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또 사상 최대 체불임금, 생계비 지원부터 강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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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경기 악화와 조선·해운 산업 구조조정 등의 여파로 올해 체불임금이 또다시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8월 말까지 체불액은 9471억원으로 이미 1조원에 육박했다. 피해 근로자만 21만4052명이다. 지난해보다 근로자는 12%, 체불액은 11% 급증했다. 올해도 수십만 명의 근로자가 우울한 한가위를 맞게 됐다.

임금 체불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극성을 부리는 사회악이다. 선진국의 경우 대개 임금 체불이 쌓이기 전에 법적 조치가 이뤄진다. 기업·산업 간 이동도 비교적 자유로워 임금 체불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직장을 옮기거나 밀린 임금을 받기가 쉽지 않다. 사회안전망도 부족하다. 이런 점을 악용해 고의·상습적으로 임금 지급을 미루거나 떼먹는 악덕 기업주가 부지기수다. 특히 피해자 대부분이 중소기업 근로자나 여성, 외국인, 청소년 등 사회 취약계층이란 점에서 임금 체불의 피해는 더 심각하다.

임금 체불이 근절되지 않는 데는 정부의 솜방망이 처벌 탓이 크다. 근로기준법은 체불 업주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하지만 재산은닉이나 도주 등으로 제재 사유가 제한돼 있어 실제로는 수천만원의 임금을 체불해도 100만~200만원의 벌금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범법으로 얻는 이득이 제재에 따른 불이익보다 크다는 얘기다. 게다가 체불임금을 일부만 주고 근로자와 합의만 하면 처벌도 받지 않는다. 그러니 ‘열정 페이’ 같은 임금 후려치기가 성행하고 ‘배째라’형 악덕 사업주가 활개를 치는 것이다. 그런데도 고용노동부는 또 체불 사업주 명단 공개, 구속 수사 확대 등 명절 때마다 들고 나오는 재탕·삼탕 대책만 늘어놓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근로자에게 임금은 자신과 딸린 식솔의 생계를 이어갈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임금 체불은 한 개인, 나아가 한 가정을 파괴하는 중범죄인 것이다. 추석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는 이들이 빈손으로 명절을 맞지 않도록 최소한의 생계비를 지원하는 방안부터 강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