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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은 쪼그려앉기 정말 못해?…거리 인터뷰로 보여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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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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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아시안 보스’의 스티브 박, ‘꼬요야 놀자’의 임소연, ‘빨강도깨비’의 김학. 각자 국제로펌의 금융변호사. [사진 유튜브]

“K팝을 하나도 몰랐는데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조회수가 1만도 안 됐을 때였는데 한국친구들한테 전화해서 이 사람 누구냐, 대박 날 거 같다고 했죠. 파장이 엄청나더군요. 제 직장상사들도 말춤을 추고. 영상의 영향력, 파급력을 실감했죠.”

‘아시안 보스’ 운영 스티브 박
동서양 차이 다룬 동영상으로 인기
영화정보 채널 ‘빨강도깨비’ 김학
1년 만에 누적조회수 3100만 넘어
어린이 채널 ‘꼬요야 놀자’ 임소연
“리포터 하며 좋아하는 일도 병행”

호주에서 변호사로 일했던 교포 1.5세 스티브 박(34)의 말이다. 급기야 그는 세계적 로펌을 그만두고 직접 동영상 창작에 나섰다. 일본계 호주 친구와 함께 아시아와 서양의 문화적·사회적 차이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아시안 보스’를 시작했다. 먹방·콩글리시에 대한 외국인의 반응, 한국인이 느끼는 대학진학의 중요성, 동양인은 쉽게 하는데 서양인은 잘 못하는 쪼그려 앉기 자세(일명 아시안 스쿼트) 등 다양한 주제로 거리 인터뷰를 진행해 화제를 모았다. 2013년 시작한 ‘아시안보스’는 현재 구독자수 약 19만명, 누적조회수 2100만에 달한다. 중학생 때 이민가 20년쯤 해외에 산 그는 8개월전 아예 한국에 돌아왔다. “커피숍에서도 와이파이로 쉽게 동영상을 올릴 수 있는 곳이잖아요.”

새로운 직업으로 크리에이터 또는 유튜버로 불리는 동영상 창작자를 택한 3040세대는 그만이 아니다. 영화정보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빨강도깨비’의 김학(40)씨는 본래 건설회사 해외영업 담당으로 일했다. 잦은 해외출장길에 영화를 즐겨보며 개인 블로그에 글을 쓰던 그는 뜻하지 않게 영상의 힘을 실감했다. “‘어벤져스2’가 나왔을 때 기존 시리즈에 대해 A4용지 11장 분량의 글을 썼어요. 근데 해외 창작자가 만든 8분짜리 동영상이 제가 하려던 얘기를 전부 다, 그것도 더 재미있게 하더라구요.” 그 길로 편집을 배워 영상을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연일 밤을 새다 두 달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유튜버가 됐다. 1년이 지난 지금 ‘빨강도깨비’는 구독자수 19만, 누적조회수 3100만을 웃돈다. ‘영화 속 활, 어떤 활이 가장 셀까’, ‘마블 영화 속 신비의 금속 비브라늄 심층탐구’, ‘최고의 여성 수퍼히어로 베스트7’ 등 다양한 주제별 요리가 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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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TV리포터, 건설회사 해외마케팅 담당으로 일하다 아시아와 서양의 차이, 어린이 놀이·교육, 그리고 영화 등 저마다의 관심분야를 주제로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 등에 공개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동영상 광고 등 이들의 현재 수입은 아직 직장인 시절에 못 미친다. 두 자녀를 둔 김학씨는 “퇴직금 등 생활비 계획을 마련해 3년 정도는 투자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불안했죠. 지금은 생활패턴 면에서 저도, 아이들도 만족해요.” 주 5일 근무, 6시 칼퇴근, 11개월 일하고 한 달 휴가 등 스스로 ‘꿈의 직장’이라 생각했던 부분도 실천 중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회식 대신 아내가 제안한 가족 외식을 한다. 그는 “조직생활은 의사결정 등 불가피하게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는데 그런 게 없다는 게 장점”이라며 “무엇보다 ‘내 일’이란 만족감이 크다”고 전했다.

반면 스티브 박은 “로펌에서 일주일에 70, 80시간 일하던 것보다 지금 더 많이 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성취감에 일 같지가 않다”며 “단지 재미있는 동영상을 만드는 게 아니라 가치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시아인은 좋은 대학 가서 의사·변호사·금융맨 등이 되면 성공한 거라는 사고방식이 많죠. 모험과 도전으로 세상을 바꾸겠다기보다는. 표현력·리더십도 약한 편이고.” 그도 예외는 아니었을 터. “인터뷰 능력이요? 저는 굉장히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요. 근데 하고픈 비전이 생기니까 다 하게 돼요.” 장차 미디어 기업을 세우는 게 그의 꿈이다.

이들과 달리 임소연(32)씨는 프리랜서 리포터 일을 병행하며 6개월 전 ‘꼬요야 놀자’를 시작했다. 어린이와 대화하며 장난감을 갖고 노는 유튜브 채널이다. ‘6시 내 고향’ 등 교양정보 프로에서 일해온 임씨는 친구 딸이 동영상을 즐겨보는데 착안했다.

“미혼이지만 교육에 관심이 많아요. 저는 주입식 세대, ‘안돼’ ‘하지마’를 많이 듣고 자랐지만 아이가 엉뚱한 얘기를 해도 ‘그래?’ ‘이건 뭔데?’하고 들어주려해요.” 그는 “리포터 생활을 통해 배운 게 공감능력”이라며 “현장을 파악하고 인터뷰를 이끌어내는 경험 덕에 아이와 대화하고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게 좀 수월한 것 같다”고 했다. 유튜버의 장점으로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방송과 달리)개편이 없다는 것”을 꼽았다.

구글코리아 박선경 부장은 “유튜브는 젊은 세대의 취미·취향만 아니라 나이와 상관없이 평소 가진 신념·가치를 나누는 보편적 동영상 소통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며 “취업 대신 창업을 꿈꾸는 20대,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30~40대 평범한 직장인들의 도전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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