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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관심사는 역시 사람이로구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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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호 16면

척 클로스의 ‘라일 Lyle’(1999), 캔버스에 유채, 259.2×213.7×7.8 cm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의 ‘중국풍(Chinoise)’(1914), 석회석, 154.9×51.4×43.2 cm

얼굴은 20세기 초 헤어스타일의 서구 여성, 물결처럼 흐르는 옷자락과 손 동작과 연화대좌는 옛 동양 불상. 지난달 이 기이하면서도 우아한 석회암 조각 ‘중국풍(Chinoise)’을 뉴욕 맨해튼 남서부에 재개관한 휘트니 미국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에서 봤을 때, 당장 작가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놀랍게도 작가는 이 미술관의 설립자인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1875~1942)였고 이 조각은 그녀의 자소상(자화상의 조각 버전)이었다.


거트루드는 당대 미국 최고 갑부였던 밴더빌트 집안에서 태어나 역시 부유한 가문인 휘트니 집안의 남성과 결혼했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사교계 여왕보다 조각가였다. 당시 보수적이었던 미국 사회에서 그녀는 부친과 남편이 눈살을 찌푸리는데도 불구하고 조각 작업을 계속했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점과 ‘금수저’라는 점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느끼곤 했다. 그녀는 못 다 이룬 꿈을 다른 여성 작가들을 비롯한 미술가들을 후원하고 작품을 수집하는 것으로 풀어나갔고, 그것이 지금 2만2000여 점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휘트니 미술관의 바탕이 됐다. 그런 거트루드 휘트니가 자기 자신을 불상으로 표현한 것은 당대 상류층에서 유행하던 얄팍한 오리엔탈리즘과 쇼맨십이었을까 아니면 초월의 경지에 이르고 싶었던 예술가로서 못다한 꿈의 표현이었을까.


볼수록 호기심이 일으키는 그녀의 조각은 지금 휘트니 미술관에서 내년 2월 12일까지 계속되는 대규모 전시 ‘인간적 관심사: 휘트니 컬렉션의 초상 작품 전(Human Interest: Portraits from the Whitney’s Collection)’에서 볼 수 있다. 이 전시는 제목 그대로 인간에게 가장 친숙하면서도 예술가의 시선과 손길에 따라 생소하고 신비롭기까지 한, 그래서 오만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인간의 얼굴과 몸에 관한 것이다.

잭 피어슨의 ‘자화상 #4’(2003), 잉크젯 프린트, 109.1×136.5 cm

미술관의 방대한 소장품 중 주제와 관련된 200여 점이 나왔다. 에드워드 호퍼, 조지아 오키프, 앤디 워홀, 빌렘 데 쿠닝, 신디 셔먼, 척 클로스 등 스타 작가들의 유명 작품들이 낯선 작품들과 섞여 다양한 소제목 하에 전시되고 있었다. 소제목 섹션이 6층과 7층에 걸쳐 11개나 될 수 있는 데에는 지난해 4월에 문을 연 휘트니의 새 미술관 건물이 예전 공간보다 두 배가 넓은 (2만500㎡) 덕도 있을 것이다. ‘스타에 홀리다’ ‘벌거벗은 몸’ ‘남들 시선을 의식하는 초상’ ‘금간 거울’ 등 이름부터 흥미롭다.


전시를 기획한 스콧 로스코프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컬렉션에는 수천점의 넘는 인물화가 있는데, 미술관이 설립되던 시기(1931년)부터 지금까지의 시대를 아우른다. 전시를 기획하며 가장 어렵고도 흥분된 부분은 이들 작품을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창의적인 틀에서 제시하고, 작가들이 미술의 가장 오래된 장르 중 하나인 초상화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재정의해왔는가를 제대로 보여줄 것인지였다.”

에드워드 호퍼의 ‘햇빛 속의 여인’(1961), 리넨에 유채, 101.9×152.9 cm

앨리스 닐의 ‘앤디 워홀’(1970), 리넨에 유채와 아크릴릭, 152.4×101.6 cm

‘사람 없는 초상화’ 섹션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

조지 벨로우스의 ‘뎀시와 피르포’(1924). 캔버스에 유채, 129.9×160.7 cm

로잘린 드렉슬러의 ‘죽음에 쫓기는 마릴린’(1963), 캔버스에 아크릴릭과 종이 콜라주, 126.7×101.6 cm

미국 유명인들의 또다른 모습들 거트루드 휘트니의 작품이 있는 ‘스타에 홀리다’ 섹션에는 조지 벨로우스의 다이나믹한 복싱 경기 그림도 걸려 있다. 1920년대 복싱 선수들은 유명 스타였고 그 중에서도 최고는 헤비급 선수 잭 뎀시였다. 이 그림은 바로 뎀시의 경기를 묘사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최종 승자가 뎀시였는데도 그림은 상대 선수가 그를 녹다운시키는 장면을 포착했다는 것이다. 왜일까.


또 다른 섹션 ‘유명세의 대가’는 이런 스타덤의 어두운 면을 포착하는 섹션이다. 휘트니의 새 소장작품인 로잘린 드렉슬러의 ‘죽음에 쫓기는 마릴린’은 파파라치를 피해 보디가드와 함께 바삐 가는 여배우 마릴린 먼로의 사진을 보고 불길한 회화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먼로를 죽인 것은 그녀 자신일까, 아니면 그녀를 좇는 수많은 눈들이었을까.


섹션의 또 다른 작품인 앤디 워홀의 ‘아홉 재키’에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사진 이미지가-심지어 남편 장례식에서의 어두운 얼굴조차-수없이 인쇄되어 대중문화 아이콘 이미지로 소비되는 자본주의 매스미디어 시대의 세태가 담겨 있다. 그러한 워홀의 허심탄회한 모습은 ‘벌거벗은 몸’에서 앨리스 닐이 그린 그의 초상으로 나타난다. 언제나 은회색 가발과 선글라스 등으로 무장하고 “벌거벗는 건 내 존재에 대한 위협”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기 몸을 드러내기를 꺼렸던 워홀이 그녀의 화폭에서는 68년 총격 사건 후 늘 둘러야 했던 코르셋과 복부의 수술자국을 숨김없이 드러낸 채 눈을 감고 있다. 이 섹션에는 이렇게 그 벌거벗음으로 오히려 영적인 작품들과 육체의 감각 및 에로티시즘이 극치를 이루는 작품들이 공존한다.


가장 독특한 섹션은 ‘사람 없는 초상화’다. 여기에는 조지아 오키프의 동물 두개골 그림을 비롯해 화가 자신이 나오지 않지만 그의 자의식이 강하게 스며 있거나 분신으로서의 느낌이 강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에 반해 로버트 프랭크, 다이안 아버스 등 유명 사진가들의 거리 인물 사진이 등장하는 ‘길거리의 삶’이나 에드워드 호퍼의 유명한 자화상이 걸린 ‘예술가의 초상’ 섹션 등은 그 큐레이팅이 고전적인 편이다. 그런데 호퍼의 자화상이 걸린 전시장 문 밖으로 외벽에 그의 ‘햇빛 속의 여자’가 걸려 있는 것은 좀 독특하다. 나이 든 여인이 나체로 담배를 들고 오후의 한 뼘 햇빛 안에 홀로 서 있는 이 그림은 그의 아내를 모델로 한 것으로, 그 헤아릴 수 없는 깊이의 고독한 정서로 유명하다. 호퍼의 자화상과 이렇게 분리되어 있으니 더욱 쓸쓸한 느낌이다.

휘트니 미술관 6층 테라스에 설치된 폴 맥카시의 ‘화이트 스노우(스노우 화이트 즉 백설공주의 도치) #3’(2012), 브론즈, 252.7×198.8×186.7 cm

테라스로 나가면 맨해튼 자체가 전시장 전시장 외벽에까지 걸쳐 있는 전시는 널찍한 각 층의 야외 테라스로 이어진다. 7층 테라스에서는 데 쿠닝의 녹아내리는 인체 조각 ‘클램디거’ 너머로 미술관 서쪽에 시원스럽게 펼쳐진 허드슨 강을 바라볼 수 있다. 6층 테라스에서 폴 맥카시의 동심파괴적 검은 ‘백설공주’ 조각 너머 미술관 남쪽으로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와 그리니치 빌리지의 오래된 건물들이 만드는 독특한 풍경을 볼 수도 있다. 미술관 동쪽으로는 고가 철도를 개조한 공중 공원으로서 뉴욕의 새 명물인 ‘하이 라인(High Line)’의 시작점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미트패킹 디스트릭트는 20세기 초까지 도살장과 육류 가공 공장이 가득했고, 20세기 중후반에는 극도로 쇠락해 마약과 매춘이 성행했다. 그랬던 이곳이 몇 년 사이에 핫한 문화예술 지역이자 ‘뭘 좀 아는 여행자들’이라면 꼭 가야 할 코스로 떠올랐다. 90년대 말부터 지역의 역사를 보존하면서 재개발하는 일련의 사업으로, 낡은 공장이 맛집과 가게로 가득한 ‘첼시 마켓(Chelsea Market)’으로 바뀌고, 흉물스러운 고가 철도가 수풀 우거진 공중 공원 하이 라인으로 바뀌면서였다.


맨해튼 동북부 미술관 밀집 지역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문을 연 휘트니 미술관은 이 추세에 방점을 찍었다. 이제 수많은 뉴요커와 외부 관광객들은 아침 일찍 첼시 마켓으로 와서 유명한 빵이나 수프로 배를 채우고 하이 라인을 천천히 산책해 휘트니 미술관으로 오곤 하는 것이 하나의 코스가 됐다(물론 반대로 가도 좋다).


이렇게 주변과 유연하게 연결된 때문인지 휘트니에는 MoMA 같은 다른 뉴욕의 대표 미술관들과 달리 그림을 천천히 감상하는 지역 주민이 관광객보다 더 많아 보였다. 소장품으로 참신한 시선의 기획전을 만드는 것과 지역과 밀착하는 것, 이것은 우리나라 미술관들도 이미 노력하고 있는 것이지만 더욱 참고할 만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뉴욕?사진 글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사진 휘트니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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