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효과 낮은 정부 프로그램 틈새 메워” “취업률 못 높이고 他지자체와 불평등”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93호 3 면

청년수당 지급으로 정부와 갈등을 빚는 서울시가 대형 현수막을 서울도서관 외벽에 내걸었다. 최정동 기자

대학 졸업생인 임모(26)씨는 정부의 청년취업성공 패키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자신에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교육과정이 대부분 미용이나 제빵기술, 단순 자격증 취득을 위한 것들이었다. 아니면 사물인터넷(IoT)이나 빅데이터 같은 최신 기술을 단기간 가르쳐주는 과정이었다. 상담관은 임모씨의 학력·전공에는 맞는 게 없다며 2단계 교육·훈련과정을 건너뛰어도 된다고 했다. 3단계 청년취업인턴제 자리도 처음 들어보는 중소기업의 경리직, 기술직이 대부분이었다. 임씨는 자비를 들여 사설 취업 컨설팅을 받아야 하는지를 고민 중이다.


김모(25)씨는 영어 전문 번역가를 희망한다. 매달 TEPS 시험을 보고, 매주 2회 원서를 강독하는 스터디를 운영한다. 고급영어를 구사하기 위해 뉴욕타임스를 구독해 매일 두 편의 사설을 필사한다. 또 교육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번역 수업에 등록해 첨삭지도를 받고 있다. 정기적으로 시험 응시료, 스터디 운영비, 신문 구독비, 문화센터 수강비가 들어가는 셈이다. 그런데 정부에서 운영하는 청년 고용 프로그램엔 통·번역 관련 직업훈련 과정은 없었다. 일부 관광통역 자격증 학원만 등록돼 있다. 김씨는 취업 준비 비용을 아르바이트로 감당하고 있다. 그러던 중 서울시 청년수당 모집을 보고 신청하게 됐다. 일단 자율적으로 취업 설계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이하 청년수당)을 둘러싼 논쟁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서울시 청년수당 사업은 서울에 1년 이상 거주한 만 19~29세 청년에게 매달 50만원을 최대 6개월 지원하는 것이다. 서울시가 현금 지원을 밀어붙이자 고용노동부는 지난 12일 취업성공패키지 참가자에게 면접·구직활동 비용으로 3개월간 월 20만원씩 최대 60만원을 지원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취업성공패키지는 정부의 대표적인 청년고용 정책이다. 2009년부터 실행된 청년취업패키지 참여자 수는 당시 9000여 명에서 지난해 29만4000여 명을 기록했다. 이는 6년 만에 32.4배 늘어난 수치다. 예산 규모도 약 32.5배 증가했다. 그러나 실효성은 낮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서울 지역 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 취업률은 63.6%지만 6개월 이상 고용유지 비율은 27.2%에 불과하다. 월평균 150만원 이상 비중도 24.4%에 불과했다. 정부 프로그램을 이수한 청년 4명 중 3명이 저임금을 받고 다시 실직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국회예산정책처는 성과가 떨어지는 고용부 사업의 예산을 감액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의 교육훈련 내용도 취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양모(24)씨는 자신에게 알맞은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찾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상담관은 웹디자인을 권유했지만 취업과 연계성이 높지 않아 보여 고민”이라며 “사비를 들여 공인 영어 성적이나 높이는 게 낫겠다는 후회가 든다”고 털어놨다.


전효관 서울시 혁신기획관은 “취업성공패키지는 정보기술(IT) 교육과 같은 매우 제한적인 과정만을 직업훈련의 범위로 삼고 있다”며 “정부가 신산업으로 강조하는 창조산업이나 문화산업 같은 수요에 부흥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연구원이 지난 5월 발표한 연구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 청년들이 요구하는 취업 지원은 ▶자격증 취득을 위한 등록비 지원(44%) ▶자격증 취득, 어학 능력 향상 지원(23%) ▶취업 준비 스터디 준비 운영 지원(6.5%) 순이었다. 취업준비생들은 공인 외국어 성적, 자격증 취득을 원하고 있지만 정부 프로그램은 극히 일부 자격증 취득 교육에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변정현 한국고용정보원 책임연구원은 “기존 정부의 청년고용 정책은 너무 복잡하고 세부적인 프로그램이 빡빡하게 짜여 있어 진입장벽이 높고, 홍보가 덜 된 것이 실패 요인”이라고 말했다.


반면 서울시 청년수당이 실제 취업에 도움이 안 된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취업률과 연계되지 않고 현금을 어디에 쓰는지 점검할 방법이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앞서 19~24세 청년들에게 최대 연 100만원을 조건 없이 지원하는 성남시는 지원자 소득도, 취업 계획도 확인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재정여건이 좋은 서울시·성남시의 청년수당 지급이 열악한 지자체 출신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만 키운다는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 백경훈 ‘청년이여는미래’ 대표는 “궁극적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게 답인데 현금을 준다고 취업률을 견인할지는 모르겠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유창수 새누리당 청년최고위원은 “청년수당 사업비 90억원 중 10억원을 민간에 위탁해 운영비로 사용한다는데 이 사단법인은 대권을 위한 박 시장의 사조직”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 청년수당 문제는 이제 국회와 법원으로 건너가 여야와 정부·서울시의 정쟁으로 비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작 수요자인 청년들의 의사는 묻혀 버리고 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청년수당은 최초 실업자인 청년층에 실업부조를 줘 보자는 것”이라며 “취업 준비를 위한 광범위한 사회활동도 지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취업성공패키지의 틈을 일부 메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정철근 기자, 이우연 인턴기자jcom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