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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MBC 하차 논란' 최양락 "성적 올랐는데 퇴학당한 기분"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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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FM <재미있는 라디오> 하차한 최양락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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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월요일 8시30분 생방송으로 돌아올게요.” 마지막 멘트 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정치풍자 코너로 유명한 <재미있는 라디오>를 진행해온 최양락은 지난 5월 마이크를 내려놓고 두문불출했다. ‘외압에 의해 하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무성했다. 이에 MBC 측은 “일반적인 정기개편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진실은 무엇일까?

14년 동안 한자리를 지켰던 라디오 진행자가 작별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코미디언 최양락(54). 그는 5월 13일 “다음주 월요일 8시30분 생방송으로 돌아올게요. 웃는 밤 되세요”라는 멘트를 남기고 돌연 잠적했다. MBC 표준FM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진행자가 영문도 모른 채 하차한 데 이어 해당 프로그램마저 전격 폐지되자 방송계 안팎에서 외압 가능성이 제기됐다. MBC라디오의 간판 역할을 해왔던 장수 프로그램은 왜 갑자기 사라지게 된 것일까?

14년간 진행한 프로그램 폐지 후 잠적한 ‘코미디 황제’…
“정치라는 단어 입에 담고 싶지 않아…
‘수고했다’ 말 한마디라도 해줬더라면”

마침 7월 19일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최양락의 아내 팽현숙씨가 “남편이 일방적으로 하차 통보를 받았다. ‘재미있는 라디오’에서 정치 풍자를 해온 게 갈등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라고 주장해 그간 제기됐던 ‘외압설’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는 2002년부터 ‘3김퀴즈’, ‘대통퀴즈’ 등의 정치풍자 코너로 오랫동안 인기를 누렸다. 전·현직 대통령의 성대모사를 하는 패널이 등장해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이슈를 콩트 개그로 풀어낸 코너로 청취자들 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양락은 2012년 MBC 브론즈마우스 시상식에서 10년간 라디오를 진행한 공로를 인정받아 ‘브론즈마우스’를 수상했다. 브론즈마우스는 MBC 라디오 청취율 조사 5년 연속 20위 이내에 오르고 라디오PD 20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수상할 수 있는 상으로 알려졌다. 당시 시상식에서 최양락은 “10년이 어렵지, 20년은 금방 온다고 생각한다. 10년 후에 뵙겠다. 아자!”라고 외치며 이 프로그램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나타냈다.

물론 그에게 고비도 있었다. 2013년 ‘MB님과 함께하는 대충 노래교실’ 코너에서 김재철 MBC 전 사장을 풍자하는 내용을 방송했다가 담당PD가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던 것이다. 제작진 교체가 이어졌지만 최양락은 그 뒤로도 진행을 이어갔다.

그랬던 그가 작별 인사도 없이 방송을 중단했으니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MBC 측은 “진행자 교체는 정상적인 프로그램 개편의 일환이었다. 개편 2주 전에 하차 사실을 최양락 씨에게 예우를 갖춰 알렸다”며 외압설을 부인했다. 항간에서는 외압에 의한 하차에 충격을 받은 그가 이민을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월간중앙>이 수소문 끝에 만나본 최양락은 현재 아내인 팽씨가 운영하는 식당일을 도우며 쉬고 있었다.

그의 방송하차를 둘러싼 외압설은 사실일까? 8월 9일 논란의 중심에 선 그를 설득해 상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MBC FM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에서 하차했다. 14년간이나 진행해온 프로그램이었는데 어떤 심정인가? ‘매일 술로 밤새우고, 아내에게 이민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약간 와전된 얘기인 것 같다. 술은 여전히 잘 마시고 있지만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절망적으로 살고 있지 않다. 요즘은 아내 가게에서 주차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바쁠 땐 서빙도 한다. 물론 14년간 하던 일이 갑자기 끊겨 마음이 안 좋긴 했다. 그래도 지금처럼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 슬펐던 일은 시간이 지나면 ‘그랬던 적이 있었나’ 하고 어느 순간 또 사라진다. 이번에도 잘 넘어가길 바란다.”

“청취율 올랐는데 폐지해야 된다니… 말이 되나”
‘외압에 의한 하차’라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사실인가?
“청취율이 오르고 있던 시기에 갑작스레 이뤄진 하차라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 사실 하차를 통보받기 전날 새벽까지 담당 PD와 회의를 했다. ‘앞으로도 잘해보자’는 말을 나눈지 하루 만에 잘릴 줄 누가 알았겠나.”

회의에서 담당 PD와는 어떤 얘기를 나눴나?
“우리 프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의논했다. ‘시사 풍자는 어차피 사전검열 받는 거, 하지 말자’는 속 깊은 얘기까지 다나왔다. 그런데 다음날 생방송 중에 PD가 후다닥 스튜디오로 들어와서는 ‘최 프로님, 느낌이 이상한대요? CP(책임 프로듀서)가 온대요’ 이러는 거였다. 실제로 CP가 와서는 30분 정도 기다리더니 방송 끝나자마자 저를 데리고 골방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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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의 스튜디오 현장. 전·현직 대통령의 성대모사를 하는 패널이 등장해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이슈를 풍자하는 코너 ‘3김퀴즈’, ‘대통퀴즈’ 가 청취자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때 CP(책임 프로듀서)에게 무슨 얘길 들었나?
“최근 청취율 조사에서 MBC표준 FM의 웬만한 프로그램은 (청취율이) 다 떨어졌는데 ‘재미있는 라디오’와 또 한 프로그램만 청취율이 올랐다고 했다. 그런 결과를 설명하시면서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폐지하게 됐어요’라고 하시더라. 거기다 대고 내가 뭐라 할 수 있겠나. 그냥 ‘알겠습니다’하고 나왔다. 청취율은 올랐는데 폐지해야 한다니 황당하잖은가? 통보 받는 분위기도 낯선데다…. 그래서 약간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당시 분위기가 어땠나?
“뭐라 딱 짚어 표현하기 어렵다. 그때 상황이 마치 학생과장이 불량학생 최양락을 불러서 이렇게 말하는 식이었다. ‘너 이 자식. 공부도 못하는 놈이 이번에 성적이 쭉 올랐대? 그런데 너 인마, 퇴학이야. 그래도 며칠은 나와야 해. 장학사가 온대. 그건 해줘야 해’ 뭐, 이런 느낌? 방송생활 36년 만에 이게뭔가 싶어 참 서러웠다.”

MBC 측은 밤 10시까지 기다리는 등 예우를 다했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라디오’ 생방송이 밤 10시에 끝난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잖나.(웃음) 그냥 당시 내 마음은 단순했다. 자그마치 14년이나 진행한 프로그램이었잖은가. 비 골든타임인데도 동시간대 청취율을 1위로 끌어올린 적도 있었다. 그렇게 동거동락해온 세월이 있는데 말 한마디라도 ‘수고했다’고 해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프로그램 폐지 소식을 접한 후 오래 잠적했다는데 사실인가?
“사실이다. 하차 통보를 받고 충격을 꽤나 받았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방송가에서는 오래 진행한 DJ를 하차시켜야 할 때면 식사라도 같이하면서 좋은 말로 설명하는 게 관행이다.
‘어이~ 최양락 씨, 이번만 한 타임 쉬시고 또 좋은 기회 있으면 다시 연락할 테니 그때 또 합시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상다리 집어 던지고 나올 사람이 누가 있겠나. 애도 아니고….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식사까지 대접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저도 뭐 청취율이 많이 오르지도 않고 미안하네요’ 즐거운 마음으로 마무리 쫙 하고 왔겠지. 어찌됐거나 유감스럽게도 이번에 매듭을 제대로 짓지 못했다. 청취자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을 뿐이다.”

“미국은 연예인의 의사표현 자유로운데…”
최양락은 1981년 MBC 제1회 개그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콩트 개그 전성시대였던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네로 25시’, ‘괜찮아유’, ‘고독한 사냥꾼’ 등 수많은 코너를 히트시켰다. 종래의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몸을 써서 웃기는 코미디를 뛰어넘어 그는 머리를 써서 웃기는 코미디를 등장시켰다. 특히 ‘네로 25시’ 에서는 촌철살인의 정치 풍자를 선보여 시청자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금 제가 인기가 없죠.(웃음) 당연해. 히트작이 없으니까. ‘저 아저씨, 옛날에는 인기 있었다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아냐’ 누가 저한테 그런다면 참 맞는 얘기 한 거예요. 그런데 ‘최양락, 참 재미없어’ 그런 얘기는 받아들이기 힘들죠.”


1980년대에 거의 처음으로 정치 풍자를 선보였다. 요즘은 그런 정치 코미디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미안한데, 개인적으로 정치 관련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재미있는 라디오’에서 정치 풍자 코너가 없어진 배경에 대해 돌려서 물어보는 것 같은데…. 지금 주변에서 외압 때문에 제가 하차된 것처럼 말하고 있잖은가? 그런 상황에서 제가 입에 ‘정치’라는 단어를 담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차 과정이 서운했던 거지, MBC에 대해서는 예의를 지키고 싶다. 방송국은 프로그램의 청취율이 낮게 나오면 개편에 맞춰 얼마든지 진행자를 바꿀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MBC 측은 지난 7월 “최근 3년간 ‘재미있는 라디오’는 동시간대 주요 4개 채널(MBC·KBS·SBS·CBS) 가운데 청취율이 4위인 경우가 많았다”, “장기간 노력에도 동 시간대 최
하위 그룹을 벗어나지 못해 지난 5월 개편을 통해 새로운 포맷과 진행자로 교체가 이뤄졌다”라고 밝혔다.

4대 주요 채널이 각기 세분화 돼있어서 실상은 10개 가까이 된다. 그 밖의 채널까지 합치면 26개나 된다. 결국 30여 개 채널중에 4위를 했는데, 나쁜 성적인가?
“아, 맞다. 그러고 보니 14년 동안 DJ하면서 한 3년만 3~4위 수준이었고 그전에 10여 년 동안은 거의 1~2위를 했다. 청취자 여러분께 오래 사랑받았다는 게 실감되니 가슴 벅차다. 사실은 요즘도 전국에서 응원 편지가 온다. 사실 제가 어릴 때부터 규칙적인 생활을 두려워해서 ‘오전 9시 출근, 6시 퇴근’하는 직업을 가지면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이게 웬걸. 라디오DJ를 하면서 무려 14년 동안이나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그만큼 라디오 하는 게 참 좋았다.”

평소 정치 관련한 의견을 내놓는 연예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이건 제동이 얘기 하는 것 같은데? 그 친구가 정치에 뜻이 있는지에 대해선 단 1분도 같이 얘기해본 적 없지만. 자기 주관을 멋지게 표현한 거고, 그걸 누구도 욕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고 본다. 사람이 다양한데 얘기도 다양하게 나와야지. 안 그런가?

미국은 연예인들의 의사표현이 자유롭지 않나? 어떤 연예인이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해서 얘를 왕따를 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김제동 같은 경우는 시청자가 굉장히 어색함을 느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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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예능프로<쇼비디오자키>의 정치풍자 코너 ‘네로 25시’. 최양락은 1980~90년대 촌철살인의 정치 풍자를 선보여 시청자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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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예능프로 <야심만만2>에서 MC 강호동(왼쪽)과 최양락(오른쪽)이 웃고 있다. 2009년 최양락은 ‘야심만만’에 출연해 배꼽 잡는 경험담을 털어놔 화제가 됐다. 이후 그는 이 프로그램의 메인MC를 꿰차며 제 2의 전성기를 누렸다.

왜 어색함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나?
“김제동과 뜻이 같은 사람이라도 어색할 거다. 안쓰러워서. ‘어휴, 자꾸 저렇게 말하면 불이익 당할 텐데’ 그런 시선으로 보게 되고 아무튼 괜히 마음 불편한 거다, 쟤 보면. (그럼) 김제동과 뜻이 다른 시청자는 보기 편할까? ‘아, 저 자식, 종북 아니야?’ 이럴 거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정치색을 완전히 드러내면 어려운 게 있다. 연예인이 어떤 의견을 드러내도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시대가 돼야 그때 비로소 우리도 선진국이다. 김제동이 사드에 반대했든 찬성했든 TV에 나와 웃기면 같이 깔깔대야지. ‘어휴, 쟤 보면 불편해. 마음 편한 사람 보자’ 하면서 채널을 돌리잖은가.”

최양락은 40년 가까이 코미디를 해오며 두세 번의 슬럼프를 겪었지만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성공적으로 복귀해왔다. 1989년 KBS 코미디대상 남자연기상, 1993년 SBS 연기대상 올해의스타상, 1996년 한국방송대상 코미디언상 등 주요 상을 휩쓴 후 1990년대 후반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2001년 MBC ‘알까기 명인전’ 코너에서 특유의 입담으로 다시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코미디언이 인정한 코미디언. 그게 접니다”
오랫동안 방송생활을 하다 보면 인기가 없는 시기도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견뎠나?
“지금도 인기가 없다.(웃음) 인기 없는 건 당연해, 히트작이없으니까. ‘옛날에 인기 있었다는데 지금 저 아저씨 아무것도 아냐’ 누가 저한테 그런다면 참 맞는 얘기 한 거다. 그런데 ‘최양락, 참 재미없어’ 그런 얘기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코미디언이 꿈이어서 그때부터 준비한 사람이다, 내가. 못 웃기면 화딱지 나서 잠을 못 잔다. 코미디언이 인정한 코미디언, 그게 나다. 개그맨 전유성 형이 ‘네가 제일 웃겨. 인마’ 했잖은가. 껄껄.”

코미디언, 개그맨 중에 어떻게 불리길 바라나?
“코미디언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코미디언은 희극인이라는 뜻이다. 개그는 코미디의 하위 개념이고. 예전에 전유성형이 있어 보이려고 만든 말이 개그맨이잖나.”(웃음)

개그맨 전유성(67)은 최양락의 롤모델이자 스승이다. 그가 1980년대 중반 코미디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처음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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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연예인의 의사표현이 자유롭잖아요. 어떤 연예인이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해서 왕따를 시키진 않아요. 어떤 의견을 드러내도
괜찮은 시대가 와야 비로소 우리도 선진국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최근의 코미디의 경향을 어떻게 생각하나?
“예전에 ‘요즘은 코미디는 안하고 다들 진행만 하려 한다’고 말했다가 난리 난 적이 있다. ‘새끼, 지가 늙었으면 좀 빠지지, 잘나가는 후배들은 왜 건드려?’ 이런 말도 들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닌데 속상했다. 코미디에도 콩트 코미디, 공개 개그쇼, 예능 토크 등 다양 한 줄기가 있다. 판이 다양해져야 코미디도 더 살아나지 않을 까,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과거 ‘네로 25시’ 같은 콩트 코미디가 거의 사라졌다. 그 대신 MC와 패널이 얘기하고 노는 예능으로 가고 있잖나. 예능 토크(talk)가 흥하기 전에는 패널들이 나와서 끝말잇기 게임, 369게임 하고 그랬다. 그건 오락이다.”

현재 방영 중인 코미디 프로그램이 있지 않나?

“개그 프로그램이 지금 몇 개 있다고 생각하나? KBS <개그콘서트> 하고 SBS <웃찾사>뿐 아닌가. 내 입장에서는 이제까지 해왔던 코미디가 거의 없어진 거다. 쉽게 말해서 무대가 없다. 무대가. 지금 내가 개콘에 들어간다? 그것도 말이 안 되잖나. 나이 먹은 사람은 안 되는 것 같고 지금 분위기가 그렇지 않은가. 혹자는 ‘그러면 당신도 예능 프로그램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경규 씨의 경우 MC 분야에서 잘하는 분이다. 대신 난 콩트에서 강하다. 뭐 그렇다고 내가 (예능에서) 죽을 쓰고 그런 건 아니다. 예전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젖꼭지 너덜너덜’ 토크가 히트쳤잖나. 그런 ‘추억 팔이’를 맨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콩트 코미디를 방송국에서 다시 제작하면 되지 않을까?

“가능할까? 콩트 코미디 프로가 다시 살아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선 방송인 입장에서 콩트는 ‘잘해야 본전’이다. 아이디어 짜야지, 대사 외우고 분장도 해야 하고. 콩트의 특성상 시청자의 반응이 즉각적이다. ‘웃긴다. 안 웃긴다’ 판단이 딱나오거든. 반면에 예능 토크는 평가하기가 애매하다. 보통 MC가 게스트 6~7명 데리고 얘기하는데 MC 입장에서는 그날 좀 못 웃겼더라도 ‘이번 게스트가 좀 약했다’ 이렇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수 있다. 아무래도 콩트에 비해 심적 부담이 덜하다.”

패널을 실력 있는 예능인, 코미디언으로 채우는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글쎄. 비싼 금액을 주고 제일 잘나가는 사람을 MC로 앉혀놓으니 그보다 나은 패널을 데리고 올 수 있을까, 그렇잖나. 시스템이 잘못된 거다. 유재석·강호동을 MC로 앉혀놓으면 이보다 강한 패널을 어떻게 데리고 오나.”

과거에는 조연급이 MC를 봤다면 요즘은 주연급이 MC를 맡는 식으로 분위기가 변했다.
“그렇다. 그것과 별개로 후배들한테 섭섭한 게 있다. 야구로비교하자면 노는 물이 있잖나. 지상파를 메이저리그라고 친다면 케이블이나 종편은 마이너리그라는 얘기다. 신동엽이다, 강호동이다 뭐 이런 잘나간다는 친구들이, 메이저리그만 해도 되잖아. 그런데 다 한다. 마이너리그고 메이저리그고. 이런 건 우리나라만 그렇다. 그렇게 보여줄게 많나? 나는 지금도 한 프로그램 맡으면 걱정돼서 잠을 못 자는데. 정말 요즘 후배들을 보면 이런 천재가 어디 있나 싶다. 심지어 프로그램 8~9개 하는 친구도 있다. 그건 아니잖나. 인간이 한계가 있는데 적당히 먹어야지. 그런 면에서 유재석한테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아직까지는 케이블을 안 한다. 그 친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렇게 모범적이라서 ‘유느님’이라고 불리나 보다.”

“유재석한테 박수 쳐주고 싶어”
코미디를 오래 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하다.
“난 녹화를 엉망으로 한 날은 잠을 못 잔다. 그날 일을 반성하고 와신상담한다. 이렇게 늘 꾸준히 연습했던 게 도움이 됐다. 녹화를 엉망진창하고도 속 편한 놈도 있다. ‘형님, 저녁이나
먹으러 가시죠’ 막 이런다. ‘야, 니 개그가 오늘 개판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해맑게….’ 당황스럽다. 그러니까 ‘끝난 건 끝난 거고, 우선 가시죠.’ 그런 얘들은 오래 못 가더라. 또 어떤 놈은 녹화 끝나고 죽을 상을 짓고 앉아 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아까 제가 개그를 못 살렸어요’ 하고 괴로워하며 벽에 주먹질도 하고 그런다. 이런 친구들은 오래 가더라. 뭐든지 우연이란 없다, 이 바닥에서는.”

프로의식이 중요하다는 얘기인가?
“맞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타자야 다 잘 친다. 수준이 올라갔다. 그런데 투수가 못 따라가는 거다. ‘선동률 방어율 0.99’ 이건 만화책에 나오는 얘기가 됐다. 그렇게 시대가 바뀌었다. 5점 가까이 져도 괜찮다는 얘기다. ‘1회 초 한화 5대 0으로 앞서가고 있습니다. (중략) 4~5회까지 가서 7대 5로 뒤집은 삼성’ 이러더니만 잠깐 화장실 갔다 온 사이 ‘결국 11대 11 게 임 종료’ 그렇게 끝난단 말이다. 한 타자도 제대로 상대 못하다가 투수코치가 나와서 공 달라면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주고 나오는 투수? 그게 프로라고 할 수 있나? 나 같으면 (공을) 안 줄 것 같다. 개그도 승부욕이 있어야 한다. 묻어가려고 하면 안 되고. 개그를 어떻게 묻어가나?”

안 묻어가고 열심히 하는 코미디언이 있다면?

“유명 MC나 소위 잘나가는 코미디언 옆에 묻어가려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런데 김병만이라는 친구는 개그는 다소 약하지만 자기만의 스포츠적인 기능을 개발해서 말 그대로 ‘이거 아니면 죽는다’ 그런 마음으로 승부하는 것 같다. SBS ‘정글의 법칙’도 그 친구만 할 수 있는 거다. 그 프로그램이 아직도 금요일 ‘최강자’더구만~. 개인적으로 참 박수쳐주고 싶다.”

야구로 따지면 본인은 어떤 포지션이라고 생각하나?

“투수다. 나 혼자 튀기보다는 궂은 거 막아내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본다. 예전에 코미디 할 때 아이디어 짜다가 동료들에게 ‘좀 쉬세요. 제가 마저 할게요’ 그러곤 했다.”

좋아하는 야구 선수가 있나?
“야구 좋아하는 사람은 다 안다, 선동렬이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는지. 요즘은 죄다 전설이라고 그래 갖고. 전설이 너무 많아. 전설은 한 명 정도.”(웃음)

“MBC 예능프로 ‘무한도전’ 보고 반성”
여건이 갖춰진다면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나?
“세상에 전무후무한 정말 그런 프로그램. ‘세상에 저런 프로그램이 다 있었나!’ 그런 걸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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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유재석이 2015년 SBS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뒤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최양락은 “유재석은 케이블에서 무리하게 다작(多作)하지 않는다. 그렇게 모범적이라서 ‘유느님’이라고 불리나 보다”라고 평가했다.

한때 MBC 예능 <무한도전>이 그런 평가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변화를 상징한 프로그램이다. 콩트 시대 때나 잘나갔던 제가 ‘무한도전’을 보고 반성했잖은가. ‘콩트를 짜서 스튜디오에서 촬영해도 되는데 왜 밖에서 뛰어다니지?’ 처음엔 그랬다. 심형래는 영구 분장해서 웃기고 나는 알까기 하면 되는데 왜 봅슬레이를 배워야 하고 밖에서 그 고생하지 싶었다. 유재석은 우리보다 콩트를 못했다. 지도 알 거다. 10년 동안 밀어줘도 안 되더라고, 콩트는. 근데 진행하고 그러니까 우리보다 잘했다. 변화의 시작이 됐다, 그 친구가. 반면 우리는 진행자 하면 김동건 아나운서가 있었잖은가. 허참 아나운서도 계시고. 그래서 변화를 생각 못했던 거다.”

코미디 프로 시청률이 이전만큼은 못 나오고 있다. 원인이 뭐라고 보나?
“시청자는 코미디언을 뛰어넘는 존재다. 그걸 알아야 한다. 일례로 열다섯 살 중학생이 10년 차 코미디언한테 ‘아저씨 개그 재미없어요’ 이런다. 그러면 ‘열다섯 살 짜리가 뭘 알아?’ 이렇게 화낼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저는 10년간 방송했다고 하지만 그 중학생은 시청 경험이 15년이다. 재미의 유무를 전문가처럼 구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얘긴가? 그래서 요즘 전세가 역전됐다. ‘개콘’이 흔들리는상황이 온 것이다. 이 중학생 시청자는 백재현, 김미화 시절부터 ‘개콘’을 지켜봐왔다. 다음에 어떤 대사가 나올지 감이 딱 오는 거다. 더
군다나 얘는 KBS 전속이 아니니까 SBS <웃찾사>도 보고 영화 <부산행>도 보고 장르를 뛰어넘어 다양한 시청 경험이 있다. 결국 코미디언이 시청자 수준을 못 따라 가게 된 거다.”

시청자를 웃길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이럴 땐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그러잖은가. 2000년 초반 일본에서 드라마 <겨울연가>가 흥행했던 이유를 아는가? 당시 일본의 대중문화가 되게 폭력적이고 막장으로 치달을 때였다. 그런데 30년 전에 유행했던 진실한 사랑 얘기가 등장한 거다. ‘겨울연가’라는 이름으로. 유행은 돌고 돈다고, 과거의 순수성이 일본을 뒤흔든 거다. 우리도 과거 방영됐던 코미디 프로그램 <유머일번지> 같은 게 다시 나오면 어떨까 싶다. 그게 일종의 비공개 드라마였거든. 코미디면서 드라마였다.그래서 진지하면서도 끝에 잔잔한 웃음을 준다. 지금 방영된다면 다들 새로워 하실 거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사람을 웃길 수 있는지 고민 중이다. 일평생 나에겐 코미디 생각밖에 없었다.”(웃음)

충남 온양에서 태어난 최양락은 고등학교 시절 온양극장을 빌려 코미디극을 선보였다. 충청도 특유의 억양과 입담으로 소소한 인기를 끌었고 온양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어린 최양락의 인생 목표는 TBC(동양방송)3기 코미디언이 되는 것이었다. 어찌나 목표의식이 강했던지 그가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에 언론통폐합 조치로 TBC가 없어지자 밤새 오열을 했다고 한다.

36년이 흘러 최근 다시 인생의 변곡점을 맞은 그는 “코미디언이 된 걸 후회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짧게 답했다. 오랜만에 그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코미디언이에요. 앞으로도 여러분을 웃길 겁니다.”

글 김포그니 기자 pognee@joongang.co.kr
사진 김상선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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