발 공식’이 반복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국내 정치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대선을 전후한 기간을 대미 도발의 적기로 파고드는 전략이다.

미 행정부·의회 국내정치에 몰두
대외정책에 상대적으로 소홀해져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한 9월 9일은 미국 대선(11월 8일)을 두 달밖에 남기지 않은 시점이다. 오바마 대통령 8년 통치의 마지막 해인 올해 북한은 1월 ‘수소탄’ 실험(4차 핵실험)에 이어 8개월 만의 핵실험으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도전했다. 두 번의 핵실험 사이엔 지상 발사 노동·무수단 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하는 등 미국의 대북 압박에 강대강으로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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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시기에 북한이 도발하는 공식은 예외 없이 동일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임에 도전하며 여름휴가도 반납하고 선거운동에 나섰던 2012년 북한은 두 차례나 장거리로켓 발사 실험을 했다. 그해 4월 은하3호를 쐈다가 실패하자 대선 직후인 12월 또 쏴서 결국 성공시켰다. 다음해 1월 오바마 2기 정부가 출범하자 한 달 만인 2월에 3차 핵실험으로 허를 찔렀다.

김정은의 도발 공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물려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백악관에 입성한 직후 겪은 게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와 핵실험이다. 북한은 그해 4월 은하2호를 쏘아올리더니 5월엔 2차 핵실험으로 오바마 정부를 당혹하게 했다. 대선 후보 시절인 2008년 “북한과도 대화할 수 있다”고 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연타석 도발을 경험한 뒤 적극적인 개입 대신 전략적 인내로 돌아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8년간 자신이 당사자 또는 책임자로 치르는 세 차례의 대선을 전후해 모두 북한으로부터 핵실험으로 시달렸다.

북한이 미국 대선을 전후한 시기에 핵과 미사일 도발을 집중하는 이유는 이때가 미국 행정부와 의회 모두 외치보다는 내치에 눈을 돌리는 외치 취약기이기 때문이다. 대선 기간 중엔 국내 표심 확보가 최대 관건이고, 대선이 끝나면 정권 교체이건 연임이건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는 데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이번엔 북한 때문에 8년 외치의 치적에 오점을 남길 수 있는 상황을 맞고 있다. 지난 9일 북한의 핵실험을 놓고 한·미 전문가 모두 ‘안정적 핵탄두 생산체제’에 돌입했다고 경고했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안정적인 실전 배치를 위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고 우려했고, 제프리 루이스 제임스마틴비확산센터(CNS) 동아시아국장은 “북한이 더 정교하면서도 효율이 높은 핵폭탄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경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중 쿠바와는 국교 정상화로 냉전 잔재를 청산하고 이란과는 핵 합의를 성사시켜 지구촌의 핵 시계를 늦추는 성과를 일궈냈지만 북핵은 임기 중 오히려 악화됐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북한의 핵실험은 아시아를 순방하던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라며 “그간의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은 오바마 대통령의 업적에서 가장 큰 흠결”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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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을 놓고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는 상대를 겨냥한 공세 소재로 활용했다. 클린턴은 9일 성명을 내고 “북한의 핵실험 결정을 용납할 수 없다”며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추가 제재를 부과해야 한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요청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핵무기를 늘리는 게 아니라 줄일 대통령이 필요하다”며 과거 한·일 핵무장을 용인할 수 있다고 했던 트럼프를 겨냥했다. 트럼프는 “(북한 핵실험은) 실패한 국무장관이 초래한 또 다른 큰 실패”라고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대북 정책을 맡았음을 상기시켰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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