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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교육·의료비 공짜…뉴질랜드, 애 키울 걱정 안 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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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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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여성 대사들은 출산율을 높이려면 양성평등과 모성 보호 등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앙엘 오도노휴 아일랜드 대사, 클레어 펀리 뉴질랜드 대사, 안 회그룬드 스웨덴 대사. [사진 김현동 기자]

“추석은 저희들에겐 정말 쉬는 날이에요. 대사관 문 닫고 가족·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려고요.”

주한 여성 대사 3인이 말하는 출산·육아정책

한가위를 열흘 앞둔 지난 5일 서울 중구 동빙고동 뉴질랜드 대사관저에 주한 여성 대사 3인이 모였다. 클레어 펀리 주한 뉴질랜드 대사, 안 회그룬드 스웨덴 대사, 앙엘 오도노휴 아일랜드 대사(나라명 가나다순)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뉴질랜드 대사관이 이날 개최한 여성 리더십 리셉션에 참석차 왔다가 인터뷰에 응했다. 뉴질랜드는 1893년 9월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나라다. 이를 기념해 각국의 여성 리더십을 장려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엔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과 9명의 주한 여성 대사, 재계·학계 인사 20여 명도 참석했다. 인터뷰에 응한 세 명의 대사에게 각자의 나라에서 ‘명절 스트레스’는 없는지 물었다.

“스웨덴 여자들도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이 되면 스트레스를 받아요. 음식과 가족들에게 나눠 줄 선물을 이것저것 준비해야 하니까요.”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회그룬드 대사가 대답했다. 그는 “이번 추석 땐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펀리 대사도 “추석에는 서울이 텅 비어 산책하기 좋더라. 연휴 기간 친구들을 대사관저로 초청해 함께 만찬을 즐길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해 2월과 9월 각각 부임한 펀리 대사와 회그룬드 대사는 올해로 두 번째 맞는 추석이다. 2013년부터 재직 중인 오도노휴 대사는 한국 명절 분위기에 친숙한 편이다. 그는 “남편이 미국인이라 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을 쇤다. 그런데 남편이 (메인 요리인) 칠면조를 포함해 모든 식사를 준비하기 때문에 나는 별로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옆에서 두 대사가 놀란 듯 연신 “진짜냐”며 되물었다.

뉴질랜드·스웨덴·아일랜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서도 양성평등 지표가 높은 국가에 속한다. 이 때문인지 이들 대사는 고위 공직에 오르기까지 법적·제도적으로 불평등하다고 느낀 기억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한다는 데는 모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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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는 남녀 임금 격차 비율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적다. 2014년 기준 5.6%로 OECD 전체 평균(15.6%)의 3분의 1이다. 한국(36.7%)과 비교하면 7분의 1 수준이다. 펀리 대사는 “여기엔 오래전부터 법률을 정비해 온 노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는 1972년 공정임금법(Equal Pay Act)을 제정해 남녀 임금 격차를 없앴고 93년 사회 전반에 성차별을 포함한 각종 차별을 금지하는 국가인권법(Human Rights Act)을 도입했다. 펀리 대사는 “5%의 임금 격차는 아주 적은 편이지만 이마저도 ‘제로(0)’가 되면 전체 경제에 10%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양성평등은 당위적 차원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웨덴은 공공분야에서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회그룬드 대사는 “각국에 파견한 대사의 40%, 국회의원의 절반가량이 여성”이라고 말했다. 2014년에는 27세의 이민자 출신 여성이 고등교육부 장관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국제의회연맹(IPU)의 2015년 1월 자료에 따르면 스웨덴의 여성 의원 비율은 43.6%로 OECD에서 1위였다. 같은 기간 한국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6.3%였다. 아일랜드 역시 공공부문에서는 여성 할당제(30%)가 있다. 오도노휴 대사는 “현재 아일랜드 의원 22% 정도가 여성인데 좀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면서 동시에 출산율이 높은 비결은 무엇일까. 2014년 아일랜드의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가임기 여성이 낳는 출생아 수)은 1.95명, 뉴질랜드 1.92명, 스웨덴 1.88명이다. 한국(1.21명)에 비해 크게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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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선 ‘일하는 여성(워킹맘)’이란 말 대신 ‘일하는 부모’라는 용어를 쓴다”는 스웨덴 대사의 말에 답이 있다. 스웨덴의 출산·육아정책은 부모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한다. 회그룬드 대사는 “여성에게만 집안일이나 육아의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임신이나 출산으로 직장을 잃는 여성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뉴질랜드는 아이 키우는 비용을 줄이는 데 중점을 뒀다. 연 소득 7만4000달러(약 6063만원) 이하 가구의 ‘일하는 부모’들에게 가족공제·부모공제·직장공제 등 다양한 세제 혜택을 준다. 펀리 대사는 “6~15세 어린이에 대한 교육비와 의료비가 무상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출산을 하기에 안정적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아일랜드는 2004년 모성보호법(Mater nity Protection Act) 개정을 통해 법정 출산휴가 기간을 18주에서 26주로 늘렸다. 오도노휴 대사는 “법이 있는 것보다 이것을 준수하게끔 주변에서 압박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여성이 출산 후 똑같은 일자리로 돌아올 필요가 없다. 동등한 수준의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이른바 ‘경단녀(경력단절 여성)’를 막을 수 있다는 조언이다.

그렇다고 세 나라가 완벽한 양성평등을 이룬 건 아니다. 오도노휴 대사는 “여성이 공직 등 지도층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분명 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밝히고 없애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에서도 집안일·육아·부모 부양 등 ‘무임금 노동’을 여성이 남성보다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여성 스스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펀리 대사는 “연구에 따르면 여성들은 자신이 원하는 모든 조건이 갖춰졌을 때만 어떤 자리에 지원하고, 남성은 기준의 60%만 충족되면 도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회그룬드 대사 역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스스로 자신감이 없거나 기회가 생겼을 때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는 경향이 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만족시키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성취하기 위해 사회와, 또 자신과 싸워야 한다”고 했다.

“파이팅, 파이팅!” 펀리 대사가 옆에서 주먹을 꼭 쥐며 한국어로 외치자 일순 웃음이 터졌다. 오도노휴 대사가 마지막으로 말을 이어 받았다.

“저도 열일곱 살 된 딸이 있는데, 요즘 젊은 여성들 정말 똑똑하고 강인하죠. 그들에게 단지 일뿐 아니라 삶의 모든 면에서 장벽을 뛰어넘는 걸 주저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말 그대로 야망을 가져요(Be ambitious)!”

이탈리아 ‘생식의 날’ 지정, 덴마크는 섹스 장려 광고까지

많은 OECD 국가가 ‘저출산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적정한 인구는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각종 이색 출산장려책이 동원되면서 때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저출산·고령화 위기에 직면한 이탈리아는 오는 22일 ‘생식의 날(Fertility day)’ 지정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이탈리아 복지부가 낸 홍보 포스터에 젊은 여성이 모래시계를 들고 ‘아름다움에는 나이가 없지만 생식력에는 나이가 있다’는 문구를 써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덴마크에선 지난 7월 한 여행사가 공익광고를 패러디한 ‘성관계 장려’ 광고를 내 논란이 일었다. 광고는 “섹스가 덴마크의 미래를 구할 수 있을까요?”라는 도발적인 문구로 시작한다. 이어 27년째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는데 정부가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프랑스 파리 등 로맨틱한 도시로 휴가를 떠나 아이를 만들라”는 문구를 붙였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외동을 비하하는 ‘떡잎 광고’가 문제가 됐다. 한국생산성본부가 공모한 저출산 공익광고에서 당선작은 시들어 있는 외떡잎 새싹과 건강한 쌍떡잎 새싹을 대비한 사진을 썼다. ‘외동은 형제가 없어 사회성이나 발달이 느리고 자기중심적이 되기 쉽다’는 문구도 있었다.

영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신생아는 공공재’라는 파격적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이 덕분인지 현재 영국의 합계출산율은 1.84로 높은 편이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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