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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자멸을 재촉하는 북한 5차 핵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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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북한이 또 핵실험 도발을 감행했다. 어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지역에서다. 2006년 1차 핵실험을 실시한 이래 다섯 번째다. 이번 북한의 핵실험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기상청이 관측한 북한 핵실험의 지진 규모 5.04를 폭발량으로 환산하면 10±2kt(1kt=TNT 1000t 폭발 규모)으로 역대 최대다. 북한의 1∼4차 핵실험의 폭발 규모 1∼7kt에 비해 두 배가량 된다. 미국 지질조사국이 관측한 진도가 5.1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이번 지하 핵폭발 규모를 최대 20kt까지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태평양전쟁 때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15kt과 유사한 수준이다. 과거 인도와 파키스탄이 두 차례에 걸쳐 6개의 핵폭발장치를 핵실험한 뒤 곧바로 핵무장에 들어간 사례로 볼 때 북한도 앞으로 1년 이내에 핵무기를 실전 배치할 가능성이 크다. 핵탄두를 장착한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이 조만간 현실화된다는 얘기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김정은
미군의 전술핵 조건부 재배치하고
중국은 대북 원유 밸브 걸어잠가야

이번 북한의 핵실험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잘못된 의지와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올해 들어서만 두 번이나 핵실험을 실시했다. 탄도미사일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비롯, 무수단과 노동미사일 등을 30여 차례 발사했다. 핵무장 계획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 3월 15일 김정은 위원장이 “빠른 시일 안에 핵탄두 폭발시험과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탄도 로켓 시험발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말한 것과 일치한다. 이에 따라 북한은 멀지 않은 시간에 소형화된 핵탄두를 SLBM을 비롯한 무수단과 노동미사일에까지도 장착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핵실험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볼 수 있다. 어제 북한 핵무기연구소는 “전략탄도 로켓에 장착할 수 있게 표준화, 규격화된 핵탄두의 성능과 위력을 최종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대로라면 북한 핵무기가 사실상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이른바 레드 라인(red line)을 넘은 것이다. 이제 북한의 핵무장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는 뜻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지금까지 방어적 입장에서 대처해온 정부 정책은 한계에 다다랐다. 기존의 대북제재만으로는 북핵을 억지할 수 없다는 점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제 북한 핵에 보다 공세적으로 적극 대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런 점에서 어제 국방부가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비한 ‘한국형 3축 체계’를 발표한 것은 당연한 자구 조치다.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킬체인(Kill Chain)과 공중 요격하는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에, 세 번째 축인 대량응징보복개념(KMPR: Korea Massive Punishment & Retaliation)을 추가한 것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KMPR은 북한이 핵으로 우리에게 위해를 가할 경우 북한의 전쟁지도본부 등 지휘부를 직접 겨냥해 응징 및 보복하는 체계라고 한다. 군당국은 이를 위해 정밀타격이 가능한 미사일 등 타격전력과 정예화된 전담특수작전부대를 운영할 계획이다. 한국과 미국은 공동으로 세운 선제타격 개념이 포함된 작전계획도 발전시키고 있다.

하지만 북한 핵에 대한 좀 더 강력한 억제력이 요구된다고 본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미국의 전술핵을 조건부로 한반도에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이 제거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전술핵을 배치하자는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선 독일 등 회원국의 공군 전투기에 전술핵을 직접 장착해 작전할 수 있도록 조직화돼 있다. 전술핵 사용에 대한 결정도 미국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의 요구에 의해 작동할 수 있도록 돼야 한다.

이와 함께 대북제재에 중국의 보다 적극적인 동참도 필요하다. 이번 핵실험은 북한의 정권수립일인 9월 9일에 맞춰진 면도 있지만 중국 항저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끝난 직후 이뤄졌다.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북한이 핵무장을 한 뒤에는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가 더욱 복잡하고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과 도발로 한국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반도체·휴대전화 등 각종 전자제품의 생산에 차질이 생길 경우 중국 경제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다. 그렇게 되면 중국 경제성장에 어려움이 생기고 시진핑 국가주석이 제시한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하는 데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결의안 2270에 의한 대북 경제제재를 제대로 추진해 왔는지부터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무장을 중단시키기 위해 북한에 유류 제공을 중단하고, 북·중 국경지역에서의 불법 교역도 엄격하게 금지하는 방안을 중국은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북한의 핵실험은 자멸을 재촉하는 위험한 도박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한·미 동맹을 보다 확실히 다지고, 한·중 파트너십을 지렛대 삼아 북한의 불장난을 막는 일이다. 어느 때보다 내부 단합도 중요하다. 북한의 핵무장 가시화로 안보상황이 위중한데도 정부 비난에만 열 올리는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의 태도는 볼썽 사납다. 북핵이 지금의 위기상황에 이르는 데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책도 한몫을 했다. 언제까지 니 탓 네 탓만 할 것인가. 정부와 정치권은 이제라도 머리를 맞대고 북한 핵무장 가시화에 따른 종합적인 대책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