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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뒤통수 친 김정은…사드 반대하는 중국 궁색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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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9월 9일 오전 9시.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 9월 9일은 북한 정권수립일이다. 인공지진이 감지된 건 서울시간 9시30분, 평양시간으론 9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택일뿐 아니라 택시(擇時), 즉 시간까지 정교하게 선택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정은이 정권수립일인 9일을 디데이로 택한 건 내부론 체제 결속용 자신감이고, 외부론 미국과 중국을 향한 고도의 메시지라는 게 정부 당국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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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9일 5차 핵실험과 관련,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들이 장비한 전략탄도로케트들에 장착할 수 있게 표준화·규격화된 핵탄두의 구조와 성능과 위력을 최종적으로 검토 확인하였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 5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화성포병부대 탄도로켓발사 훈련을 지켜보는 모습. [사진 노동신문]

익명을 요구한 대북 정보소식통은 “김정은이 8일 헬기를 타고 함경도 쪽으로 현지지도를 갔다는 첩보가 있다”고 말했다. 핵실험 장소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인근이다. 이 첩보대로라면 김정은이 헬기를 탄 시점은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결과 사상 첫 북핵 규탄 성명이 채택된 시간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물론 중국·러시아조차 한목소리로 북핵을 규탄하는 시점에 보란 듯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이다.

중국 G20 직후 도발, 자존심 건드려
두 달 뒤 뽑힐 미국 새 대통령에겐
‘날 무시말고 상대하라’ 메시지도

김정은은 중국의 자존심도 건드렸다. 중국이 처음으로 의장국을 맡아 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9월 4~6일) 직후 각국 정상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기도 전에 코앞에서 핵실험을 했다. 핵실험 소식을 오바마 대통령 등은 전용기 안에서 접했다. G20을 계기로 열린 한·중,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북핵 위협 때문에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가 필요하다”는 한·미의 주장에 맞서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김정은은 아랑곳하지 않고 핵실험을 강행, 중국의 입장이 군색해졌다. 비록 중국에 사전통보를 했더라도 시 주석이 난처하긴 마찬가지였을 거라는 분석이다.

김정은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한 의도에 대해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북제재가 소용 없다는 것을 과시하면서 동북아의 안보 딜레마를 가중시키겠다는 선언”이라고 풀이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안보학부 교수는 “김정은이 한·미·중 모두의 뒤통수를 쳤다”고 말했다.

김정은 나름으로는 최적의 타이밍을 택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선(11월 8일)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데다 ‘유엔 역사상 비군사적 조치로는 가장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 결의’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2270호 결의 후 반년이 지난 시점이다. 새 미국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은 ‘나를 무시하지 말고 상대해야 한다’는 선명한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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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내부적으론 이번 핵실험이 체제 결속을 다지는 효과도 있다. 빨치산 가문으로 북한의 대표 엘리트인 태영호 전 주영 공사의 탈북 등으로 뒤숭숭한 시점에서 분위기 반전 카드가 필요했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국회 정보위에 “내부 동요를 차단하고 안보불안을 조성해 남북 대화를 압박하려는 의도도 보인다”고 보고했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탈북 러시가 이어지는 시점에 핵실험을 함으로써 ‘우린 우리 갈 길을 간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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