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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일본’보다 더 심각한 청년실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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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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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영화 ‘터널’ 끝부분, 주연 하정우씨가 터널에 진입할 때 매우 긴장한다. 터널이 무너져 30일 넘게 갇혀 있었던 트라우마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터널을 지날 때면 대개 긴장한다. 음습함 때문이다. 터널을 빠져나왔는 데도 잇따라 터널이 다시 나타나면 왠지 불안해진다. 일본 경제가 이랬다. 늘 나빴던 건 아니었다. 가령 2003~2007년은 괜찮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고꾸라졌지만. 터널을 통과했다고 안심할 때쯤 다시 터널로 빠져드는 일이 반복됐다. 터널, 즉 경기 침체가 일상화된 거다. 경제가 좋아져도 곧 다시 나빠지겠거니 생각하면서 일본인들이 대비했던 이유다. 터널이 잇따라 나오면 차의 전조등을 계속 켜두는 것처럼. 소비 부진이 장기화된 까닭이다. 물가가 더 떨어질 텐데 왜 지금 소비하느냐면서. 일본 경제가 무려 20년이나 잃어버려졌던 건 이런 자포자기와 무기력함 때문이었다.

경제는 원래 호황과 불황을 반복한다. 지금은 힘들어도 조만간 좋아진다는 믿음이 있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일본 경제는 그게 없었다. 우리 경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좋아졌다 싶으면 곧바로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깊고 음산한 터널이 곧 나타날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까닭이다. 역시 무기력과 자포자기가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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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청년실업도 마찬가지다. 뚜렷한 해법이 없다. 기껏해야 청년 인구가 줄어들 때까지 버티라고 한다. 해외 일자리를 찾아라,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에 가라,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해 창업 전선에 나서라는 등등. 요컨대 ‘청년들이여,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 살길을 찾아라!’는 말이다. 틀린 건 아니지만 기성세대의 무책임성을 드러낸 사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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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청년실업이 심각했다. 장기 침체가 시작된 1990년대부터 청년실업률이 급격히 높아졌다. 2~3%에 불과했던 청년(25~29세) 실업률이 95년 4.3%, 2000년 6.2%로 뛰었다. 20~24세 실업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도 2014년부터 청년실업률이 급격히 높아졌다. 25~29세 실업률은 8%대, 20~24세는 10%대로 뛰었다(그림 참조). 심지어 올 들어선 청년(15~29세)실업률이 두 자릿수를 넘나들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청년실업이 부쩍 늘어난 까닭은 대략 두 가지다.

첫째는 청년 인구의 증가다. 20~29세 인구는 94년부터 줄었지만 2년 전부터는 외려 늘기 시작했다. 25~29세 인구도 마찬가지다. 99년부터 계속 줄다가 올해에는 늘기 시작했다. 인구가 많은 베이버부머(1955~63년생)들의 2세, 이른바 에코(echo) 세대의 영향 때문이다. 어떻든 향후 4~5년간 연평균 20만 명 정도의 청년이 고용시장에 더 나온다.

둘째는 올해부터 시작된 정년연장이다. 정년연장은 고령화 시대에 불가피했지만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하필 청년 인구가 늘어나는 올해 시작됐다. 정년이 연장되면 일자리 공급이 급격히 줄어드는 건 불문가지다. 정년연장의 혜택이 공공부문과 대기업 정규직에 집중된다는 걸 감안하면 ‘좋은 일자리’의 공급 축소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 때문에 청년실업률은 올해 사상 최고치인 10%대를 넘나들 게 자명하다. 향후 몇 년은 청년실업이 매우 심각한 화두로 떠오를 게다. 정부와 기성세대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고용정책을 시행해 놓고 청년들에게 스스로 해법을 찾으라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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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후반에는 청년실업이 완화될 수도 있다. 일본이 단적인 사례다. (그림)에서 보듯 경제성장률은 우리가 높은데도 청년실업 문제는 일본이 덜한 건 청년 인구의 감소 탓이 크다. 우리도 청년 인구가 크게 줄어드는 10년쯤 후엔 실업 문제가 해소될 거라는 주장은 일리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과 다른 부분도 있기에 단정하기 어렵다. 설령 그렇더라도 앞으로 10년 동안 고용시장에 나올 청년들은 어쩌자는 셈인가? ‘잃어버린 20년’으로 속절없이 무너진 일본 청년의 전철을 밟자는 건가? 일본의 당시 청년실업 문제는 지금 장기실업자 문제로 번졌다. 청년기에 훈련과 경험을 쌓지 못해서다. 일자리 숫자만 늘리기 위한 비정규직 확대 정책은 양극화와 저출산으로 파급됐다. 우리는 일본보다 청년실업률이 훨씬 더 높다. 당연히 더 심각한 문제로 점철될 거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답은 노동개혁이다. 이를 위한 정규직 노조와 대기업의 양보다. 청년 의무고용제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시행돼야 한다. 임금피크제의 정착, 비정규직의 축소, 정규직 확대도 시급하다. 대신 정규직 과보호는 완화하고. 물론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에 부담을 줄 게다. 전통적인 경제논리에도 맞지 않다. 하지만 지금은 이를 따질 계제가 아니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기업은 인건비를 더 부담할 여력이 있다. 국민총소득 중 기업소득 비중 등을 감안했을 때 그렇다. 정부는 고용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청년실업에 둬야 한다. 기업의 선의에 맡겨둬서도 안 된다. 재정과 통화정책도 ‘비전통’이 우세한 마당이다. 고용정책 역시 기존의 전통적 공식을 답습할 일이 아니지 싶다. 이대로 가다간 세대 간 갈등 폭발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저성장 등 ‘잃어버린 경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김 영 욱
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