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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 정보유출 집단소송 해보니] 26분 만에 소송 준비 끝냈지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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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터파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출된 정보 항목은 집단소송의 증거 자료로 활용된다. / 2. 집단소송 경험이 있는 로펌에서 포털에 개설한 인터파크 집단소송 카페. / 3. 간단한 서류작업으로 집단소송의 원고가 되기까지 30여분 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한국 첫 인터넷 종합 쇼핑몰 인터파크에서 개인정보가 대량 유출됐다(관련 기사 1346호 18쪽). 인터파크는 지난 5월 익명의 해커로부터 서버를 해킹당했다. 보안관리자가 알지도 못하는 새 1030만 명에 달하는 고객 개인정보가 해커에게로 흘러나갔다. 그중엔 인터파크를 자주 이용하던 기자의 정보도 들어있다.

판결에서 이겨도 배상액 쥐꼬리 ... 한국 집단소송의 맹점 기업이 악용

지난 몇 년 동안 수 차례 개인정보가 털렸다. 이제는 화도 나지 않을 정도다. 개인정보를 유출한 기업은 사건이 발생한 그때만 사과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자주 일어나면서 사건은 쉽게 잊혀졌고 그 틈에 기업은 유출 책임에서 벗어났다. 기업이 개인정보 관리를 소홀히 하는 이유다. 개인정보 보호에 소홀한 기업에 경종을 울릴 방법은 정부의 과징금과 다수의 피해자가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집단소송뿐이다. 그래서 피해자로서 집단소송에 참여해봤다.

피해사실 확인
우선 해킹 사건으로 노출된 개인정보 내역을 확인했다. 인터파크 홈페이지에선 ‘고객님의 ID, 암호화된 비밀번호 외 유출된 개인정보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름, 생년월일, 휴대폰번호, e메일, 주소…’라고 알려줬다. 항목을 나열해 개인정보 일부가 유출된 것처럼 보인다. 또 인터파크에선 ‘고객님의 주민번호는 수집하고 있지 않으며, 고객님의 금융정보는 유출되지 않았다’고 알려준다. 주민등록번호는 2014년 8월 7일 시행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에 따라 업체가 수집할 수 없다. 그러니 가지고 있지도 않은 주민번호가 노출될 리 만무하다.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결제를 위해 입력하는 금융정보는 사실 금융회사에서 별도로 수집한다. 이 역시 인터파크가 애초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노출될 수 없다. ‘유출되지 않았다’는 문장을 쓰고 싶겠지만, 실제 따져보면 입력한 개인정보 전체가 유출됐단 의미다.

소송대리인 선택
소송을 대리할 변호사를 찾아봐야 한다. 집단소송은 통상 주요 포털에 있는 집단소송카페를 통해 진행된다. 변호사가 대규모 소송인단을 구성하기 위해 인터넷 상에 개설한 카페다. 인터파크 사건의 경우도 네이버·다음에서 ‘인터파크 집단소송 카페’ 등으로 검색하면 몇 가지 모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집단소송 참여자를 구하기 위해 변호사가 포털을 사용하는 이유는 ‘개인정보 보안’ 때문이다. 한 변호사는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지적하는 변호사가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수 있다”며 “대형 포털 사이트가 뛰어난 보안 기술을 제공하기 때문에 포털의 인터넷 카페를 활용한다”고 설명한다.

집단소송 카페는 흔하다. 하지만 소송을 진행하려면 주의해야 한다. 소송을 직접 진행하지도 않으면서 소송에 필요한 개인정보를 수집하려는 목적으로 개설된 카페도 있다. 한 때 집단소송 카페를 만들어 소송할 사람을 모은 후 소송비용만 가로채고 달아난 변호사도 있었다. 집단소송에 참가했던 피해자들은 이를 ‘먹튀 변호사’라 부르며 주의할 것을 당부한다. 집단소송 거리가 생길 때마다 회원을 모집하는 전문 브로커도 있다. 이들은 소송할 사람을 모아 변호사에게 명단을 전달해 돈을 번다. 과거 집단소송을 준비하면서 확보한 회원을 새로운 집단소송 카페 회원으로 일괄 등록해 세를 과시하는 카페도 있었다. 회원 수만으로 집단소송 카페를 선택해선 안 되는 이유다. 과거엔 가해 기업 측에서 카페를 운영해 문제를 일으킨 적도 있었다고 한다. 집단소송 신청자 개인정보를 빼내는 한편 소송을 지연시키거나 내분을 일으켜 신청자들의 소송의지를 꺾는 전략이다.

이미 수 차례 개인정보 유출 관련 소송을 벌인 적이 있는 로펌에서 운영하는 카페(http://cafe.naver.com/interpark shalomlaw)를 찾았다. 법무법인 평강은 지난 8월 1일 인터파크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 77명을 대리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소장을 제출했다. 손해배상청구액은 피해자 1인당 50만원이다. 이후 1000명 단위로 소송참가자가 모일 때마다 2차, 3차 소장을 추가로 제출할 예정이다. 7월 26일 개설된 이 카페는 1주일 만에 4000명이 넘게 가입했다. 통상 이들 가입 인원의 3분의 1~2 정도가 실제 소송에 나선다고 한다.

소송 신청
집단소송 카페에는 소송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가 올라 있어 사건을 파악하기 수월했다. 가입한 회원들끼리 몇 가지 의견도 주고 받을 수 있다. 카페에 올라온 이야기를 보면 ‘잦은 개인정보 유출에 화가 난다’거나 ‘문제가 발생해도 기업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등 분노의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 소송을 결심했다면 공지사항과 신청절차를 살펴보면 된다.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①소송신청서는 이름과 연락처, 주소 등만 기입하면 된다. 변호사에게 신청서를 내는 것과 같다. ②소송비용은 7700원이었다. 이 로펌은 개인당 7700원씩 받고 77명을 대리해 1차 소장을 냈다. 행운의 숫자란 의미도 있겠지만, 각종 인지대 등 최소한의 소송비용을 감안해서 정한 액수라고 한다. ③변호사가 소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위임장을 보내야 한다. 위임장은 도장을 날인해야 해서 다소 번거롭다. 도장을 찍은 서류를 스캔하거나 사진으로 촬영해 로펌에 e메일로 보내면 된다. ④인터파크 사이트를 방문해 ‘유출여부 확인’ 메뉴를 누르면 유출된 정보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이 화면을 캡처하거나 사진으로 촬영해서 보내면 증거자료로 활용된다. 일반적으로 위의 4가지 절차만 끝내면 집단소송에 참가할 수 있다. 법률상의 이름을 바꾼 사람은 주민등록초본을 제출해야 하고 미성년자는 각종 동의 양식과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함께 내야 한다. 기자가 소송 서류를 준비해서 완료하기까지 26분 걸렸다.

한국 집단소송의 한계
한국에서 집단소송은 흔하지 않다. 법률체계가 영·미법과 다른 대륙법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말하는 ‘집단소송’은 영국이나 미국에서 말하는 ‘집단소송’과는 의미가 다르다. 집단소송 체계도 안착돼 있지 않아 판결에서 이겨도 받을 수 있는 배상액이 적다. 이런 집단소송의 맹점을 기업이 이용한다. 정부에 과징금만 내고 정작 피해자인 개인에 대한 배상에는 소홀해도 큰 비난을 받기 않기 때문이다. 2012년 발생한 KT의 873만 명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0.3% 정도만 소송에 참여했다. 2년에 걸친 법정 다툼에 끝에 원고가 일부 승소해 피해자당 10만원의 배상을 판결 받았다. 그러나 KT는 판결 후 2년이 지난 올해 5월 항소심을 제기해 다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5년 넘게 소송을 벌어야 하는데 배상 받는 금액은 10만원에 불과하다. 집단소송이 확산되지 않는 이유다. 집단을 이끄는 변호사의 수익보다 가해 기업 편에선 변호사의 수임료가 훨씬 높은 것도 집단소송을 어렵게 한다. 법무법인 평강의 한 관계자는 “아직 집단소송이 안착되지 않은 상태라 공익적 목적에서 사건을 수임하고 있다”며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만드는 게 주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박상주 기자 sa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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