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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올여름 폭염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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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기세등등하던 폭염도 서늘한 바람에 한풀 꺾였다. 하지만 올여름 폭염이 남기고 간 상처는 깊고 컸다. 지구온난화 추세를 감안하면 이 같은 상황은 앞으로도 반복되고 더욱 심해질 것이다. 지난 폭염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대비 수준을 다잡아야 하는 이유다.

지난 폭염은 최악이었다. 8월 1~25일 서울의 평균 기온은 29.6도로 1907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8월 기온으로는 가장 높았다. 평년보다 3.6도나 높았다. 남해안 바닷물 온도는 예년보다 5도나 높다. 기후 전문가들은 온실가스 배출 추세가 현재대로 유지된다면 21세기 말 한반도 기온이 현재보다 5.3도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온에 가뭄까지 겹치면서 사람도, 생태계도 큰 타격을 받았다. 우선 한국에만 자생하는 구상나무가 생선 가시처럼 말라 죽는 광경은 충격적이다. 해발 1200m 이상의 지리산·한라산 고지대에 사는 상록침엽수지만 이상고온과 가뭄 때문에 집단 고사해 멸종으로 치닫고 있다. 산업적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은 국토의 47%에서 사과 재배가 가능하지만 2050년에는 재배 가능 지역이 13%, 2090년엔 1%로 줄어든다.

올여름 전국 온열질환 사망자 수는 17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남해안에서는 15년 만에 콜레라가 발생했다. 도심에서는 말벌이, 농경지에선 미국선녀벌레 같은 해충이, 상수원에서는 녹조가 기승을 부렸다. 올해와 같은 극심한 폭염이 일상화되면 2060년까지 전국 7대 도시에서 온열질환으로 인한 조기 사망자(누적)가 최대 22만 명에 이를 것이란 충격적인 연구 결과도 나왔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려면 우선 기상예보부터 정확성을 제고해야 한다. 감염병·온열질환에 대한 건강감시망을 구축하고, 취약계층 보호 방안도 다듬어야 한다. 새로운 병원체와 외래종 유입에 대비해 육상·해상생태계 모니터링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올여름에 경험한 것처럼 기후변화는 이미 우리 공동체를 뿌리부터 뒤흔들기 시작했다.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도 군사·외교 못지않은 기후 안보 차원의 범정부적 대응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