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스포츠에서만큼은 일본이 두렵지 않다고 생각한 게. 따져보니 종합 순위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선 건 2004년 아테네 올림픽부터였다. 그런데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 다시 뒤집혔다. 21일 현재 금메달 수에서 일본(12개)이 우리(9개)를 앞섰다. 전체 메달 수는 일본이 41개로 우리(21개)의 배에 이른다. 더 놀라운 것은 일본은 남자 400m 계주에서 미국을 누르고 은메달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카누·테니스·싱크로 등 다양한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점이다.
엔화값 오르고 성장률 주춤했지만
실업률 줄고 조선·철강 다시 활기
1인당 GDP도 수년째 꾸준히 상승
과감한 시도 없는 한국경제와 달라
언제부터였을까. 경제에서도 일본하고도 한 번 겨뤄볼 만하다고 생각한 게. 아마도 삼성전자가 넘사벽으로 여겼던 일본 소니를 매출 등에서 앞서기 시작하면서 많은 한국인이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우리의 착각일 뿐이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4조4000억 달러로 한국(1조3000억 달러)의 3.3배다. 소니를 이겼다고? 도요타·도레이·신일철주금 등 한국 기업이 넘어야 할 산은 소니 말고도 많다. 시마노·화낙·히로세전기 등 부품·소재·설비 업종으로 눈을 돌리면 세계 넘버 원 기업이 수두룩한 게 일본이다. 다양한 종목에서 성적을 내는 일본의 스포츠와 유사하다.
아베노믹스가 실패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한 번 따져보자. 무지막지한 돈 풀기(양적완화) 덕분에 달러당 125엔까지 하락했던 엔화 가치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소식 하나에 4년 전으로 돌아갔다. 최근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늦춰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엔화 가치는 달러당 90엔대로 급등하기도 했다. 엔화 가치가 오르면서 수출기업의 채산성은 나빠지고, 성장률도 주춤하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약속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 2% 달성도 요원하다. 여기저기서 “아베노믹스는 실패했다”고 수군대는 이유다. 이대로라면 잃어버린 20년으로 병원 신세를 졌던 일본 경제는 다시 응급실행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상반되는 뉴스도 많다. 고령화에 따른 노동인구의 감소가 영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일본의 6월 실업률은 3.1%로 1995년 이후 21년 만에 최저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국내 대졸 취업자들에게 일본 취업이 대안으로 떠오를 정도다. 오랜 구조조정으로 체력을 보완한 조선·철강·화학 등 전통의 제조업들은 다시 뛰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저조하긴 하지만 여타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그리 나쁜 수준도 아니다. 1인당 GDP도 완만하지만 수년째 꾸준히 상승세다.
그런데도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는 또 밀어붙일 요량이다. 이달 초 28조 엔짜리 경기 부양책을 발표한 데 이어 다음달엔 일본은행이 또다시 양적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런 부양책의 목표는 디플레이션 극복, 경제성장률 회복이다. 나아가 중국과의 경쟁에서 더 밀려서는 곤란하다는 조바심도 아베노믹스의 배경 중 하나로 풀이된다.
일본은 2010년 GDP 2위 자리를 중국에 내줬다. 1988년 세계 2위에 오른 지 22년 만이다. 게다가 중국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경제가 썩 나쁘지 않은데도 엄청난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경기부양에 나서고, 중앙은행이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는 이유다. 경제지표 몇 개를 들이대며 아베노믹스가 실패했다며 고소해할 상황이 아니란 얘기다. 삼성재팬 사장을 역임한 정준명 김앤장 고문은 “지금 상황에서 성패를 단언하긴 힘들지라도 타성에 젖어 있던 일본 경제에 아베노믹스가 활력을 불어 넣은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활력을 잃은 건 한국 경제다. 아베노믹스처럼 과감한 시도는커녕 뭔가 바꿔보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산업 구조조정도 조선·해운에서 변죽만 울리더니 더 이상 진전이 없다. 산업의 판을 바꿔보자는 구조개혁은 어림도 없다.
중국은 자신들이 세계 2위 경제대국에 오르게 된 데엔 한국의 역할이 컸노라며 고마워해야 한다. ‘한국처럼 조그만 나라도 하는데 우리가 못할 게 뭐 있냐’ 식으로 자극이 됐을 게 틀림없다. 우리가 ‘일본도 하는데 우리가 못할 게 뭐 있냐’며 이를 악물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일본은 여전히 강하다. 한 번 더 이 악물고 우리도 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자.
김준현 산업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