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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ICT 현대화 이끈 컴퓨터 네트워크 분야 석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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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호 6 면

홍충선 교수 경희대 전자공학 학사, 일본 게이오대 정보 및 컴퓨터과학 박사, KT 통신망연구소 수석연구원 겸 연구실장 역임, 현재 경희대 연구처장 겸 산학협력단장 겸 BK사업단장, 한국정보과학회 회장, 한국정보기술단체총연합회장

179편의 과학기술색인(SCI) 논문 게재, 295편의 국제학술대회 논문 발표, 국내 특허 106건, 국제 특허 7건, 국제학술대회 최우수 논문상 6개 수상….


 홍충선(56) 경희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쌓아 온 업적의 한 단면이다. 그를 지켜보면 ‘치열함’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대학교수로서 과연 그처럼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되뇌게 만든다. 연구도, 강의도, 대학 및 컴퓨터공학계에 대한 봉사도 전쟁을 치르듯 수행하는 그에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일 중독자라도 보통 이상이 아니면 홍 교수처럼 일상을 꾸려 가기란 극히 어려울 것이다.


 그는 정보통신업체 KT(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 연구소의 연구실장을 거쳐 경희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요즘 공학계의 화두 중 하나인 ‘현장을 잘 아는 교수’인 셈이다. 당시 그가 개발을 주도했던 기술은 대부분 산업현장에 투입돼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 현대화에 기여했다. 우리나라의 통신망 현대화가 한창 추진되던 시대의 한복판에서 홍 교수도 연구원으로 활약했다. 그 시절부터 그는 정보통신 네트워크에 묻혀 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컴퓨터 네트워크 전문가로 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SCI 게재 논문 179편, 국내외 특허 113건 그의 주 무대는 인터넷·사물인터넷(IoT)의 핵심 중 하나인 센서 네트워크 연구 분야다. KT 연구소 근무 당시 직접 현장에서 쌓은 기술 개발 경험을 대학에 전수했는가 하면 센서 네트워크 같은 신기술 개척에도 앞장서 왔다.


 지난 5월 경희대 국제캠퍼스 교정엔 현수막 하나가 붙었다. 네트워크 분야 세계 최대인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 통신네트워크학술대회 ICC 2016에서 홍 교수의 논문이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어떤 과제가 맡겨지면 해결될 때까지 끌로 파듯 집중하는 홍 교수의 성격이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냈겠다 싶었다. 그 논문의 내용은 정보통신기기들의 작동 여부를 데이터센터에서 자율적으로 관리해 전력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을 제안한 것이다. 컴퓨터를 비롯한 정보화기기가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들 기기의 전력 소모량 절감은 핫 토픽 중 하나다.


 홍 교수는 몇 년 전 전력 관리에 혁신을 몰고 올 기술로 평가받는 ‘스마트 그리드’ 관련 센서 네트워크 특허를 억대 로열티를 받고 국내 공익 특허관리회사에 넘겨줬다. 사물인터넷이라는 용어가 생소하기만 하던 2004년엔 전문 강좌를 개설했고, 관련 핵심 칩에 지그비(ZigBee) 보안 모듈을 탑재해 세계 처음으로 상용화하는 쾌거를 거뒀다.


 홍 교수 같은 독특한 성격은 공학자가 성과를 내는 데 아주 중요한 특성이다. 이런 성격 덕에 그는 군 복무 때나 첫 직장(KT 연구소)의 전임연구원으로 근무할 때 한몫을 톡톡히 해 조직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군 복무 시절 통신장비 정비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수리가 복잡한 고장은 으레 ‘홍 병장’ 앞에 쌓이는 바람에 쉴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한국군과 미군이 합동으로 근무하는 곳이었던 덕에 영어 또한 덩달아 능숙해졌다. 지금 공학자로서 국제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데 ‘언어 밑천’을 쌓는 환경이 됐다.


고장난 군 통신장비 수리 해결사 ‘홍 병장’KT 연구소에선 전화 모뎀을 통한 인터넷→종합정보통신망(ISDN)→초고속인터넷(ADSL)으로 진화해 온 인터넷 역사 가운데 KT의 ISDN 기술 개발의 한 축을 담당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통신망을 현대화하는 데 획기적인 기여를 했던 전전자교환기(TDX)에 ISDN 기능을 넣었다. 이어 ISDN과 인터넷 연동장치 개발, ISDN을 이용한 원격의료시스템 개발에 잇따라 성공했다.


 석사 출신의 전임 연구원이었던 그는 KT로부터 전액 장학금을 받고 일본 명문 사학인 게이오대로 박사 과정 유학을 가는 행운을 잡았다. 당시 KT는 석사 출신 연구원에게도 신입사원 때부터 부장급 대우를 했다. 거기에 유학까지 가게 됐으니 홍 교수에게는 KT가 ‘흥부의 박’이나 다름없었겠다 싶다. 일본 유학을 떠나기 직전 발갛게 상기됐던 홍 교수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그는 “국가(KT가 공공기관이었기 때문)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아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며 “그 빚을 갚는 길은 훌륭한 공학 인재 양성일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그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후학 양성과 연구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이유일 터다.


17년간 자정 넘어 귀가한 ‘연구벌레’경희대 교수로 1999년 부임할 땐 부인에게 “10년간만 학교에서 자정 넘어 귀가하는 것을 봐 달라”고 해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17년이 흐른 요즘에도 귀가 시간은 여전하다고 한다. 물론 결혼 전인 KT 연구원 시절에는 밤낮 구분이 별 의미가 없었다. KT 연구소가 있던 서울 목동전화국의 출입문이 새벽에 잠겨 있어 담을 넘어 퇴근한 적도 다반사였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귀가가 늦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학의 연구처장 겸 산학협력단장, BK사업단장을 맡고 있는 그는 사무실 직원들이 퇴근할 때 연구실로 ‘출근’한다. 그래서 경희대 내에서 그의 연구실은 ‘불 꺼지지 않는 방’으로 통한다.


 그는 대외적으론 컴퓨터 관련 국내 최대 학회인 한국정보과학회 회장, 세계적 학술지인 IEEE 커뮤니케이션 매거진(Communications Magazine) 등 5개 SCI 학술지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는 국내외적으로 그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 어쩔 수 없이 ‘마당발 아닌 마당발’이 돼 버렸다고 말한다.


칭화대, 규슈대서 ‘미래 인터넷’ 영상 강의홍 교수는 민간 외교관 역할도 하고 있다. 그가 지도하는 대학원생(28명) 중 절반가량이 외국인 학생이다. 그동안 홍 교수가 배출한 80여 명의 석·박사 중 상당수는 지금 미국·캐나다·호주·베트남·중국 등 10여 개국으로 돌아가 중책을 맡아 ‘지한파’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유학생들의 학비부터 숙소 등 한국 유학에 필요한 세세한 부분까지 챙겨 주기 때문에 입소문을 타고 유학생들이 그에게로 몰려온다고 한다.


 그는 경희대, 중국 칭화대, 일본 규슈대에 2년마다 ‘미래 인터넷’이라는 대학원 영상 강좌를 2010년부터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3개국의 시간대가 거의 비슷해 강좌 동시 개설·수강이 가능하다. 강의실 수업과 마찬가지로 3개국 학생들이 수업을 영상으로 시청하며 질의응답을 하는 형식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대학과는 시차 때문에 하기 어렵다. 동북아 3개국의 새로운 교육 모델이 될 수 있는 시도가 아닐 수 없다.


 홍 교수는 요즘 미래 인터넷 기술 개발에 연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그의 연구실에서는 스마트폰의 경우 기지국을 거치지 않고 스마트폰끼리 통신하는 기술(D2D), 차량이나 제조장비의 부품 마모 정도를 알려주고 관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반의 센싱 시스템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새로운 인터넷 세계를 여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되길 바라는 홍 교수의 오늘 밤 귀가 시간도 자정을 넘을 것 같아 보였다.


박방주 교수sooyong1320@ga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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