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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이번엔 차가운 스파이…김지운·송강호 “우린 느낌으로 통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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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2016) 일제강점기 일본 밀정과 의열단원의 추격을 그린 스파이물. 촬영현장의 김지운 감독(왼쪽)과 송강호.

충무로의 알아주는 ‘스타일리스트’ 김지운(52) 감독과 국민 배우 송강호(49)가 영화 ‘밀정’(9월 7일 개봉)에서 다시 만났다. 벌써 네 번째다. 괴짜 가족의 시체 처리 소동을 그린 ‘조용한 가족’(1998), 소심한 회사원이 레슬링 복면을 쓰고 복수에 나서는 ‘반칙왕’(2000), 1930년대 만주를 배경 삼은 한국형 서부극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2008, 이하 ‘놈놈놈’)에서 송강호는 김 감독이 내세우는 최고의 ‘무기’였다. 간담 서늘한 긴장감 혹은 진한 비애와, 천연덕스러운 웃음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김 감독 영화 특유의 아이러니한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조용한 가족, 반칙왕, 놈놈놈 이어
치밀한 심리전 다룬 영화로 뭉쳐
김 감독 “밀정역 맡을 최적의 배우”
송 “김 감독, 매번 다른 개성 뽑아내”

1920년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 ‘밀정’에서 송강호는 일본 경찰의 밀정(密偵)인 조선인 이정출 역을 맡았다. 이정출은 의열단의 김우진(공유 분)에게 접근하고 의열단은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올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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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가족(1998) 산장을 하는 괴짜 가족의 시체 처리 소동을 그린 코미디.

26일 만난 김 감독은 “‘놈놈놈’이나 ‘암살’(2015, 최동훈 감독)이 일제 강점기의 갈등을 액션 활극으로 풀어낸 것과 달리 ‘밀정’은 그 시대의 암울한 공기 아래 분열할 수밖에 없는 개인, 그 모순을 스파이영화 특유의 치밀한 심리전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배우들이 촬영하는 내내 누가 상대편의 밀정이고 누가 내 편인지 끊임없이 살피는 기분으로 연기하길 원했다. 그만큼 작은 눈짓 하나하나의 섬세한 연기가 중요했다.” 김 감독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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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왕(2000) 소심한 직장인이 레슬링 복면을 쓰고 변신하는 코미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긴장감을 빚어내는 건 역시 송강호의 몫이다. ‘밀정’의 송강호는, ‘놈놈놈’의 정신 사나운 열차털이범 윤태구와는 전혀 다르게 끝까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이정출의 심리를 절제된 연기로 표현한다. 결말에 다다를수록 ‘과연 이정출은 일본 경찰과 의열단 중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하는 스릴이 폭탄의 심지처럼 타들어 간다. 송강호 특유의 해학적인 코미디 연기를 한층 덜어낸 채, 정밀한 균형 감각으로 극의 치밀한 분위기를 꽉 떠받친다. 김 감독은 송강호를 “한국에서 이정출 역을 소화할 수 있는 연기의 스펙트럼을 지닌 몇 안 되는 배우”라 말했다.

송강호는 이정출을 “시대가 빚어낸 인물”이라고 정의했다. “이 영화의 매력은 독립군 대 일본, 선과 악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그 시대가 낳은 다양한 가치관과 혼란을 들여다보는 데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김 감독과의 작업을 “대화를 통해 풀어가기보다 ‘느낌’을 주고받으며 서로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예술이라는 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다.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 3이 될 수도 있는 게 예술 아닌가. 그걸 직접 보여주는 게 예술이다.” 송강호의 말이다. 그에게 김 감독의 영화는 “매번 다른 장르, 캐릭터, 개성을 뽐낼 수 있는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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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2008) 1930년대 만주 벌판을 배경으로 한 한국형 서부극.

김 감독 스스로는 자신의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아이러니’를 꼽았다. “내가 세상에 대해 느끼는 가장 큰 궁금증이 바로 아이러니다. ‘밀정’의 이정출의 입장이 바로 그렇다. 일본 경찰의 밀정으로 김우진에게 접근했지만 계획은 틀어지고, 어느 편에 서야할지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그러나 극중 이정출이 후반까지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는 점을 두고, 이숙명 영화 칼럼니스트는 “관객이 혼란을 느낄 것 같다. 이정출이 결말에서 극적인 행동을 취하기까지 너무 먼 길을 돌아오는 것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김 감독의 여덟 번째 장편인 ‘밀정’은 8월 31일 열리는 제7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진출했다. ‘밀정’은 할리우드 직배사인 워너브러더스가 처음으로 제작과 배급에 나선 한국영화로, 김정호(차승원 분)의 삶을 그린 ‘고산자, 대동여지도’(9월 7일 개봉, 강우석 감독)와 추석 극장가에 맞붙는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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