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환영의 직격 인터뷰

“부패 없는 선진국의 길이 다산 사상에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16.08.12 00:47

업데이트 2016.08.12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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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환영 기자 중앙일보 실장
국가건 개인이건 앞으로 나아가다가 막히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의 행로를 되짚어 보는 게 한 가지 방법이다. 과거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 한데 어느 때로, 어느 곳으로, 누구에게로 방법론적인 ‘되돌아 가보기’를 해볼 것인가. 가장 강력하게 떠오르는 인물이 위대한 사상가·경세가인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다. 그는 “온 세상이 썩은 지 오래다. 부패하다 못해 썩어 문드러졌다”고 개탄했다. 우리나라가 수십 년간 선형적인 발전을 하다가 막힌 이유 중 하나는 부패다. 조소적인 사람들의 말에 따른다면 속속들이 부패했기 때문에 차라리 개혁이 쉽다. 아무 사회 영역이나 손대면 그곳이 썩어 있기에 그곳을 고치면 되기 때문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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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관계에서 활동한 다산연구소 박석무 이사장은 『다산 정약용 평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다산 기행』 『다산 정약용의 일일수행』을 저술한 우리나라 최고의 다산 전문가이기도 하다. 중·고등학교에서 18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으며 행정가·학자·정치가로도 활동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우리 근세사를 보면 나라를 위해 그리스도교인이 되고 사회주의자가 되고 무정부주의자가 되고 신자유주의자가 됐다. 그러나 서학의 영향을 받았던 다산 정약용은 결국 천주교라는 형태의 그리스도교를 거부했다. 그의 독자적인 학문 체계에는 실용주의가 있었고 부패 척결 방법론이 있었다. 다산연구소 박석무 이사장을 지난달 12일이 만났다. 다산 사상과 박석무 이사장의 바람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다산 정약용 선생을 다른 나라 학자와 비교한다면.
“다산은 학문 영역과 수준에서 사실 서양에서도 따라올 만한 사람이 많진 않다. 다산의 업적은 철학·역사·지리·의학·토목공학에 걸쳐 있다. 교량을 만드는 작업도 했다. 특히 의술에서도 당대 최고 의사였다. 옛날로 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근세로 내려오면 괴테 같은 인물이다.”
‘근대의 아리스토텔레스’라고도 할 수 있지 않나.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다산의 정신이나 주장을 한마디로 하면 무엇인가.
“다산이 본과에 급제하고 나서 홍패라고 하는 합격증을 받고 집에 돌아와 지은 시가 있다. 말하자면 자기 각오를 말하는 시다. 이제 문과에 급제해 내일부터 이 나라에 고관대작이 될 수 있는 벼슬자리를 시작한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건가. 거기에서 나온 글자 두 자가 ‘공렴(公廉)’이다. 다산은 공렴으로 온 정성을 다해서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내 몸을 위해서만, 우리 가정을 위해서만 살지 않겠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우리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 공 개념으로 자기 인생을 살아가겠다. 어떤 직위·직책을 맡더라도 철저하게 청렴하게 살겠다. 이 공렴이 다산의 일생을 꿰뚫은 걸로 본다. 『목민심서』도 전부 공렴 정신이다. 공렴으로만 우리 공직자들이 일하면 이 나라가 요순시대가 된다. 다산이 말하는 요순시대는 지금으로 보면 선진국이고 일류 국가다. 우리 공직자들 모두가 사(私)를 버리고 공(公)으로 돌아와 국가와 민족만을 위해 일하고 어떤 부정부패에도 관여하지 않는다면 요순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 다산이 추구했던 공렴을 오늘 현실에서 실천하도록 돕는 게 우리 연구소의 목표다. 그럼 공렴을 어떻게 실현하느냐. 글자가 네 자예요. 수기치인(修己治人)이다. 나를 닦고 남에게 봉사한다. 내 인격을 닦아 남에게 봉사한다. 그러면 공렴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공렴이 목표, 수기치인이 방법이다. 이 여섯 자를 통해 다산 사상의 전모를 꿰뚫어볼 수 있다.”
부패에 대한 다산의 생각은.
“부패를 벗어날 수 있다, 비리를 벗어날 수 있다고 봤다. 자기 사욕을 이기고 공익을 이룰 수 있는 자제력이 있어야 부패하지 않는다. 그 과정이 수기(修己)다. 수기가 제대로 안 돼 있기 때문에 부패한다. 다산은 기본적으로는 부패하면 망한다고 생각했다. 개인이 부패하면 개인이 망하고 나라가 부패하면 나라가 망한다. 신라 1000년, 부패해서 망했다. 로마 1000년, 부패해서 망했다. 자기가 사는 시대에서 이 부패를 막지 못하면 망한다. 수없이 망(亡)자를 쓰면서 다산은 경고한다. 이대로 가면 망한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왜 다시 다산이냐. 다산이 실천 방법을 내놓았는데 실현이 안 됐다. 지금 21세기에라도 200년 전 다산의 논리를, 시대의 변화에서 오는 것들은 수정한다손 치더라도 기본은 같으니까, 오늘 우리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다산으로 돌아가면 깨끗한 세상이 온다. 이게 제가 늘 어디 가서 강의할 때 하는 이야기다. 우리가 다산으로 돌아가면 이 시대를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온다. 어느 세상이나 부패한다. 부패할 수밖에 없다. 이걸 어떻게 할 거냐. 두 가지로 막는 거다. 자기 개인 인격 수양을 통해, 다른 하나는 제도를 통해서다. 다산의 『경세유표(經世遺表)』는 제도를 통해 막는 거고, 『목민심서(牧民心書)』는 자기 인격 수양 통해 막는 것이다. 다산처럼 해보면 나라가 된다. 다산의 말을 안 듣고 다산의 요구를 거부하다 결국 1910년 나라가 망했다. 망하고 보니까 결과가 지금까지도 남북 분단이 됐고 싸우고 있다.”
다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딱 짚어서 무슨 계기를 기억할 수는 없다. 고등학생 때부터 보던 월간지 ‘사상계’에 다산이라든가 실학과 관계된 글이 많이 실렸다. 우리 집은 전통적으로 유학자 집안인데, 일반 유학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있진 않으면서도 조선 후기 실학에 관심을 가졌다. 우리가 앞으로 연구할 분야라는 생각이 고등학교 때부터 있었다. 서점에 가더라도 우선적으로 실학에 대한 책을 샀다. 신문이나 잡지에 기사가 나오면 유심히 봤다. 제가 다산을 공부하게 된 건 대학원에 가면서다. 대학원 지도교수께서 한국 법제사 분야가 우리나라의 미개척 분야라 추천하셨다. 지도교수께서 ‘자네는 한문을 해독하니까 그 분야에 관심을 가져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셨다. 석사학위 논문으로 다산 정약용 법사상에 대해 썼다. 다산의 학문 세계가 법만이 아니라 엄청나다는 인식을 하게 돼 석사 논문을 쓴 후로도 다산 책을 보게 됐다.”
초·중·고, 대학 교육과 병행해 한문을 추가로 배우는 게 굉장히 어렵지 않았는지.
“어려운데 우리 집 사랑에는 수많은 손님이 왔다. 사랑에선 맨 한문 이야기였다. 시조 읊으면서 술 자시는데 듣는 맛이 있었다. 한문 이야기를 주로 들어 귀에 익숙해졌다. 대학원에 들어가 한문 책을 볼 때는 누구의 도움 없이도 한문을 해독할 수 있게 됐다.”
한문이나 영어나 외는 게 최고인가.
“저는 똑같다고 본다. 국회로 들어갈 때까지 18년 동안 중·고에서 영어 교사를 했다. 애들에게 영어 원문을 외우게 했다. 그 학생들이 지금 50대, 60대다. 만나면 학생들이 그때 외웠던 것들을 나중에도 써먹게 됐다고 한다.”
다산연구소를 2004년 6월 17일 창립했다. 지금 어떤 사업이 제일 중요한지.
“여러 사업이 다 중요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청렴 정신, 공직 윤리 같은 다산의 본뜻을 이해시켜 주는 강좌를 여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저는 한 달에 최소 두세 번은 외부 초청을 받아 가고 있다. 일반인 대상 다산학 입문 강좌를 통해 저도 그렇고 강사로 모신 분들도 강의를 하면서 계속 다산을 공부하게 된다. 시·군·구 기초자치단체별로 다산의 목민정신에 가장 투철하게 행정을 펴고 있는 분들을 골라 다산목민대상을 수여하고 있다. 우리 지방자치를 발전시키려면 특히 청렴하고 깨끗한 행정을 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다산 선생 기일에 묘제를 지낸다. 해마다 500~600명씩 온다. 또 다산 음악회를 연다. 다산은 음악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좋은 음악이 나오면 좋은 정치가 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사업비는 어떻게 마련하는가.
“외부 지원을 받는다.”
외부 지원은 충분한지.
“갈수록 그것도 어려워지니까. 지원받을 데를 물색하고 있는데 경제가 갈수록 어렵다. 후원받기가 어려워 이 연구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참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 정부에서도 문화단체라든가 학술단체에 대한 구체적 배려라든가 지원은 거의 없다. 거의 예산 투여가 되고 있지 않다. 우리 같은 학술단체뿐만 아니라 출판이 안 되고 있다. 책이 안 팔리니 책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 지금 이렇게 가면 한국 출판계가 고사될 것이다.”
선생님도 하시고 교수·국회의원도 하셨는데 어떤 게 제일 보람 있었는지.
“고전번역원 초대 원장으로서 보람이 있었다. 고전 번역을 하지 않고는 우리의 문화 단절을 극복할 수 없다. 조선시대 500년만 하더라도 전부 한자로 문자를 쓰다가 해방 이후로 한글을 쓰게 됐는데, 그러면 500년의 문화 업적을 어떻게 하잔 말인가. 우리가 문화 업적을 수용하고 발전시키려면 한문을 한글로 번역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고전번역원이라는 특수 법인이 정부 산하 단체로 생겨나 계속 번역자를 쓰고 양성할 수 있다. 학술진흥재단 이사장도 했는데 연구비를 공정하고 정당하게 지원하는 기틀을 상당히 잡아놨다. 교사 생활도 보람 있었다. 지금도 제자들을 자주 만난다.”
독자들에게 강조할 말씀은.
“요즘처럼 살기가 어렵고 경제가 이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정말로 공리를 위한 정치를 해야 되는데 요새 정치가 너무 잘못되고 있다. 정권을 잡고 자기 당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누구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이런 것들을 떠나 정말 우리 백성을 위하는, 우리나라를 위하는 다산의 애국심을 정말 상기시키고 싶다. 다산은 국민을 위해 500권의 저서를 남겼다. 자기가 덕 보는 것도 없고, 지금 당장 세상을 고칠 수는 없지만 후세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나라를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순수한 애국심에서 지은 글이다. 그 고달픔마저 모르고 쓴 책들이다. 그런 다산의 뜻을 이어받아서라도 백성을 위하는 정치, 제발 정치가 정도로 가는 세상으로 가길 바라는 게 제 바람이다.”
박석무 이사장은 …
1942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난 학자·정치인이다. 민주화운동에 투신해 네 차례 옥고를 치렀다. 13,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한국고전번역원 원장,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 단국대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1996년 광주민주화운동유공자상, 2004년 다산학술공로상을 받았다.

글=김환영 논설위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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