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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2016] 10·10·10·10·10·10…쾌활세대 구본찬 “아름다운 밤이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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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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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찬·김우진·이승윤 선수(왼쪽부터)가 7일 리우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양궁 단체전에서 미국을 6-0으로 완파, 금메달을 확정 지은 뒤 환호하고 있다. 한국의 리우 올림픽 첫 금메달이다. [뉴시스]

고요·집중·명상….

남자양궁 단체 금메달 90년대생 3인
평소 춤 즐기는 23세 개성파 구본찬
어머니조차 “네가 양궁 하겠다고?”
긴장이라곤 모르는 에이스 김우진
막내지만 대범한 이승윤도 이름값
“이젠 개인전 오늘부터 적, 하하하”

‘양궁’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역대 ‘신궁’ 계보를 이어 온 선수들도 외유내강(外柔內剛)형 선수가 많았다. 하지만 21세기 ‘주몽’은 다르다. 활을 잡으면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정도로 집중하지만 사대 밖에서는 시원시원하고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리우 올림픽 첫 금메달도 명랑하고 낙천적으로 활을 쏘는 ‘쾌활 세대’가 따냈다.

김우진(24·청주시청)·구본찬(23·현대제철)·이승윤(21·코오롱)으로 이뤄진 남자 양궁 대표팀은 7일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열린 미국과의 단체전 결승에서 세트 점수 6-0(60-57, 58-57, 59-56)으로 완승을 거뒀다. 8강(네덜란드)·준결승(호주)에 이어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는 완벽한 우승이었다. 4년 전 동메달에 머물렀던 한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8년 만에 정상을 되찾았다. 올림픽 무대를 처음으로 밟은 20대 초·중반의 선수들이 역대 20번째 양궁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결승전의 주역은 구본찬이었다. 구본찬이 노란 활시위를 잡아당긴 뒤 쏜 화살은 잇따라 과녁 정중앙으로 날아갔다. 10점, 10점, 10점, 10점, 10점, 10점. 구본찬은 여섯 발을 모두 10점에 적중시켰다. 구본찬은 “경기 중에는 여섯 발 연속 10점을 쐈는지 몰랐다”고 할 정도로 탁월한 집중력을 발휘했다.

구본찬은 진중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농담도 잘하는 대표팀의 분위기 메이커다. 쉬는 날엔 춤과 음악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평범한 20대 젊은이다. 한쪽으로 잘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도 개성이 넘친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양궁을 시작하자 어머니가 “네가 양궁을 하겠다고?”라며 되물었을 정도였다.

구본찬은 금메달을 따낸 뒤에는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영화제에서나 나올 법한 소감을 말했다. “아름다운 밤이에요.”

하지만 그는 사대에만 서면 180도 달라진다. 장난스러운 미소는 사라지고 집중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김영숙 한국스포츠개발원 박사는 “양궁은 ‘멘털 게임’이다. 심리적인 요소가 50% 이상 작용한다. 우리 선수들은 기술과 심리, 모두 강하다”고 했다.

에이스 김우진도 이름값을 해냈다. 김우진은 6일 랭킹 라운드에서 700점(72발)을 쏴 임동현(699점)이 갖고 있던 세계기록을 갈아 치웠다. 그리고 단체전 토너먼트 3경기에서 18발 중 13발을 10점, 5발을 9점에 맞혔다. 승부에 대한 압박을 이겨 내는 힘도 강하다. 한국 선수 중 슛오프 승률(60%)이 제일 높다. 예민할 것 같은 김우진도 양궁장 밖에선 밝은 성격이다. 긴장감 넘치는 선발전에서도 편안한 얼굴이었다.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오진혁(35·현대제철)은 “김우진은 정말 타고났다. 긴장이라는 것을 모른다”며 혀를 내둘렀다.

‘양궁 신동’으로 불리던 김우진은 18세이던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에 올랐다. 그러나 2년 뒤 런던 올림픽 선발전에선 4위로 탈락했다. 김우진은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런던 올림픽 때는 TV도 보지 않았다”며 “4년 전 경험이 약이 됐다. 독기를 품고 연습한 덕분에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막내 이승윤은 언제나 냉정을 유지하는 ‘쿨가이’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장난감 조립이 취미다. 형들이 재밌는 얘기를 하면 씩 웃는 편이다. 이승윤 역시 고교 때부터 국가대표로 선발돼 나이에 비해 경험이 풍부하다. 대담함은 두 형들보다도 한 수 위다. 2013년 월드컵 4차 대회 개인전 결승에서는 한 발을 0점에 쐈지만 흔들리지 않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팀워크도 훌륭하다. 셋은 지난해 광주 유니버시아드에서도 함께 단체전에 출전했다. 에이스인 김우진이 1번, 구본찬이 2번, 슈팅 타이밍이 빠르고 안정적인 이승윤이 3번으로 나서 금메달을 합작했다. 올림픽에서도 똑같은 순서로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들은 13일 열리는 남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놓고 경쟁한다. 8강까지는 맞붙지 않도록 배정됐지만 서로 금메달을 다툴 가능성도 충분하다. 구본찬은 “우진형과 승윤이는 오늘 이후로는 적”이라고 농담을 던지며 빙긋이 웃었다.

김효경 기자, 리우=피주영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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