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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힘들게 하는 ‘꼰대 시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93호 29면

외국계 소비재회사에 근무하는 30대 후반의 중간 관리자인 필자는 2년 경력의 초보 워킹맘이다. 20대에 결혼했지만 결혼 7년 차가 돼서야 첫 아이를 낳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본격적인 전쟁은 ‘워킹맘’ 입문부터다.


우리 세대는 ‘워킹맘 1세대’다. 어머니 세대에서도 일하는 엄마가 드물게 있긴 했지만 그 시절에는 고스란히 엄마와 아내로서의 몫을 다 하면서 육아까지 하는 세대였다. 고등교육이 보편화되면서 남녀평등의 가치관을 주입받고 자란 내 또래 30대의 워킹맘이야말로 실질적인 ‘워킹맘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성장기 때부터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여자라고 못 할 것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하지만 워킹맘이 되는 순간 현실이 달라진다. 최근에는 직장에서 똑 부러지게 일하는 중견급으로 성장하여 조직의 중간관리자가 되는 데에는 오히려 빠릿하고 융통성 있는 여자가 유리한 경우도 많지만, 아직까지는 몇몇 외국계 기업이나 파격적인 복지를 제공하는 일부 기업이 아니면 대부분 임신과 출산의 벽을 넘기 어렵다. 승진, 신규사업 발굴 및 해외 파견 등의 기회를 놓치는 것은 단지 출산으로 인한 공백 때문만이 아니다. 누군가 완벽하게 양육을 대신해주고 있지 않는 한, 일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시간과 자원을 업무에 모두 투자할 수 없는 탓에 대부분 기회는 미혼인 여자 동기 또는 남자 동기에게로 간다. 아마 많은 조직에서 중간관리자 팀장급에 워킹맘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이 양육에 있어 가족의 서포트를 받을 수 없는 ‘육아 독립군 워킹맘’의 경우 베이비 시터나 기관 등의 아웃소싱 양육체제를 마련하더라도 이는 완벽하지 않다. 어린이집은 오전 9시가 넘어서 문을 열고, 오후 4~5시쯤엔 아이를 데리러 가야하는데 보통의 직장은 9 TO 6(오전 9시~오후 6시)시스템이어서 워킹맘들이 소화할 수 있는 스케줄이 아니다. 특히 여름과 겨울 1주일씩의 방학은 가족과 같은 도우미의 도움이 없이는 도저히 메울 방법이 없다. 대개의 경우 ‘경단녀(경력단절여성)’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다. 아이는 오후 1시면 귀가하는데 현재의 제도로는 완벽하게 워킹맘이 아이를 키우고 일하는데 독립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극히 제한적이다.


앞으로 약 5년 후면 우리나라도 인구절벽의 재앙이 시작된다고 한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세부 사정을 따져보면 워킹맘의 현재 상황이 낳은 결과가 한 몫을 하는건 틀림없다. 취업·결혼·출산이라는 세 가지 관문을 어렵게 통과했더라도 아이를 기르는 양육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둘째, 셋째의 출산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여기에다 서울과 대도시의 물가가 맞벌이를 해야 겨우 밥 먹고 사는 수준이 된 것도 출산을 주저하게 하는 원인이다. 고등교육을 받고 자란 여성 인력을 이렇게 비자발적으로 일터에서 떠나게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도 이런 중요성을 인지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전에 경험하지 못 했던 ‘워킹맘 1세대’를 위한 정책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 딱히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도 없고 이웃 일본이나 중국은 같은 동양권이지만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실질적인 참고가 되기 어렵다.


사실 제도보다 더 풀기 어려운 근본적 문제는 사회적 인식이다. 아직도 조직에서는 출산휴가 가는 여성 직원들을 고깝게 보는 ‘꼰대’ 시선이 남아있다. 또 출산이나 육아휴직으로 인한 공백으로 업무가 다른 직원에게 전가되는 것을 큰 부담으로 여긴다. 꽤 진보적이라고 불리는 조직에서조차도 임산부와 영아를 둔 여성직원들에게 단축근무제 등의 배려를 하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보다는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인구절벽이 가져올 재앙은 개인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재앙이고 고통이다. 경제는 위축될 것이고, 이로 인해 일자리는 더욱더 줄어들 것이고, 사회는 고령화돼 더 이상 역동적이지도, 새로운 에너지를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고령화 사회를 유지할 비용은 점점 늘어나는데 이를 뒷받침할 새로운 인력과 세수는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어떤가. 옆자리 직원이 출산휴가에 들어가 내게 돌아오는 추가 업무의 양이 억울하다고 느끼기보다 이 직원이 출산을 포기하여 곧 현실이 될 인구절벽의 재앙을 두려워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은가.


워킹맘이 경단녀가 되지 않게 하려면 제도와 인식의 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내 딸 세대에선 지금 내가 워킹맘으로 겪는 이 고단함과 고독감을 조금이라도 덜게 되지 않을까. 다음 세대에서는 아예 ‘워킹맘’이라는 단어가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본다.


김신희페르노리카 코리아?디지털마케팅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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