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목요일] 학원 독서지도까지 간섭…당신은 ‘응사세대’ 엄마?

중앙일보

입력 2016.08.11 01:14

업데이트 2016.08.1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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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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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목동에서 독서토론 학원을 운영하는 김모(50)씨는 요즘 학부모의 이런저런 요구에 골치가 아프다. 초등 3학년반을 개설하고 학생을 모집하자 커리큘럼을 꼬치꼬치 묻는 학부모로 이어졌다.

“과학고 가려면 그런 거 안 통해요
커리큘럼 줄테니 이렇게 해주세요”
전문가보다 자신 경험·정보 확신
외환위기 트라우마가 강박관념으로
자식이 잉여인간 될까 불안감 커
강압적 훈육 대신 자녀와 소통부터

김씨의 설명을 들은 어떤 엄마는 “잘 모르나 본데, 과학고나 영재학교에 가려면 지금부터 수학·과학 관련 도서 위주로 읽어야 한다. 도서 목록 줄 테니 이걸로 지도해 달라”고 요구했다. 다른 엄마는 “초등학생이라고 어린이용 고전을 읽힐 필요 없다. 세계 고전 완역본을 읽고 토론하는 반을 새로 만들어 보라”는 ‘훈수’도 했다. 김 강사는 “10여 년간 학원을 운영했지만 요즘 들어 부모가 직접 커리큘럼을 짜고 강사에게 ‘이대로 강의하라’는 요구가 늘어 당혹스럽다”고 전했다.

요즘 엄마들의 거센 요구에 당황하는 건 학교도 마찬가지다. 서울 강북 초등학교 교감은 “요즘 들어 학교에 직접 담임 교사 교체를 요구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교육청에 직접 민원까지 넣는 학부모들이 많아졌다. 또 학교의 수학여행과 학원의 수학시험이 겹치면 학원에 보낼 정도로 사교육에 비중을 둔다”고 한숨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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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심수휘]

교육계 안팎에선 자녀 양육·교육방식에 대한 자기 확신이 강하고 사교육을 신뢰하는 학부모 분위기를 1997년 외환위기 전후 학창 시절을 보낸 ‘외환위기(IMF) 세대’가 주도하고 있다고 본다. 이미애 교육컨설턴트는 “90년대 중반 이후, 특히 94~99학번(응사 세대)으로 대학에서 외환위기를 겪은 엄마 상당수가 전문가·교사의 조언보다 자기의 경험과 확신을 따라 자녀를 교육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신은주 성신초 교사도 “학교에서 부모 교육이나 진로 특강을 열면 유독 30대 중·후반 연령대의 엄마들이 강사나 전문가에게 ‘너무 이상적이다’ ‘지금은 그런 게 안 통한다’는 면박을 주는 일이 자주 일어나 당황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교사들과 사교육 업계에서 꼽는 외환위기 엄마의 특징은 확신과 불안이다. 문경보 대광고 상담교사는 “이 두 개념은 얼핏 전혀 다른 의미 같지만 속성은 똑같다. 성공의 길은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 그리고 그 길에서 조금만 비켜나면 자녀가 ‘잉여인간’이 될 수 있다는 강박관념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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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 스스로도 자각하는 경우가 많다. 초5 자녀를 둔 학부모 김모(37·서울 상암동)씨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스펙’이 없으면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남 보기엔 열심히 공부했던 친구도 취업을 하지 못해 좌절했다. ‘올 에이(All A)’와 토익 900점을 목표로 도서관에 박혀 살았던 친구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걸 보고 얌체처럼 보일지라도 내가 할 몫은 철저히 챙겨야 한다고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험은 자녀 진로 탐색, 양육 방식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세대 엄마들은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고 진로를 선택하라”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솔직한 느낌을 정리하는 게 독서 활동”이라는 전문가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송진호 메타학습연구소 대표는 “외환위기를 경험한 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대학과 직장에서 강도 높은 경쟁을 경험했다. 때문에 ‘이 정도는 해내야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기준치가 굉장히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때문에 자녀에게도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가르치는 대신 ‘해야 하는 것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주문하곤 한다는 설명이다.

외환위기 엄마들이 보낸 교육 환경은 이전 세대와 다르다. 90년대 초까지 대입은 학력고사라는 ‘하나의 문’만 통과하면 됐다. 강력한 과외 금지 조치에 따라 사교육 열풍도 다소 잠잠했던 때다. 반면 외환위기 엄마들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과외가 합법화된 뒤 초·중·고를 다녔다. 수능·수시모집 등이 도입되면서 관련 사교육의 열풍을 경험했다.

또한 이들 세대가 자녀를 학교에 보낸 요즘은 수월성 교육, 사교육이 한층 확대되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부모의 사회적 경험이 자녀의 양육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엄마들이 보이는 치열한 교육열은 실상 이들의 이기심·과욕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했던 경험을 해소할 틈도 없이 계속 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에 놓였던 게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외환위기 엄마들은 전문가보다 자신이 직접 온·오프라인에서 찾은 정보를 신뢰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미애 컨설턴트는 “이들 중엔 ‘잠수네’ ‘하은맘’ 등 유명 사이트에서 직접 실천법을 찾아 매뉴얼로 정리하고 자녀에게 그대로 대입하려는 이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얻은 정보·기준을 자녀에게 제시하면서 ‘엄마의 생각부터 따르라’는 식의 강압적인 태도를 보일 때도 많다. 이 컨설턴트는 “아이가 공부하다 잠깐 음악 듣는 모습에 화가 치밀어 책상 위의 책을 찢어버리거나, 영화를 보러 간 아이의 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던져버린 뒤 후회하는 엄마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꿈꾸는 목요일] 더 보기

① 유대인식 교육법 ‘하브루타’ … 오늘도 아빠와 30분 대화

② “짜증나~” “그래 짜증났구나” 부모는 앵무새도 돼야 한다


교사·전문가들은 자기 확신과 강박을 버리고 여유를 찾으라고 조언했다. 문경보 교사는 “아이마다 기질과 소질, 특성이 다른 만큼 자녀에게 같은 과정을 대입해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자신이 보고자 하는 일부가 마치 전부인 양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송 대표도 “엄마의 불안이 과격하고 절제되지 않은 행동으로 표출되면 결국 부작용이 생긴다. 아이를 경쟁으로 모는 차가운 교사의 자리에서 내려와 자녀와 소통하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엄마의 교육열 빗댄 은어들

돼지엄마 돼지가 새끼들을 끌고 다니듯이 사교육 정보에 정통해 다른 엄마들을 이끄는 엄마

헬리콥터맘 자녀의 주위를 헬리콥터처럼 빙빙 돌며 사사건건 간섭하는 엄마를 일컫는 말

잔디깎이맘 자녀의 성공에 걸림돌이 되는 장애물을 다 없애주는 극성 엄마

타이거맘 엄격하게 훈육하고 간섭하면서 자녀를 혹독하게 교육하는 엄마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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