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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반퇴의 정석] ⑩ 은퇴 크레바스를 넘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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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덩치의 북극곰도 빙하에서는 한낱 연약한 동물에 불과하다. 먹이를 찾아 헤매지만 거대한 빙하 조각에 고립되면 영락없이 아사할 수밖에 없다. 빙하는 꿈쩍하지 않고 있는 것같지만 조금씩 움직이면서 갈라지고 깨지면서 균열이 발생한다. 이 균열을 크레바스라고 한다.

퇴직자도 마찬가지다. 충실하게 현업에 몰두하면 정년퇴직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건강상의 문제를 비롯해 여러가지 이유로 정년 이전에 현업에서 물러날 수 있다. 회사원은 법정정년이 올해부터 60세로 연장됐다. 하지만 그림의 떡이 현실이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상시 구조조정의 여파로 누구나 정년까지 직장에 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질 퇴직 연령은 평균 53세를 갓 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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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이라고 해서 누구나 정년을 채우는 것은 아니다. 일반직 공무원의 경우 대다수가 60세고, 교사는 62세다. 하지만 공무원도 정년을 완전히 채우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반직 공무원의 경우 국장으로 진급할 경우가 문제다. 장관이 되지 않는 이상 60세를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장 안정적이라고 하는 교사의 경우도 명예퇴직 신청이 적지 않다. 20년간 재직하면 명퇴를 신청해 연금을 받아 노후를 보낼 수 있으니 명퇴가 매력적일 수도 있다.

|은퇴 크레바스 10년 되는 경우 흔해 

문제는 정년을 채우지 않고 퇴직하면 월급이 끊긴 상황에서 연금이 바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연금재원 고갈 우려에 따라 당초 60세에 지급되는 연금 지급개시 연령이 최장 65세로 늦춰져 있다. 1952년생까지는 60세에 받았지만, 그 이후 출생자는 그룹으로 묶어 1년씩 늦어진다. 53~56년생은 61세에 지급이 개시되고, 57~60년생은 62세, 61~64년생은 63세, 65~68년생은 64세부터 연금 지급이 시작된다. 69년생 이후 출생자는 65세가 돼야 연금을 받는다. 현실적으로 봉급생활자의 경우 평균 53세에 퇴직하면 거의 10년간 국민연금 없이 지내야 한다는 얘기다.

누구나 퇴직하면 어떻게 되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100세 시대에는 매우 위험하고 안이한 생각이 될 수 있다. 북극 곰이 빙하 조각에 고립돼 며칠 만에 아사할 수 있는 것처럼 퇴직자 역시 불과 1년만에 심각한 경제적 궁핍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회사원은 은퇴 크레바스의 위험이 심각하다. 평균 53세에 퇴직해 국민연금이 나올 때까지 너구 긴 시간 동안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어서다.

국민연금은 1952년생까지는 종전대로 60세부터 수령할 수 있다. 하지만 53~56년생부터 한 살씩 지연돼 65~68년생은 네 살이 지연되고, 69년생 이후는 다섯 살이 지연된다. 예컨대 53년생이라면 61세가 되는 해에 국민연금을 받게 된다. 69년생이라면 65세부터 국민연금이 나온다. 공무원이나 교사의 직연연금 역시 입직 시기에 따라 수령 개시 시기가 달라진다. 조기퇴직하거나 정상적으로 퇴직했는데도 바로 연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불과 1~2년 사이에 현금흐름 악화돼

연금이 나오더라도 목표로 했던 노후생활자금보다 적어도 문제다. 1~2년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면 되겠지 하는 생각은 위험천만하다. 회사원이었다면 베이비부머의 맏형인 1955년생은 올해 처음으로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했다.이들의월평균 국민연금은 51만9500원으로 나타났다. 다른 수입이 없다면 노후가 궁핍할 수밖에 없다. 2014년 노인 실태조사에 따른 노부부의 적정 생활비(225만원)나 최소생활비(160만원)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다. 이들은 평균으로 보면 상당수가 53세를 갓넘겨 1차 퇴직을 했다. 그렇다면 이들 중 상당수는 재취업을 통해 일자리를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재취업 후 소득은 그리 많지 않다. 평균적으로는 월 100만~200만원 사이의 급여를 받았을 공산이 크다.

결국 노후 준비는 50세 중반까지 완료돼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50세 중반이 되면 벌써 퇴직을 하거나 퇴직에 가까워지고, 회사를 다니고 있어도 임금피크제를 적용받게 돼 수입이 상당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저축할 여력이 없다는 얘기다. 반면 지출은 50대 중반~60대 중반 사이에 가장 크게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자녀 교육비를 지원하고 여력이 된다면 결혼까지 지원하는 것이 한국인의 평균적인 통과의례이기 때문이다.

|55세 이전에 노후자금 준비 끝내야
이런 점을 감안하면 100세 시대가 된 이후로는 현업에 있을 때가 노후생활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시기라고 보면 된다. 불과 30년 벌어 퇴직 후 30년을 살아가는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재무설계는 이같이 노후 30년간 지출할 생활비까지 포함해서 짜야 한다. 여기에 맞춰 연금을 쌓아가야 노후가 안락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 시절 최선을 다했는데도 노후에 상대적 빈곤을 물론 절대비곤까지 겪을 수 있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로 48%에 달한다. 이는 절대빈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위소득의 50%에 미달하면 빈곤상태로 보는 것인데 소득이 많은 노인에 비해 소득이 상대적으로 적은 노인이 한국에는 많다는 의미다.

이런 불우한 여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면 인생 이모작이 불가피하다. 1차 퇴직 직후 바로 은퇴하는 것은 100세 시대에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선택이 됐다. 국민연금이 나올 때까지는 근로소득이 있어야 경제생활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고서는 노후 준비도 온전히 할 수 없다.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60세까지 불입하도록 설계돼 있다. 오히 불입할수록 수령액도 많아진다. 그런데 60세 전에 조기퇴직이라도 하게 된다면 정년을 채운 사람보다 국민연금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재취업 통한 인생이모작 준비 필요

재취업을 하지 못하면 당장 써야할 돈을 벌지 못할 뿐 아니라 노후 30년간 생활을 뒷받침해줄 국민연금도 제대로 쌓지 못하게 된다. 재취업이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모든 기계와 장비가 로봇화하고 일상생활에서 쓰는 전기전자 제품도 최대한 인공지능과 결합되는 4차 산업혁명 이후에는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든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직종에 종사했다면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는 얘기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는 앞으로 5년 내 7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00만개가 새로 생겨 결국 50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전망했다. 앞으로는 재취업을 하고 싶어도 취업문은 더욱 좁아진다는 의미다. 은퇴 크레바스에 대한 대비는 이런 비관적인 전망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 재무적 대비와 재취업을 놓고 최적의 준비를 해나갈 때 은퇴 크레바스를 무사히 건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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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화요일 계속됩니다>
※이 글은 고품격 매거진 이코노미스트에서도 매주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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