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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목요일] 모유 착유실 있나요…당신 일터는 ‘엄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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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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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도시관리공단에 근무하는 김종갑씨는 유축기로 착유해 19개월 아들에게 모유수유를 한다. [사진 조문규 기자]

서울 성동구도시관리공단에서 근무하는 김종갑(36)씨는 19개월 아들의 엄마다. 김씨는 완전모유수유(완모)를 이어가고 있다. 목표는 24개월.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가 권장하는 모유수유 기간 2년을 채우려 한다. 김씨는 하루에 두 번 정도 공단 건물 2층에 마련된 모유수유실에서 유축을 한다. 공단 측은 지난해 김씨가 출산휴가에 들어간 사이 모유수유실을 꾸몄다. 냉동고와 유축기, 아이스팩 등을 준비했다. 그런 덕분에 김씨의 완모는 계속될 수 있었다.

아기 면역력 높이고 엄마 암도 예방
모유수유 장점 많이 알려졌지만
돌까지 젖 먹는 아기 35%에 그쳐
유니세프 23년 전부터 ‘모유 캠페인’
착유실·냉장고 갖춘 직장·병원 인증
“아기·산모 떼놓는 산후조리 바꿔야”

주위에선 김씨의 건강이 상할까 봐 수유를 끊는 게 어떠냐고 권유하지만 김씨는 완고하다. 3개월 만의 복직으로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을 모유수유로 보상해 주고 싶었다. 이 과정에서 뿌듯함도 있었다. 지난봄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수족구병이 유행했다. 모든 아이가 수족구병에 걸렸는데 2명만 걸리지 않았다. 김씨는 “7개월 동안 완모한 아기와 우리 아들만 병을 피했다. 면역력이 확실히 다르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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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의학저널 란셋(Lancet)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모유수유는 분유수유보다 아기와 엄마 모두에게 건강상 유리하다. 아기의 경우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줘 잔병치레가 줄고 알레르기 발생과 비만 등을 예방할 수 있다. 지능 발달에도 도움이 된다. 영양학적이나 면역학적으로 완전한 식품이기에 ‘엄마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로도 불린다. 엄마의 경우 유방암과 난소암을 예방할 수 있고 열량 소비가 많아져 자연스럽게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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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의 좋은 점이 알려지면서 모유수유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완모 성공률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2015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에 따르면 11~12개월 미만 영아의 혼합(모유+분유 등 보충식) 모유수유율은 35%로 2012년 33.7%보다 조금 늘었다. 반면 그 밖의 월령별 완전모유수유율과 혼합모유수유율은 2009년을 정점으로 계속해 줄었다. 전체적으로 모유수유를 계획하고 있는 시기는 평균 13.2개월이었으나 실제 중단한 시기는 평균 6.6개월로 6개월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보사연은 “모유수유의 장점은 많이 알려져 있으나 이를 방해하는 다양한 요인이 있어 실천이 쉽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유니세프가 최근 전국 만 2세 미만 자녀를 둔 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출산 후 6개월 완모 수유율은 약 23%에 불과했다. 24개월까지 수유하는 비율은 1%도 안 된다. 이처럼 2년 모유수유는 쉽지 않다.

유니세프는 WHO와 공동으로 1993년부터 모유수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매년 ‘엄마에게 친근한 일터’와 ‘아기에게 친화적인 병원’을 인증한다. 성동구도시관리공단처럼 ▶출산 후 최소 3개월 이상 출산휴가 보장 ▶모유수유하는 직원에게 하루 1시간 착유 시간 제공 ▶직장 내 혹은 직장 근처에 탁아시설 지원 ▶모유를 짜거나 보관할 수 있는 시설 제공 등 10가지 기준을 충족하면 인증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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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세프는 올해 ‘엄마에게 친근한 일터’ 30곳을 인증했다. 인증받은 이노션.

광고기획사 이노션에 다니는 조수현(31)씨와 최유리(30)씨도 회사 17층에 마련된 수유실 덕분에 7개월씩 모유수유를 했다. 다섯 평(17㎡) 남짓한 수유실에는 반쯤 누울 수 있는 소파 세 개와 착유를 할 수 있는 의자, 세면대·착유기·냉장고 등이 구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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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션이 임신한 직원에게 주는 전자파 차단 담요?배냇저고리 등 선물 상자.

이 회사에는 여직원만 접근할 수 있는 이런 수유실이 두 곳 있다. 2012년 생긴 이 수유실은 그간 20~30여 명이 사용했다. 서대원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은 “성공적인 모유수유는 엄마 혼자의 의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가와 기업이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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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세프는 올해 ‘엄마에게 친근한 일터’ 30곳을 인증했다. 인증받은 한국존슨앤드존슨의 모유수유실.

전문가들은 산모가 힘들다는 이유로 아기와 엄마를 떼어놓는 한국의 독특한 산후조리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많은 의료 기관과 산후조리원은 신생아실을 따로 두고 있다. 출산 후 같은 방에서 아기와 엄마가 붙어 있으면 자연스럽게 젖을 잘 빨게 된다는 것이다. 신손문 제일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의료기관 평가인증제도에 모유수유 권장 항목을 추가하면 많은 기관이 달라질 것이다. 또 모유수유를 권장하는 기관을 국가가 지원하고 출산 후 최소 3일 정도 산모가 아기와 같이 있으면서 겪는 불편함을 없애는 데 경제적인 지원을 한다면 모유수유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모유수유에 대한 교육과 전문적인 유방 관리도 필요하다. 요즘 여성은 과거와 달라진 식습관과 컴퓨터·피아노 등 팔을 많이 쓰는 환경, 스트레스 등 요인으로 과거 엄마들에 비해 유방 상태가 안 좋다. 압박을 받고 유착돼 딱딱해진 유방은 아기가 빨아도 스스로 젖을 생산할 능력이 떨어진다. 임홍 아이통곡 모유육아상담실 원장은 “유방을 본래 자연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전문적인 유방 관리가 필요하다. 유방을 본연의 자세로 만들어두면 젖량도 늘릴 수 있고 트러블을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엄마에게 친근한 일터’ 인증 기준 10가지

① 최소 3개월 이상 출산휴가 보장
② 모유수유 시 근무시간 조정 등 여건 제공
③ 하루 1시간 모유 수유·착유 시간 배려
④ 직장 내 또는 근처에 탁아시설 지원
⑤ 착유실과 보관 시설 제공
⑥ 모유수유 에 대해 긍정적 태도 갖도록 독려
⑦ 근무 환경을 깨끗하고 안전하게 유지
⑧ 여직원과 노조에 출산휴가 정책에 대해 알림
⑨ 육아휴직 후 복귀한 여성에게 완전한 취업 보장
⑩ 모유수유와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지원

자료 : 유니세프

서영지·백민경 기자 vivi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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