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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뉘파이 결승전, 중국 10억명이 지켜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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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장하다, 뉘파이(女排)정신!”

32년 만의 금메달에 시청률 70%
예선 턱걸이 뒤 대반전 드라마
인민일보도 1·5면에 게재 이례적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22일자 1면에 큼지막하게 지면을 할애해 게재한 기사의 제목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중국 여자 배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딴 데 대한 감격과 흥분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제목이다. ‘뉘파이’란 여자 배구의 중국어 약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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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랑핑 감독이 국가대표로 세계배구선수권대회 우승했을 당시 인민일보의 축하 지면. “여자배구를 본받아 중화진흥을 이루자”는 문구가 새겨졌다.

중국 대륙 전체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중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모두 26개의 금메달을 땄지만 나머지 25개의 금메달은 뉘파이의 금메달에 흥분과 감격을 보태주기 위한 전주곡에 지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별 예선 리그는 2승 3패로 턱걸이로 통과했으나 8강전 이후 무적함대로 변신해 금메달을 따는 드라마를 연출해 중국인들을 전율시켰다.

21일의 결승전 시청률은 무려 70%에 이르렀다. 채널이 워낙 많아 시청률 2%만 나와도 ‘대박’ 소리를 듣는 중국에선 경이적인 기록이다. 13억 인구를 감안하면 “10억에 가까운 중국 관중이 지켜봤다”는 인민일보 표현이 틀린 게 아니다. 인민일보는 1면뿐 아니라 5면에 시평과 기고문을 싣고 연재를 시작했다. 근엄한 공산당 기관지가 체육면 2개면을 통으로 쓴 것까지 합쳐 온통 뉘파이 찬양으로 도배됐다.

이는 32년 전의 데자뷔다. ‘죽의 장막’ 속에 은거해 있다가 1970년대에 국제무대에 복귀한 중국은 84년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 때 ‘중화인민공화국’이란 국호를 처음 내걸고 출전했다. 그 때 단체종목 첫 금메달을 안겨준 여자 배구에 중국은 열광했다. 베이징대 학생 4000여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폭죽을 터뜨렸다. 당시 우승 주역은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랑핑(郞平)이었다. 바로 리우 올림픽에서 32년만에 다시 금메달을 안긴 중국 대표팀 감독이다. 현역시절 스파이크가 하도 강해 ‘쇠망치(鐵?頭)’로 불렸던 랑핑의 별명은 이제 ‘여신(女神)’으로 바뀌었다.

중국인들은 32년만의 금메달 탈환에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한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중국의 힘과 저력, 불굴의 의지를 세계에 과시한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집약한 용어가 바로 ‘뉘파이 정신’이다.

이 말이 처음 쓰인 건 LA올림픽보다 3년 앞선 81년 11월 18일자 인민일보 1면에서다. 당시 중국 여자팀은 일본에서 열린 세계 배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중국은 난리가 났다. 인민일보의 1면엔 선수단 전원의 사진이 실리고 ‘뉘파이를 배워 중화 진흥을 이루자(學習女排 振興中華)’란 제목의 논설이 실렸다.

그 다음날엔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의 부인 덩잉차오(鄧潁超)가 나서 뉘파이 정신을 설파했다. 개혁개방 직후 중국이 세계를 따라잡기 위해 분투하던 시절, 하지만 아직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국인에게 외부 세계와의 격차는 까마득해 보이던 시절, ‘중국은 능히 해 낼 수 있다’는 자심감을 뉘파이가 안겨 준 것이다. 이 때의 우승 주역도 랑핑이었다.

이로부터 30여년이 흘렀다. 그 사이 중국 여자 배구는 추락을 경험했으나 랑핑이 지휘봉을 잡고 다시 일어섰다. 그 때나 지금이나 중국인은 열광하고 있다. 과거의 ‘뉘파이 정신’이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면, 세계 2위의 강대국으로 올라선 지금은 자신감과 함께 ‘드디어 해냈다’는 성취감이 보태어졌다는 게 차이점이다. 인민일보 지면엔 ‘뉘파이 정신을 배우자’는 구호가 다시 등장했다. 35년 전에 등장한 구호인 중화 진흥이 이젠 중국 굴기(?起)의 완성을 뜻하는 ‘중국몽(中國夢)’으로 바뀌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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