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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조심해! 기묘한 세계에 중독되고 말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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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하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94%, IMDB 사용자 별점 9.1, 장르 소설의 제왕인 스티븐 킹의 극찬…. 단언컨대 올여름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가 선보인 ‘기묘한 이야기’(원제 Stranger Things, 7월 15일 공개, 맷 더퍼·로스 더퍼 제작 총괄 및 연출)는 올해 최고의 웹 시리즈임에 틀림없다. 과연 어떤 점이 이토록 수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커지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이 기이하고 무섭고 환상적인 모험담에 주저 없이 뛰어든 소준문 감독이 흥분이 채 식지 않은 감상기를 magazine M에 보내왔다. 그는 단편 ‘올드 랭 사인’(2007)과 ‘연지’(2016), 장편 ‘알이씨 REC’(2011)를 연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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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시리즈를 접하기까지 시행착오가 있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한글 제목이 ‘기묘한 이야기’라니. 제목을 보자마자 동명의 일본 공포 TV 시리즈(1990~, 후지TV)를 떠올렸다. 이 시리즈가 공개되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공개된 이 시리즈의 한글 제목만 보고 지나칠 뻔했다. 넷플릭스는 앞으로 한글 제목을 짓는 데 좀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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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미국의 한적한 동네가 배경인 8부작 오리지널 시리즈,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중앙포토]

| X세대 여신, 파격 변신으로 돌아오다

화제의 넷플릭스 웹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감상기

각설하고, ‘기묘한 이야기’는 총 여덟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인기리에 방영됐던 판타지 TV 시리즈 ‘환상특급’(1959~64·1985~89, CBS) ‘어메이징 스토리’(1985~87, NBC)처럼 한 회가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를 이루는 게 아니라, 8회가 쭉 하나의 이야기로 흐르는 연속극 형태다(넷플릭스는 시리즈의 한 시즌 에피소드 전체를 한꺼번에 공개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1983년 미국 인디애나주(州) 호킨스국립연구소 에너지국. 연구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어떤 것의 습격을 받는다. 같은 날, 친구들과 함께 보드게임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소년 윌(노아 스납) 또한 어떤 것에게 습격받은 후 실종된다. 뒤이어 1980년대풍의 음침한 신시사이저 음악과 함께 뜨는 타이틀. 오프닝부터 스티븐 킹의 정서가 물씬 풍겨 온다. 제목 로고도 킹의 소설 『쿠조』(1981) 『크리스틴』(1983) 표지에 쓰인 복고풍의 활자와 많이 닮았다. 첫 회 시작 8분 만에 이 시리즈가 보여 주는 기묘한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잊은 줄만 알았던 낯익은 이름의 등장. 위노나 라이더. 그렇다. ‘헤더스’(1989, 마이클 레먼 감독) ‘가위손’(1990, 팀 버튼 감독) ‘청춘 스케치’(1994, 벤 스틸러 감독)…. 이른바 ‘X세대(1990년대 중반의 신세대를 지칭하는 용어) 여신’의 재림이다! 그는 이 시리즈에서 실종된 소년 윌의 엄마 조이스 역으로 등장한다. 솔직히 그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청순하고 어여뻤던 소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신경 쇠약 직전의 중년 여성이 낡은 소파에 앉아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위노나 라이더’였고,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는 변함없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발견이라면 단연코 그의 변신을 꼽아야 할 것이다. 라이더는 이 시리즈에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나약하지만, 누구보다 끈질기게 아들을 찾아 나서는 강인함을 보여 준다.

| 80년대 명작에 바치는 헌사

이 시리즈의 총괄 제작자이자 공동 연출자인 쌍둥이 형제 맷 더퍼·로스 더퍼는, 소설가 스티븐 킹을 비롯해 스티븐 스필버그·존 카펜터·웨스 크레이븐 등 1980년대 활약한 영화감독들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과연 시리즈 전체에 그 시절에 대한 애정과 향수가 넘쳐난다. 1980년대 명작들의 패러디인지 오마주인지 헷갈릴 정도로 거의 똑 닮은 설정들과 숏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 이 시리즈의 영특함은 그 요소들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대신, 그 특징들을 작품 전체에 자연스레 녹여냈다는 데 있다. 아이들이 실종된 친구를 찾는 이야기는 ‘구니스’(1985, 리처드 도너 감독)와 ‘스탠 바이 미’(1986, 롭 라이너 감독)를, 초능력 소녀 일레븐(밀리 바비 브라운)의 등장은 ‘E.T.’(1982,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와 ‘초능력 소녀의 분노’(1984, 마크 L 레스터 감독)를, 조이스가 전구를 통해 다른 세계에 갇힌 아들과 대화하는 장면은 ‘미지와의 조우’(1977,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를 떠올리게 한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찬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장르영화 걸작들의 코드가 매회 곳곳에 숨어 있다. 아마도 이 점이 우리가 이 시리즈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시청자들이 가슴 한편에 황홀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1980년대 장르영화 걸작들을 떠올리게 하는 힘 말이다. 그뿐 아니라 ‘기묘한 이야기’는 스티븐 킹의 스타일, 스릴러와 공포, SF, 가정용 비디오로 찍은 영상 등 여러 장르의 특성을 한데 버무린다.

| 남성 중심의 세계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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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미국의 한적한 동네가 배경인 8부작 오리지널 시리즈,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중앙포토]

‘기묘한 이야기’의 또 다른 장점은 캐릭터다. 기묘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들은 소도시에 살고 있는 아이들·엄마·여학생 등 지극히 일상적인 인물들이다. 세 소년 마이크(핀 볼프하드), 더스틴(게이튼 마라타조), 루카스(케일럽 맥라플린)는 실종된 친구 윌을 찾기 위해 자신들만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 그 모습이 다소 엉뚱하고 철없어 보이지만, 그들은 어른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을 꾸려 나간다.

더불어 윌의 엄마인 조이스는 벽 뒤에 숨어 있는, 윌을 데려간 괴물을 향해 ‘어서 모습을 보이라!’고 소리치며 위험에 직접적으로 뛰어들고, 가녀린 여학생 낸시(나탈리아 다이어) 역시 자신 때문에 괴물에게 잡혀간 친구 바바라(섀넌 퍼서)를 되찾고자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당찬 모습을 보여 준다. 초능력을 지닌 정체불명의 소녀 일레븐은 마이크, 더스틴, 루카스의 리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기묘한 이야기’는 여성과 아이들을 바라보는 정당한 시각으로 어른들의 세계, 남성 중심의 세계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린다. ‘기묘한 이야기’는 넷플릭스와 계약하기 전까지 많은 방송사에서 거절당했다. 그 방송사들은 남성 캐릭터인 하퍼 경찰서장(데이비드 하버)이 극 전체를 끌고 가길 원했다. 끝까지 자신들의 신념을 지킨 용기 있는 제작진과 그걸 받아 준 넷플릭스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 어른들의 잘못이 만들어 낸 기묘한 현실

‘기묘한 이야기’ 3화에 MK울트라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MK울트라 프로젝트란, 실제로 미국에서 CIA(미국중앙정보국)가 비밀리에 수행하던 불법 인체 실험을 가리킨다. ‘기묘한 이야기’는 이 실험을 평범한 마을에 들이닥친 재앙의 원흉으로 지목한다. 평범한 소녀였던 일레븐이 초능력을 갖게 된 것도, 또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린 것도, 괴물이 출현하게 된 것도 전부 그 때문이다. 결국 어른들의 잘못으로 무고한 아이들과 평범한 사람들이 희생된 셈이다. 문득, 어떤 기시감이 스친다. 슬프게도 우리는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막지 못했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화인 ‘뒤집힌 곳’에서 조이스와 하퍼 서장은 죽음을 무릅쓰고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 윌을 찾는다. 낸시와 친구들은 친구의 생명을 앗아간 괴물과 사투를 벌인다.

‘기묘한 이야기’는 재생 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부터 그 기묘한 분위기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렇게 단점을 찾기 어려운 작품을 만난 게 정말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기묘한 이야기'에 숨겨진 일곱 가지 기묘한 사실


1 하퍼 서장의 모델은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죠스’(1975)의 주인공 브로디 경찰서장(로이 샤이더)이다. 호퍼가 타고 다니는 SUV 차량 역시 ‘죠스’에서 브로디가 타고 다녔던 미국의 GMC 모델이다.

2 밀리 바비 브라운은 일레븐 역 때문에 삭발을 해야 했다. 이를 두려워하는 그에게 더퍼 형제는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2015, 조지 밀러 감독)의 용맹한 여성 전사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가 얼마나 멋진지 이야기한 끝에 브라운을 설득했다.

3 ‘기묘한 이야기’에는 위노나 라이더 외에도 또 한 명의 반가운 얼굴이 등장한다. 전쟁영화 ‘멤피스 벨’(1990, 마이클 카튼 존스 감독)의 매튜 모딘. 라이더와 모딘은 로이 오비슨의 ‘어 러브 소 뷰티풀(A Love So Beautiful)’의 뮤직비디오에 함께 출연한 적 있다.

4 위노나 라이더는 ‘기묘한 이야기’를 찍기 전까지 넷플릭스 사용법을 몰랐다.

5 극 중 하퍼 서장이 사는 트레일러는 미술팀이 단돈 1달러에 구입했다.

6 7화에 등장하는, 학교 체육관에 욕조를 설치해 일레븐의 몸을 수중에 띄우는 장면은 특수효과가 아니라 진짜 소금물을 만들어 촬영한 것이다.

7 극 중 등장하는 채석장은 ‘워킹데드’ 시즌1(2010, AMC)에 나왔던 그 채석장이다.

글=소준문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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