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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따라 한국에 남은 일본 여인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이산 40년-.
현해탄을 건너 혈육을 찾아가는 고향나들이에 70순 할머니들이 가슴 설렌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읍니다. 그리운 고향땅을 밟게 되다니요』
일제때 한국인과 결혼, 해발우 한국에 남은 한국인의 아내 일본여인들.
그들의 모임인 부용회회장 목촌희미씨(69)는 감격의 눈물을 글썽인다.
주위로부터「족발이」라는 손가락질과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그늘 속에 살아온 이들이 자신들이 당당한 모국방문단의 일원으로 고향을 찾는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듯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다.
현재 전국각지에 흩어져있는 한국속의 이방인은 7백여명. 그러나 모임에도 나타나지 않고 남몰래 숨어사는 사람까지 합치면 2천여명이 될것이란 추산이다. 일본황족으로 영친왕과 결혼한 이방자여사가 명예회장.
이들은 해방후 일본에 귀국하지 않고 「남편의 나라는 나의 조국」이라는 생각에서 한국에 남았다. 65년 한일국교가 다시 열린 뒤 개인적으로 고향나들 이를 한사람도 있으나 대부분은 한국에 남을때 고향의 가족들과도 사실상 인연을 끊은 경우가 많아 단체공식방무은 생각도못했다.
지난3월말 재일거류민단(단장 박병헌)이 한국정부의 협력을 얻어 60명을 초청, 1차로 5월 중순 20명이 모국방문단을 구성해 고향을 찾게된 것이다.
아직 정확한 출국날짜는 미정이지만 1주일동안 동경·경도를 관광한 뒤 각자고향을 찾아 친지들을 만날 계획. 이같은 사실은 4월3일자 일본 찬비신문에 재한 일본인처에 대한 특집기사와 항께 크게 실려 일본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있다.
『일제때 일본에 끌려가 정착한 재일거류민들이 같은 처지에 있는 우리를 초청해 모국방문길을 열어준 것이 더욱 뜻깊고 한없이 고맙습니다]
이번 방문단의 일원으로 일본에게 된 이문자씨(64·일본명 백촌문자·서울간호동345의13) 는 죽기전에 고향을 찾아 볼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씨가 한국에 온 것은 해방된 이듬해 1946년.
일본에 노무감독으로 봤던 이모씨(70·사망)와 연애 끝에 결혼했다가 해방되면서 귀국하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왔다.
『사랑만을 위해 가족과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에 왔으나 그 동안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청소부로 어렵게 살아왔고. 6·25때는 공산군에 잡혀 죽을 고비도 넘겼읍니다』
이씨는 하루빨리 한일간의 묵은 감정이 청산돼 자신들이 가슴을 띠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방문계획이 보도된 명인앙태자부처 방한도 『두 나라의 묶은 감정을 푸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용회회원들은 이제 모두 할머니로 평균연령이 70세다. 국경을 초월한 사랑 끝에 가족들로부터도 버림을 받은 채 낯설고 물설은 이국땅에 왔다가 외롭게 살고있다.
부용회부회장「야마구찌」씨 (74·산구지진강) 도 오오사까에 유학 왔던 유학생 유관호씨(80·사망)와 연애결혼 했으나 부모로부터 버림받았고 남편식구로부터도 손가락질을 받았다. 남편의 형님이 항일운동을 하다 옥고까지 치렀기 때문.『처음에는 호적도없어 한국에 온뒤 가호적을 만들어 혼인신고를 올렸읍니다』
이씨는 재한 일본인처 대부분이 한국·일본·이중국적·무국적등 호적조차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우리는 한국사람 이므니다. 죽어도 한국땅에 묻히겠으므니다.
떠듬떠듬하는 한국말이지만 부용회회원들은 자선들을 한국인으로 대해줄때가 가장 기쁘다고 했다. <길신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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