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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농사 짓던 만학도, 러시아 대학 수석졸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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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근식씨(왼쪽)가 은사인 배재대 박종대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배재대]

중학교 졸업 학력, 수박농사를 짓던 소년가장, 동생 뒷바라지….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대학에서 수석 졸업한 공근식(46)씨의 과거 인생사다.

충북 영동군 심천면이 고향인 공씨는 최근 모스크바물리기술대를 수석 졸업했다. 지난 4일 자신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열게 해 준 배재대를 방문한 공씨는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며 “항공공학분야에서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 달 모스크바물리기술대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다.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고 17세 때부터 수박농사를 지었다. 두 동생을 대학에 보낼 정도로 억척스런 소년가장이었다. 배움의 의지를 놓지 않았던 공씨는 야학을 통해 고졸검정고시를 마치고 서른 네살이던 2004년 배재대 전자전산물리학과에 입학했다. 영동에서 대전까지 통학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배재대에 교환교수로 와 있던 고려인 러시아 교수와 연구원을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공씨는 “러시아어와 물리, 화학 등을 배우면서 발사체 등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러시아 유학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씨는 2010년 물리학 분야 유명대학인 모스크바물리기술대 항공공학과에 진학했고 1년의 예비과정을 거쳐 5년 만에 수석졸업의 영예를 안았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밤낮으로 공부에 몰두한 끝에 3학년부터 졸업 때까지 전 과목 A+를 받았다. 졸업논문인 ‘화학변화를 고려한 우주 발사체의 성능향상 계량화’는 최우수평가를 받았다. 러시아의 항공우주 격월간지 『자유로운 비행』은 지난 5월호에서 ‘염원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제목의 표지인물로 그를 소개했다.

공씨는 “수업을 스마트폰으로 녹음한 후 반복해서 듣고 필기와 구술시험으로 나눠 진행되는 중간·기말고사도 철저히 준비했다“며 “한국인으로서 몸에 밴 예의바른 생활도 좋은 평가를 받는 데 한몫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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