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민의 협치 요구 외면한 20대 정기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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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협치의 기대 속에 출발한 20대 국회가 힘 대 힘, 강 대 강이 부닥치는 정글의 민낯을 드러냈다. 9월 1일 개회한 첫 정기국회는 이틀째 올스톱 되다 어제저녁 겨우 미봉됐다. 논란의 복판에 있던 정세균 국회의장이 새누리당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는 대신 사회권만 부의장에게 넘겨 추경안을 처리케 한 것이다. 인식의 차이는 조금도 좁혀지지 않아 20대 국회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다.

 국회의장실 밖 복도엔 여당 의원 수십 명이 진 치고 앉아 농성을 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야당 의원들만 참석한 인사·가습기 청문회장은 헛바퀴가 돌았다. 국회가 동물→식물→동식물 국회로 악성 진화하고 있다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국회가 이렇게 망가진 데엔 정세균 의장의 책임이 크다. 정 의장은 1일 개회사에서 “사드 배치와 관련한 정부의 태도는 우리 주도의 북핵 대응 측면에서 동의하기 어렵다”고 하는가 하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그 직을 유지한 채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국민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 “이번 정기국회 기간 내에 고위 공직자 비리 전담 수사기구 설치를 깊이 있게 논의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는 여야 입장 차가 큰 매우 민감한 이슈다. 특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는 북핵·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한·미 동맹이 결정한 안보주권적 선택으로 중국과 치열하게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사안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조사해도 국민 여론의 50%가 찬성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한국의 입법부 수장이 중국에 빌미를 주고 명백히 야당 입장에 편드는 발언을 했으니 내용적으로 부적절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장은 여야 간에 벌어지는 입법·정책·예산·정치 게임의 심판이요 공정한 관리자다. 국회법 20조가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한 것도 의장에게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런 정 의장이 경기장의 심판관이 아닌 플레이어로 나섰으니 절차적으로도 부적절했다.

 정 의장은 “국민의 뜻을 대신해서 발언했다. 내가 틀린 말 했나”라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사드 반대나 공수처 신설을 싸잡아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해선 곤란하다. 본회의장 사회석에 앉아 있는 한 국회의장은 ‘틀린 말’을 해서도 안 될 뿐 아니라 편파적인 말, 공정성에 의심을 살 수 있는 말도 해선 안 된다. 정 의장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자신의 언행을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새누리당도 국가 운영의 무한책임을 진 집권세력답지 않게 너무 막 나갔다. 국회의장의 발언이 부적절하긴 했어도 날치기로 안건 처리를 했다거나 동일한 문제를 반복해서 저지르는 상습성이 드러난 건 아니지 않나. 격한 집단감정에 휩쓸려 대안 없는 야당처럼 행동하는 일이 지속되면 국민의 비난은 여당에 쏠릴 것이다. ‘야당 연습하느냐’는 소릴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