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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능가하는 창극 보여주렵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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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호 24면

창극 ‘오르페오전’의 중요 상징물인 방패연을 들고

고루한 전통예능으로 치부되던 창극이 달라졌다. 가장 활발한 공연예술 실험의 장이 된 것이다. 2012년 국립창극단에 부임한 김성녀 예술감독이 소재와 장르의 경계를 파괴하고 나서자 국내외 유명 연출가들이 앞다퉈 도전장을 내밀었고, 그리스비극을 비롯해 브레히트 희곡, 소실된 7바탕 부활에 완전 창작물까지 기발한 레퍼토리들이 거듭 탄생하는 중이다.


국립극장 2016~2017 레퍼토리 시즌 개막작으로 선보이는 ‘오르페오전’(23~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은 최초로 시도되는 ‘오페라 창극’이다. 지난해 ‘적벽가’에서 판소리의 형식과 의미를 우주적 스케일로 제시한 전 국립오페라단장 이소영 연출의 두번째 도전이다. 본인의 장기인 오페라의 정서를 적극 끌어들여 그리스 신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이야기를 ‘올페와 애울’의 소리 한마당으로 풀어낸다.


스펙터클한 무대 못지않은 관전 포인트는 확 젊어진 로맨스 창극이라는 점. 국립창극단에서 가장 젊고 비주얼이 뛰어난 단원들이 전면에 나선다. 최근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 KBS ‘불후의 명곡’ 등 음악예능에 출연해 ‘국악계 아이돌’로 떠오른 김준수(25)도 ‘올페’가 되어 젊어진 무대를 이끈다.

연습실에서

3일 오후 국립창극단 연습실에는 북 장단 대신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이 깔렸다. 훤칠한 외모의 주역 배우들이 애절한 눈빛을 교환하며 분위기를 잡는다. 보는 사람도 로맨틱 감성이 솟아오르려는 찰나, 날카로운 음성이 찬물을 끼얹는다. “준수야, 너 지금 리듬 타면서 걷는 거니? 아, 그게 타는 거야? 그럼 진짜 큰 문제구나.”


공연계 ‘카리스마 갑’ 이소영 연출의 살벌한 디렉션이 이어지지만 앳된 외모의 청년도 기죽은 기색은 없다. “오늘 정말 부드러우신 편”이라며 웃어넘긴다.


“연출님도 가까이서 얘기해 보면 천상 여자거든요. 하지만 일단 작품 속으로 들어가면 예민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 있죠. 바짝 긴장하지 않으면 끌고 갈 수 없는 작품이에요.”


김준수는 요즘 가장 바쁜 국악인이다. ‘춘향가’ 앨범을 피처링한 에스닉 퓨전 밴드 ‘두번째달’의 콘서트와 ‘오르페오전’ 준비를 최근까지 병행했다. 이날도 전날 밤 10시까지 소극장에서 ‘춘향가’ 14곡을 불렀지만 어김없이 아침 9시에 연습실에 모여야 했다. “제가 해야되는 일이니까요. 무대서 관객 앞에 섰을 때의 희열을 좋아하거든요. 연습이 고되도 공연에 선 제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이 진짜 좋아져요. 조금씩 단단해지는 과정 중에 벅차오르는 느낌도 좋구요.”


이 연출과는 두 번째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의 작품이라 처음 만난 것처럼 서로 부딪쳐가며 적응해 가고 있단다. “발 하나 떼고 가만히 서는 모습 자체에 심혈을 기울이세요. 이 작품에서의 몸짓은 소리꾼의 몸짓이 절대 아니거든요. 우리 몸에 밴 자연스런 발림은 용납이 안되죠. 그래도 창극이니 소리적인 느낌을 살려야 되는 고민도 있구요.”


‘오페라 창극’은 어떻게 다른지. “합창의 몫이 커요. 소리를 감싸는 힘이 대단한데, 오페라와 창극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펙터클을 보여줍니다. 무대장치도 스케일이 아주 큰데, 연출님이 워낙 무대에서 배우를 빛나게 하는 노하우가 있으시니까요.”


우리 소리의 원형에 천착했던 ‘적벽가’에 비해 이번엔 노래 위주인데, 시김새(국악의 장식음)를 어디까지 가져갈지가 관건이겠어요. “이질감이 들지 않는 선에서 곡의 배분이 분명해요. 멜로디가 강한 곡으로 시작해 뒤로 갈수록 점점 소리적 느낌이 강해지다가 엔딩에선 격정적으로 소리로 치닫게 되죠. 부드럽게 국악가요 느낌이 나는 곡과 진짜 소리를 보여주는 곡, 그 중간의 곡이 고루 있는데 그 부분에서 시김새를 어떻게 살릴지 모두 고민하고 있어요.”


오페라와 창극 경계 넘나드는 스펙터클 무대 사실 방송 출연 섭외는 이전부터 있었다. 중앙대 재학시절 객원으로 주연을 맡았던 ‘배비장전’부터 주목받기 시작, 2013년 최연소 입단 이후 ‘국립창극단의 얼굴’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단체 일정 때문에 고사해 오다 올 여름 마침내 출연한 ‘너목보3’에서 대박이 터졌다.


“출연 전에 고민이 많았어요. 혼자 활동하는 몸이 아니니 단체의 이미지까지 생각해야잖아요. 그 방송에 나가서 가요를 국악 느낌으로 부른 국악인이 반응이 좋았었다며 제게도 그런 걸 권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우리 소리를 제대로 들려주고 싶어서 ‘두번째달’과 부른 ‘춘향가’를 강력하게 밀었어요. 방송 나가고 1년치 연락을 며칠간 다 받았어요. 답장을 다 못해 미안했죠.”


김준수를 사제지간으로 만난 대학 1학년 때 ‘딱 보고’ 스타 탄생을 예감했다는 김성녀 예술감독은 요즘 그를 보면 살짝 걱정이다. 외부활동의 유혹에 흔들릴까 봐서다. “아이돌 외모에 춤도 잘 추는데 소리는 또 ‘성골진골’ 성음이에요. 2학년 때부터 이도령을 시키며 키웠죠. 때묻지 않은 순수함도 장점이고, 스폰지처럼 모든 걸 흡수해 발전 속도도 빠르죠.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것 같아서 독서 미션을 줬더니 매번 카톡으로 독후감을 보내오는데, 글솜씨도 몰라보게 좋아졌어요. 본인이 큰 재목이란 걸 알고 흔들림 없이 큰물에서 놀아줬으면 해요.”


스승의 그런 걱정을 아는 듯, 그도 단체 활동과 외부 활동을 잘 조절하며 병행하겠다고 했다. “어디든 소리를 들려주는 자리엔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소리꾼으로서 그런 준비는 늘 돼 있어요. 저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더 창극을 보러올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니까. 그게 앞으로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창극단에서 새 작업이 참 많았는데, 어떤 작품이 가장 강렬했나요. “늘 새로웠죠. 작품 성격이나 인물 캐릭터도 한 번도 비슷한 게 없었어요. 코믹·스릴러·멜로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갔지만 코믹연기가 제일 어려웠어요. 첫 작품이었던 ‘배비장전’은 내 안에 여유도 없는데 더블캐스팅이었던 남상일 선생님의 해학을 따라하느라 애를 먹었죠. 따라하려 해도 맘대로 안 돼서 속상해 울기도 했고요. 지나고 보니 약이 되어 쌓인 것 같네요.”


프랑스 원정 갔던 ‘변강쇠 점찍고 옹녀’에서는 장승 역할에 그쳤는데. “변강쇠 이미지와 제가 맞지는 않지만, 시켜만 주시면 저에게 맞는 강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학 때부터 이도령을 많이 했지만 거기에 갇혀있고 싶진 않거든요. 어떤 배역이든 나만의 것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러 색깔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아이돌 외모에 소리는 타고난 성골진골” 판소리 성음을 타고난 ‘성골진골’로, 전남 강진에서 나고 자라 초등 4학년때부터 소리를 배웠지만 국악집안 출신은 아니다. 수업시간에 국악풍 동요를 잘 부르던 소년을 눈여겨본 담임선생님이 국악경연대회에 학교 대표로 내보냈고, 거기서 처음 들어본 판소리에 소년은 그만 빠져들고 말았다. “그때 들려온 판소리 사설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어요. 그저 처절하게 뽑아내는 음색이 제 귀에 다가와 꽂히더군요. 가요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는데, 이상하게 꼭 배워보고 싶더라고요.”


그는 소리를 시작하던 그해 겨울 1월 27일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했다. 엄마 손잡고 찾아간 선생님 댁에서 단가 ‘만고강산’을 불렀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단다. 하고 싶은 걸 처음 배워보는 그 시작이 너무나 즐겁고 설레었고, 어렵지만 해내려는 욕심이 앞섰다. 하지만 시골에서 판소리를 한다고 박수쳐 주는 사람은 없었다. 친구들도, 부모님도 “굳이 왜?”라고 물었다.


“남들이 몰라준다고 속상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소리 자체를 운명적으로 만났거든요. 그런데 ‘이만하면 됐다’가 아니라 하면 할수록 할 게 더 많아지고, 알면 알수록 점점 무서워지는 끝이 없는 길이라 두렵기도 해요. 평생 놓을 수 없는 공부다 싶어요.”


뮤지컬 스타 김준수와 동명이인인지라 자칭 ‘시골 준수’라 몸을 낮추는 그는 시골 농가에서 들로 산으로 자유롭게 소리를 닦으러 다니면서도 마음속에 ‘도시 진출’의 꿈을 품었다. 늘 혼자여야 했기 때문이다. “시골에선 공연 관람 같은 문화생활도 못하고, 가끔 TV로 국악프로 보는 게 전부니까요. 친구들은 판소리가 뭔지도 모르고요. 무조건 큰물에서 놀고 싶어서 더 열심히 했는데, 벌써 꿈을 이뤄 버렸네요.”


방송을 타니 고향에선 동네 경사가 났다. 뒷바라지를 힘겨워하시던 부모님에겐 최고의 효도였다. “아버지가 그렇게 자랑을 하고 다니신대요. 얼마 전엔 강진에서 축제추진위원장을 하시는 아버지 친구분이 연락을 하셨죠. 예전에 공부할 때는 그렇게 안 불러주시더니, 이제 출연료 줄 테니까 제발 와달라, 네 시간에 맞춰주겠다고 하시대요(웃음). 고향이라 맘 같아선 가고 싶지만 일정 때문에 결국 못 갔어요. ‘이제 좀 컸냐’고 하시겠지만, 제 마음은 그게 아니랍니다(웃음).”


지난 설에도 마당놀이 공연 때문에 고향에 못 내려갔다는 그는 이번 추석에도 ‘오르페오전’ 연습 때문에 못 가게 됐다며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작품을 위해서라면…”하면서 주먹을 불끈 쥔다. “큰 역할을 맡았으니 사명감을 가져야죠. 연출님이 워낙 멋진 무대를 구상하고 계시니 우리만 잘하면 되거든요. 뮤지컬을 능가하는 창극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렵니다. 사람들이 창극의 매력을 아직 몰라서 그렇지, 뮤지컬처럼 다 일어나서 기립박수 칠 날이 꼭 있을 거에요. 전석 기립의 그날까지, 뛰고 또 뛰겠습니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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