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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기묘한 섬, 얽히고설킨 욕망을 비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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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록 스타 마리안(틸다 스윈튼)이 연인 폴(마티아스 쇼에나에츠)과 함께 이탈리아의 작은 섬으로 휴가를 떠난다. 그곳에 마리안의 옛 연인이자 유명 음반 프로듀서 해리(랄프 파인즈)와 그의 딸 페넬로페(다코타 존슨)가 찾아온다. 재회의 반가움은 점점 묘한 감정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탈리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45)의 ‘비거 스플래쉬’(원제 A Bigger Splash, 8월 3일 개봉)는 인간의 욕망과 소통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지는 우아한 드라마다. 지난해 제7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후보로 올랐던 작품이기도 하다. ‘아이 엠 러브’(2009)를 통해 이미 걸출한 연출력을 뽐냈던 그는, 이 아름답고 웃기고 슬픈 이야기를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을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을 서면으로 만났다. 그가 제작사와 미리 진행한 인터뷰도 함께 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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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거 스플래쉬 스틸. 영화사 제공

‘비거 스플래쉬’는 밀도 있는 스토리, 감각적인 연출, 주연 배우들의 매력만큼이나 그 배경인 이탈리아 판텔레리아 섬이 무척이나 눈길을 끄는 영화다. 고즈넉한 이 작은 섬은 아름다운 한편, 어쩐지 황량하고 불길한 기운을 머금고 있다.

'비거 스플래쉬'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영화 초반부 조용한 휴가지처럼 보이던 섬의 광경은, 인물들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하며 조금씩 바뀌어 간다. 판텔레리아 섬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왜 이 섬이어야 했나.

“나는 시칠리아(이탈리아 남부에 자리한 섬) 사람이다. 판텔레리아는 시칠리아 가까이 있는 화산섬이라 10대 시절 그곳에서 여러 번 여름휴가를 보냈다. 그때 그 섬에 완전히 매료됐다. 바위들은 화산 폭발의 영향으로 거의 검정에 가까울 만큼 어둡고, 시로코 바람(아프리카 사막 지대에서 불어오는 건조하고 더운 열풍)이 악명 높을 정도로 사납게 분다. 갈 때마다 늘 섬뜩하고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비거 스플래쉬’의 이야기를 구상하며 그 섬의 이상한 면이 자꾸 떠올랐다. 이 섬의 사납고 냉혹한 기운이 자신들의 일에만 몰두하는 인물들을 뒤흔들면 어떨까 싶었다. 풍경은 항상 인간 본연의 원초적인 면을 드러내 주니까. 이러한 풍경의 힘을 이용해, 네 남녀의 예측할 수 없는 강렬한 충돌을 보여 주고 싶었다.”

풀어 설명하면 이렇다. 해리를 떠난 마리안은 폴과 사랑에 빠진 지 오래다. 해리와는 친구로 남았다. 그러나 그와 이 기묘한 섬에서 다시 만난 뒤 자꾸만 이상하게 얽힌다. 폴은 그런 해리가 거슬린다. 페넬로페는 조용히 폴을 응시한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섬이다. 마리안과 해리의 감정이 격앙될 때는 시로코 바람이 불어온다. 폴과 페넬로페의 눈빛이 묘하게 섞이는 장소는 황량한 언덕이다. 이들의 마음에 분노와 욕망의 파도가 일 때마다 섬은 어두워진다. 인물들의 감정에 휘말려 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은 그래서다. 이제 네 명의 남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마리안을 사이에 두고 해리와 폴의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진다.

“나는 기본적으로 욕망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휘젓는지에 대해 강한 흥미를 느낀다. 욕망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혹은 생산적인지, 욕망이 얼마나 과대평가될 수 있는지 혹은 방치될 수 있는지. 이러한 관심에서 시작한 이야기다.”

-중간에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할 것 같은 마리안이 목 수술을 받아 말할 수 없는 상태라는 점이 극에 긴장을 더한다. 말이 많은 사람(해리), 말이 적은 사람(폴), 말을 못하는 사람(마리안), 모든 것을 꿰뚫고 있음에도 말을 안 하는 사람(페넬로페)이 주인공인 셈이다. 이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서로 끊임없이 오해할 뿐이다.

“맞다. 해리가 수많은 언어로 모두를 감싸는 인물이라면, 반대로 마리안은 이 언어의 게임에 참여해서는 안 되는 인물로 설정하면 어떨까 싶었다. 해리는 끊임없이 말을 걸지만, 결국 마리안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마리안이 말을 못한다는 설정은 틸다 스윈튼의 아이디어였는데, 무척 좋았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두 남자 배우의 매력은 ‘비거 스플래쉬’의 성취 중 하나가 아닐까. 랄프 파인즈가 그렇게 수다스러운 모습은 처음 본다. ‘러스트 앤 본’(2012, 자크 오디아르 감독)에서 열연했던 마티아스 쇼에나에츠는 폴의 불안하고 어두운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다.

“나는 인물들을 다큐멘터리처럼 찍고 싶었는데, 네 배우 모두 인간의 심연을 탁월하게 드러내는 이들이었다. 랄프 파인즈에 대해서는 영화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경외감을 갖고 있었다. 그가 이런 미치광이 캐릭터를 연기한 건 본 적 없었는데, 역시 훌륭했다. 쇼에나에츠는 엄청난 에너지, 진실함, 완벽한 재능을 가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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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거 스플래쉬 촬영스틸,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영화사 제공

-음악의 쓰임이 다채롭다. 특히 롤링 스톤스의 음악을 중심에 놓은 이유가 무언가.

“영원히 젊게 살고 싶지만 실패하는 세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로큰롤 세대의 진정한 상징인 롤링 스톤스가 빠질 수 없었다. 판텔레리아 섬과 롤링 스톤스는 이 영화를 받치는 두 기둥인 셈이다. 결말 부분의 파국에서 쓰인 곡들은 이탈리아의 20세기를 빛낸 작곡가 지아친토 셀시의 음악이다. 예상치 못한 어두운 곳으로 이끄는 느낌이 영화와 맞아 떨어져 사용했다.”


-‘비거 스플래쉬(‘풍덩’쯤으로 해석된다)’라는 제목은 어떻게 짓게 됐나.

“위대한 미술가 데이비드 호크니(79)가 그린 동명 그림에 대한 오마주다. 파괴된 표면의 깊이를 탐구하는 훌륭한 작품이다.”

-차기작이 궁금하다. “아미 해머가 출연하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촬영을 막 마쳤다. 얼마 후에는 클래식 호러 ‘써스페리아’(1977,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 리메이크 버전 촬영에 들어간다.”


‘비거 스플래쉬’에 관해 알아 둘 것 두 가지


이 영화에는 원작이 있다.

프랑스 감독 자크 드레이가 연출하고 알랭 들롱이 주연을 맡은 영화 ‘수영장’(1969)이 원작이다. 프랑스 감독 프랑수아 오종 역시 2003년 ‘스위밍 풀’을 내놓으며 “이 작품에 대한 오마주”라 밝힌 바 있다. ‘비거 스플래쉬’ 속 수영장은 처음엔 평온한 휴식처였다가 에로틱한 장소로, 다시 위험한 곳으로 바뀌어 간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사람들이 휴양지에서 자연스럽게 머무는 장소일 뿐, 특별한 장치로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지만.

2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과 틸다 스윈튼은 20년 ‘절친’이다.

구아다니노 감독과 스윈튼은 소문난 ‘절친’이다. 그의 작업 초기 ‘틸다 스윈튼:러브 팩토리’(2002)라는 단편 다큐멘터리를 내놓았을 정도. 구아다니노 감독의 전작 ‘아이 엠 러브’에서도 열연한 스윈튼은 “구아다니노 감독과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더 많은 시간이 누적될수록, 더 많은 영화와 인생도 함께 누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글=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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