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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사람 풍경] 애니에 미쳐 비디오방에서 살았다…‘아키라’ ‘인랑’은 1000번 넘게 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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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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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은 “우화를 좋아한다. 우리 사회의 갈등을 보여주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이제 1000만 감독이 됐으니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같은 걸작을 만들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크든 작든 영화를 계속하는 게 그의 유일한 소망이다. [사진 전민규 기자]

미쳐야(狂) 미치는(及) 걸까. 그는 대학 내내 비디오방과 음악감상실을 전전했다. 영화 연출 꿈은 있었지만 실현 여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오랜 무명 시절도 거쳤다. 그리고 지금 가장 뜨거운 감독으로 떠올랐다. 올해 처음으로 1000만 영화에 등극한 ‘부산행’의 연상호(38) 감독이다. 좀비라는 낯선 소재를 앞세워 이기주의에 빠진 우리 사회를 풍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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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의 주요 작품들. 학교·종교 등 오늘날 한국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일관되게 다뤄왔다. ‘부산행’

다음주에는 ‘부산행’의 모티브가 된 잔혹 애니메이션 ‘서울역’과 그가 제작한 판타지 애니메이션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감독 이성강)이 잇따라 찾아온다. ‘연상호 열풍’이 계속될지 주목거리다. 하루아침에 벼락스타가 된 연 감독, 8일 만난 그는 의외로 차분했다. “전날 떡볶이 파티로 간단한 자축행사를 열었다”고 했다. ‘부산행’보다 첫 장편 애니 ‘돼지의 왕’으로 2011년 부산영화제 3관왕(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한국영화감독조합상·CGV무비꼴라쥬상)을 받았을 때의 감격이 더 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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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중고 신인의 위풍당당 개선가다.
“대학 2학년 때 7분짜리 첫 단편 애니를 만들었다. 벌써 19년차 감독이다(웃음). ‘부산행’에 대한 폭발적 호응은 기대밖이다. 우리 사회에 퍼진 불안의식이 그만큼 큰 것 같다.”
애니메이션으로 출발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마니아 기질이 있었다. 서울 고속터미널 주변에서 일본 비디오를 불법 복사해 봤다. ‘이웃집 토토로’ 등 미야자키 하야오의 초기작을 접했다. 성인용 애니의 전설 ‘우로츠키 동자’, SF 명작 ‘아키라’도 볼 정도였다. 비디오테이프로 세탁기 박스를 가득 채웠다.”
꽤 조숙했던 모양이다.
“애니를 좋아하는 아이들끼리 정보를 주고받았다. 일본에서 레이저 디스크가 나온 지 일주일 정도 지나면 작품을 구할 수 있었다. 관련 잡지도 모았다. 중학생 때 애니 감독이 되겠다는 뜻을 세웠다.”
계속 그렇게 지냈나. 학교 공부는.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반에서 거의 꼴찌였다. 담임 선생님이 제가 만약 대학에 간다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까지 했다. 고교 때도 애니를 끼고 살았다. 일본 독립애니까지 섭렵했다. 미대 진학을 희망했기에 성적은 중간까지 끌어올렸다.”
왜 서양화과에 들어갔나.
“사연이 있다. 디자인을 전공하려고 했는데 점수가 안 좋아 3지망 서양화과에 붙었다. 대학 때도 샛길로 흘렀다. 홍대 주변 아모르 비디오방에서 살았다. 에로비디오를 하루에 서너 편 본 것 같다. 또 시간이 나면 음악감상실 백스테이지에서 보냈다. 외국 헤비메탈 뮤직비디오에 빠져들었다. 록밴드 라디오헤드·너바나를 좋아했다.”
일반 영화는 멀리하고 지냈나.
“비디오방에서 더 이상 볼 게 없었다. 어느 날 진열장 맨 아래칸에 있던 옛날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시간을 죽이려는 목적이 컸다. 고전 중 고전인 ‘시민 케인’을, SF 거장 스탠리 큐브릭을 만나게 됐다. 여균동·장선우 감독 등 한국 영화도 보기 시작했다. 영화전문지 ‘키노’를 읽으며 견문을 넓혔다.”
그래도 영화 전공은 아니다.
“많이 보는 게 장땡이 아닐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을 복기할 수 있는 작품이 여럿 있다. 영화 한 편은 보통 1400~1800컷으로 이뤄지는데 계속 보다 보면 절로 암기가 된다. ‘아키라’ ‘퍼퍽트 블루’ ‘인랑(人狼)’은 1000번 넘게 봤다. 봐도 봐도 재미있다. 작품의 디테일을 속속들이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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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

연 감독은 소수 열혈팬의 지지를 받아왔다. 학교 안 계급 문제를 응시한 ‘돼지의 왕’(2011), 상업화한 종교를 비판한 ‘사이비’(2013)로 성인용 애니의 새 장을 열었다. ‘부산행’은 세 번째 장편이자 첫 실사영화다. 18일 개봉하는 ‘서울역’ 역시 좀비를 내세운다. ‘부산행’보다 더욱 급진적이다. 노숙자를 매개로 차별·빈부·국가 문제를 뜯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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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왜 갑자기 노숙자인가.
“영화는 2년 전 완성했다. 구상은 2006년부터 했다. 노숙자가 급증한 시기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누구든 거리로 밀려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증폭됐다. ‘부산행’의 석우(공유)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좀비가 득실대는 KTX 열차와 좀비가 없는 열차, 그 사이 출입문을 경계로 인물이 변화한다.”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있나.
“대학 졸업 후 1년 반 정도 애니 회사에 다녔다. 외국 하청을 받는 곳이었는데 이미 호황기가 지난 때였다. 동남아·중국 등으로 일감을 뺏겼다. ‘내 작품을 하자’며 회사를 그만뒀다.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창업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세상 물정을 몰랐다. 콘텐츠진흥원에서 사무실·기자재를 지원받아 장편 애니를 만들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를 깨닫는 데 두 달이면 충분했다. 통장 잔액이 0원이 됐다.”
어떻게 다시 일어섰나.
“앞이 보이지 않았다. ‘돼지의 왕’을 만화로 그려 잡지사에 보냈지만 다 퇴짜를 맞았다. 포털 다음의 신인 코너 ‘나도 만화가’에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6~7년이 흘렀다. 그러다 상상마당 독립영화 지원작으로 ‘돼지의 왕’을 6개월 만에 만들었고 부산영화제와 프랑스 칸영화제에 초청받게 됐다.”
당시 감회가 대단했겠다.
“‘돼지의 왕’이 0에서 1을 이룬 것이라면 ‘부산행’은 1에서 1000을 이룬 셈이다. 0에서 1까지 가기가 더 힘들다. 그때의 흥분은 상상 초월이다. 거의 백수 상태였으니까. 덕분에 ‘사이비’ ‘부산행’까지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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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 연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중앙포토]

애니 두 편 관객이 5만이 안 됐는데.
“상업영화와 잣대가 다르다. 나쁜 기록이 아니다. 되레 ‘사이비’ 때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원형탈모증도 생겼다. 평단의 호평을 계속 받을 수 있을지 부담감이 컸다.”
우리 사는 곳을 지옥으로 바라본다.
“‘혐오의 시대’라고 했다. 사람들 밑바닥에 ‘내가 못살고 있다’ ‘상황이 안 좋다’는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다. 사회에 대한 불신이다. 우리 현대사와 밀접한 문제다. 군부독재는 사라졌지만 세상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 상실감이다. 청년들이 지금 울고 있지 않나.”
본인은 인생 역전을 이루지 않았나.
“그렇잖아도 ‘부산행’이 잘되면서 제 얘기를 들려달라는 강연 요청이 종종 들어온다. 하지만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소수의 성공 사례로 불공평한 세상을 합리화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계속 고민 중이다.”
종교에 대해서도 꽤 비판적인데.
“고교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미션스쿨(숭실고)을 나왔다. 지금도 가급적 주일을 지키려고 한다. 다만 맹신은 경계한다. 맹신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고통스러운 존재의 나약함을 주목한다.”
흔히 사회파 감독으로 불린다.
“모르겠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엔터테인먼트다. 영화를 통해 자기가 사는 세상을 보는 것도 큰 재미다. 그런 장르성에 충실할 뿐이다. 제가 사회파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도 사회파 영화로 불러야 하나.”
애니와 상업영화, 둘을 비교한다면.
“연출기법은 동일하다. 산업 규모가 다르다. 애니 쪽은 전문 스태프가 모자란다. 누구 하나 빠지면 대체인력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실사영화는 곳곳에 전문가가 있다. 이번에 좀비 안무가(박재인)도 처음 알았다. 그래서 ‘카이’가 더 잘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직접 제작한 영화라서 그런가.
“애니산업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다. ‘서울역’ 관객이 제한적이라면 ‘카이’는 전 가족이 대상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 가족용 애니 화제작이 없는 것 같다. 수준 있는 애니가 계속 나오는 환경 마련이 가장 중요하다. 한 40만 명쯤 들면 좋겠다.”
[S BOX] 『송곳』 만화가 최규석이 절친…“힘들 때마다 자신감 심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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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에는 도반(道伴)이 있다. 함께 도를 닦는 벗을 뜻한다. 연상호 감독은 만화가 최규석(39·사진)을 도반에 비유했다. “아내를 빼고 가장 친한 사람, 요즘 말로 ‘베프(베스트 프렌드)’입니다. 제가 첫손가락에 꼽는 동료”라고 했다.

올해 첫 1000만 영화 ‘부산행’ 연상호 감독

둘은 상명대 동창이다. 연 감독은 서양화과를, 최 작가는 만화학과를 나왔다.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공부하는 학생이 드물던 시절, 그들은 알음알음으로 만나게 됐다. 캠퍼스(서양화과 서울, 만화학과 천안)는 달랐지만 서로 꿈과 진로를 터놓는 사이가 됐다. 사회를 ‘삐딱하게’ 보는 성향도 비슷했다. 연 감독의 작품에도 최 작가가 자연스럽게 참여했다. ‘돼지의 왕’ ‘사이비’ ‘서울역’ 등의 캐릭터 디자인과 시나리오 구성 등에 도움을 줬다. ‘부산행’에서 소녀 수안(김수안)이 부르는 노래 ‘알로하 오에(Aloha Oe)’도 최 작가가 추천했다.

“예전엔 메신저로 하루 종일 얘기를 했어요.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사서 새벽까지 함께한 적도 있고요. 규석이는 대학 시절부터 스타 작가로 떠올랐죠. 제가 힘들어할 때마다 ‘너는 재능이 있다’ ‘계속해’라며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JTBC 드라마로 제작된 『송곳』으로 유명한 최 작가는 『습지생태보고서』 『대한민국 원주민』 등에서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들춰내 왔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호는 주제가 분명하고, 표현력도 뛰어나요. 계획을 촘촘히 세우고 또 그것을 실천하는 의지가 굳은 친구입니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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