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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마누엘 칼럼

한국이 독자적인 안보정책을 표방할 때가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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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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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한국은 지금 갈림길에 섰다. 한국은 지난 60년 동안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구도를 추종한 덕분에 성공했다. 하지만 미국 자체가 점차 양극화됨에 따라 그러한 접근법을 따르는 게 더 어렵게 될 것이다. 현재 안보에 대한 민주당과 공화당의 관점은 간격이 너무 벌어졌기 때문에 무엇이 미국 정책인지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표방하는 외교정책에 대한 의견은 타협점을 허용하지 않는다.

미 관료의 비판 두려워하지 말아야
침묵하는 다수는 한국의 비전 지지
기후변화 무시한 낡은 정책은 위험
창의성과 용기로 발걸음 내디뎌야

대다수 미국인은 워싱턴의 정책 결정 과정이 여론을 전혀 반영하지 않으며 가장 능력 있는 인사들이 배제됐다고 느낀다.

미국의 중동·아프리카·유럽·동아시아 정책은 미국과 국제사회에서 점점 더 많은 논란을 부르고 있다. 예를 들면 랜드(RAND)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인 ‘중국과의 전쟁: 생각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생각 ’은 너무나 적대적이고 도발적이기 때문에 한국에는 공개적으로 이 보고서를 비난하고, 미국 내에서 미·중 협력을 무시하며 위험한 도발을 모색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한국은 즉각적으로 국가안보와 지역안보를 위한 비전을 분명히 제시하기 시작해야 한다. 한국의 비전은 점점 더 부패의 정도가 심각해지고 있는 워싱턴의 싱크탱크에서 나올 수 없다. 동시에 한국은 장기적인 안보 정책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아시아의 핵심 국가들과 대화에 착수해야 한다.

한국의 안보 정책 제안은 예지력이 있고 영감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유엔 헌장의 원칙에 기반해야 하며 기후변화와 드론·사이버 공격 같은 새로운 기술이 제기하는 점증하는 위협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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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그런 과감한 주장을 펼치면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비판을 회피하려는 시도는 한국의 국익과 어긋날 것이다. 오히려 한국이 용감하게 글로벌 안보 비전을 제시한다면 한국은 침묵하는 다수가 존중하는 나라가 될 것이며, 미국·일본·중국 등 예상치 못한 여러 나라에서 예상치 못한 친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안보 정책은 정확히 어떤 내용이어야 할까. 우리는 총이나 대포 같은 무기가 계속 어떤 기능을 할 것이라고 상정해야 한다. 하지만 안보 위협의 근본적 변화를 정확히 감지하지 못하고 큰 비용을 들여가며 전쟁에 시대착오적으로 대비한다면 우리는 심각한 위협에 빠질 수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우리의 국부(國富)를 확대 투입하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기후변화는 미래의 분쟁에서 한 요소로 작용하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은 안보적 고려의 중심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안보 개념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한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한국이 다른 나라들보다 어느 정도까지 빨리 이러한 전환을 달성하느냐에 달렸다. 한국의 제안이 일부 미국 고위 관료를 자극할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시야를 가리면 안 된다. 미국의 많은 전문가가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 한국을 더욱 존중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리더십을 발휘해 차세대 무기체계의 점증하는 파괴 잠재력이 미사일·핵무기 같은 무기 개발을 제한하기 위해 우리가 선의의 조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렇게 주장해야 하는 이유는 기후변화 대응 비용 때문에 그러한 무기체계를 지탱할 자금이 없으며 조약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무기 통제 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미래 분쟁의 본질을 변화시킬 드론(특히 마이크로·나노 드론)과 로봇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상당한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벌떼 같은 수많은 소형 드론의 무리는 비국가행위자(non-state actors)가 무방비 상태인 우리를 겨냥해 지극히 파괴적인 분쟁을 개시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

사이버 전쟁과 3차원 인쇄도 유사한 도전이다. 우리는 이런 기술을 이차적인 이슈가 아니라 미래 분쟁의 잠재적인 핵심으로 간주해야 한다. 드론과 결합된 사이버 전쟁의 궁극적 의미는 일방이 핵무기가 포함된 상대편의 모든 무기를 접수해 분쟁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수동으로 작동되는 무기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술은 민족국가보다는 세계 곳곳에서 유유상종하는 비국가행위자들이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동아시아 국가안보 정책을 뒷받침한 국가 대(對) 국가 분쟁에 대한 기본적인 가정을 무시하며 대규모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미래형 안보 접근 차원에서 완전한 에너지 독립을 향해 용감하게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것이다. 한국은 군용 에너지를 석유·가스·석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해상 운송이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에 지극히 취약하게 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태양력·풍력 발전 체제를 개발해 전체 군사체제와 통합해야 한다. 그래야 에너지 공급 차단이 분쟁 대응 능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로저 소킨의 영화 ‘짐(The Burden)’이 보여줬듯이 미 군부에서 가장 사려 깊은 사람들 중 많은 수가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이 전략적 취약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창의성과 용기로 우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