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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드] 한국형 핵잠수함 가능한가…기술력은 충분, 안정적인 핵연료 확보가 관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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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제7함대 소속 핵잠수함 오하이오함이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기지에 정박해 있다. 미 해군은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내 안정과 주변국 협력 증진을 위해 오하이오함을 요코스카 기지에 배치했다"고 밝혔다. [미 해군]

"군 당국은 핵추진 잠수함 도입 등 북한 SLBM을 근본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검토하기 바란다.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3년에도 우리 군은 4000t급 핵추진건조함 건조를 추진하다가 중단된 전례가 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현 상황에 대한 우려 속에서 나온 말로 이해한다. 현재 핵추진 잠수함 문제에 대해선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 29일 정례브리핑)

새누리당이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와 관련해 핵잠수함 도입을 공론화했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국방부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일부 언론은 핵잠수함 도입을 가정해 다양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한국형 핵잠수함 건조는 가능한 일일까? 핵잠수함 국내 건조 가능성을 취재했다.

핵잠수함은 말 그대로 핵분열에서 얻은 에너지로 엔진을 돌리는 잠수함을 말한다. 잠수함의 가장 큰 장점은 수면 아래로 사라지면 위성 등으로 쉽게 위치를 추적할 없다는 '은밀성'에 있다. 핵잠수함은 디젤 등 재래식 잠수함에 비해 은밀성이 뛰어나다. 현재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디젤잠수함은 잠수 항해 중에는 3~4일에 한 번씩 수면 위로 부상해야 한다. 산소를 공급받아야 디젤엔진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우라늄의 핵분열에서 에너지를 공급받는 핵잠수함은 이론적으로 1년 이상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식량 공급과 대원들의 스트레스 해소 등을 이유로 작전 기간을 3~4개월로 한정하고 있다. 핵잠수함이 북한 SLBM에 맞설 수 있는 무기 체계로 꼽히는 건 이러한 장시간 작전능력 때문이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주장처럼 한국군이 마음을 먹으면 핵잠수함을 도입할 수 있을까. 현재 해군에서 보유하고 있는 잠수함은 디젤잠수함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디젤 엔진을 소형 원전으로 바꾸면 핵잠수함을 만들 수 있다. 원전 강국으로 분류되는 한국은 '원자력 소형화' 등 관련 기술을 꽤 확보하고 있어 핵잠수함용 원전을 만드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자력 관련 연구원은 "충분한 시간이 주워지면 현재 기술력으로 잠수함에 장착할 수 있는 소형 원전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건조 예산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검토한 노무현 정부 당시 국방부는 핵잠수함 1대 건조 비용을 1조3000억원으로 추산했다. 내년도 정부 예산은 사상 최초로 400조원을 넘어섰는데 핵잠수함 건조비는 정부 예산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대통령의 결단으로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인다면 예산 확보 역시 불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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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주력 잠수함인 214급(1800톤) 7번함 홍범도함이 2015년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진수됐다. 사거리 1000㎞의 해성-3 순항미사일로 무장했고, 연료 재충전 없이 경남 진해에서 하와이까지 왕복할 수 있는 해군 최대 잠수함이다. [중앙포토]

#세계적으로 NPT 5개국과 인도만 핵잠수함 보유

한국형 핵잠수함 건조는 기술력과 자본이 아닌 국제 정치 및 외교가 걸림돌이다. 가장 문제는 미국과 중국ㆍ일본 등 주변국의 반대다. 정부가 뛰어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 이를 넘어선다고 가정하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확산금지조약(NPT) 등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런 국제 조약을 생략하고 핵잠수함을 건조하는 건 불가능하다. 조약을 따져보면 이유가 보인다. 세계적으로 핵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5개국과 인도 뿐이다. 앞선 5개국은 NPT에서 핵무기 보유가 허용된 국가다. 인도는 NPT 미가입국이다. NPT 가입국은 무기와 관련된 핵을 보유할 수 없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일부에선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핵잠수함에서 사용하는 저농축우라늄(우라늄 235 동위원소가 20퍼센트 미만)을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낸 원유철 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군사적 목적으로는 (핵) 사용이 불가능하지만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방지하는 차원이고 우라늄 농축의 20% 이하는 잠수함을 움직이는 발전용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과 협상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은 "어떠한 군사적 목적도 포함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군사적 목적' 문구 해석을 놓고 양국이 상당 기간 갈등할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핵잠수함은 핵무기가 아니고 핵연료로 추진하는 잠수함일 뿐"이란 논리가 미국이나 국제사회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란 얘기다.

#안정적인 핵연료 확보가 관건

가장 큰 난관은 연료 조달 문제다. 핵잠수함을 건조했다고 하더라도 연료가 조달되지 않으면 고철에 불과하다. 핵잠수함용 핵연료는 원전에서 쓰는 것과 다르다. 원전용 핵연료는 우라늄 235 동위원소가 5% 포함된, 다시 말해 5% 농축된 우라늄을 연료를 쓴다. 핵잠수함용 원전에는 이보다 농축도가 높은 원료를 사용한다. 농축도가 높을수록 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운용하는 핵잠수함은 20% 정도로 농축된 핵연료를 사용하고 미국과 소련은 90% 이상 농축된 우라늄을 쓴다. 90% 이상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면 30년 이상 잠수함 기동이 가능하지만 농축도가 떨어지면 3~4년에 한 번씩 연료를 교체해야 한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우라늄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이 핵잠수함용 핵연료를 조달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20% 수준으로 농축된 핵연료를 수입하거나 자체적으로 농축하는 거다.

우선 핵연료 수입부터 살펴보자. 한국이 우라늄을 수입하는 주요 국가는 캐나다와 호주다. 캐나다 등 우라늄 주요 수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핵공급국그룹(NSGㆍNuclear Suppliers Group)으로 묶여 있어 군사목적의 핵물질을 판매할 수 없다. NSG에서도 강대국 파워가 작동하고 있어 한국에 핵잠수함 핵연료를 공급하지 않을 수 있다. 일례로 NPT 미가입국인 인도는 안정적인 우라늄 공급을 위해 NSG에 가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중국이 이를 반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체적으로 우라늄을 농축해 사용하는 방법이 남는다. 우라늄 농축을 위해선 IAEA에 사전 신고를 해야하고 관련 시설에 대한 사찰도 수용해야 한다. IAEA 가입국은 원전 및 사용후핵연료저장조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녹화 내용을 정기적으로 IAEA에 넘겨야 한다. 한국은 올해 5월부터 국내 경수로에 대한 '무통보 사찰'을 도입했고 이에 따라 IAEA 감시카메라도 제거했다. 무통보 사찰은 사전 통보 없이 실시하는 사찰을 말하는데 감시카메라 제거를 조건으로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IAEA는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라도 원자력 관련 시설을 사찰할 수 있다.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이런 상황까지도 펼쳐질 수 있다. 어느날 갑자기 사전 통보 없이 IAEA 직원이 한국을 찾아온다.

"핵잠수함 핵연료 전용에 대해 점검해야 합니다. 지금 잠수함이 어디에 있나요?"(IAEA 직원)
"글쎄 그걸 말씀드리긴 곤란합니다."(해군)

핵연료 사찰을 거부하는 건 IAEA 규정 위반이다. 그렇다고 사찰을 받아들여 핵잠수함의 위치가 노출된다면 '은밀성'이 깨지게 된다. IAEA 통보 없이 우라늄을 농축하면 큰 후폭풍을 불러 올 수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소는 2000년 레이저 농축법을 통해 농축 우라늄 0.2g을 만들었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당시 평균 농축도는 10%였다. 2004년 한국의 뒤늦은 보고를 받은 IAEA는 수 차례 한국을 방문해 사찰을 진행했고 관련 자료를 모두 압수했다. 일본 정부가 가장 크게 반발했다. 손톱보다 작은 1g도 채 되지 않는 우라늄을 농축했다 세계적으로 망신살이 뻗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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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TV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23일 함경남도 신포 동북방 동해에서 실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현장을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국방부는 북한의 SLBM 발사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조선중앙TV 캡쳐]

#일본은 원자력선 건조해 핵잠수함 기술 확보

핵잠수함 건조 기술 확보는 영영 불가능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이웃 일본은 핵잠수함 건조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우회로를 택했다. 일본은 원자력선 무츠(MUTSU)를 1992년 건조해 실험했다. 이 배에 장착된 소형 원자로는 IAEA 감시하에 투명하게 가동됐다. 당시 일본 정부는 "원자력의 해양이용방안 연구를 위한 실험 목적"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소형 원자로 기술 확보를 위한 작업이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일본은 무츠에서 얻은 기술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유사시 핵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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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원자로가 장착된 일본의 원자력선 무츠(MUTSU)의 모습.

'한국이 핵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국방부 관료의 입을 통해 2004년 이미 나왔다. 당시 한 신문사가 국방부가 핵잠수함 건조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하자 원장환 국방부 획득정책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해군의 독자적인 핵추진 잠수함 개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전 승인을 받지 않고는 현실적으로 추진이 불가능한 계획이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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