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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 칼럼

사드와 에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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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배명복
배명복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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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남의 불행에서 ‘대박’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영국의 경찰관이었던 제임스 매커믹이 그런 사람이다. 그는 24시간 폭탄 테러 공포에 시달리는 이라크에 폭발물 탐지기를 만들어 팔면 떼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아이디어는 적중했고, 매커믹은 돈방석에 앉았다.

 매커믹은 자신이 만든 폭발물 탐지기를 ‘에이드(ADE)’로 명명했다. 뭔가 있어 보이지만 ‘고급탐색장비(Advanced Detection Equipment)’의 머리글자를 땄을 뿐이다. 매커믹은 2007년부터 3년간 ‘ADE651’이란 모델명이 붙은 폭발물 탐지기 1500대를 이라크 정부에 납품하고, 총 5200만 파운드(약 765억원)를 챙겼다.

 에이드가 성능을 발휘했다면 이라크의 폭탄 테러는 확연히 줄었어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2007년 이후에도 이라크에서는 2000건이 넘는 폭탄 테러가 발생해 약 5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3일 바그다드 도심의 상업구역인 카라다에서는 이슬람국가(IS) 조직원의 자살폭탄 테러로 281명이 숨지기도 했다.

 매커믹은 1990년대 미국에서 ‘고퍼(Gopher)’란 이름으로 상품화됐던 20달러짜리 골프공 탐지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수맥 탐지기처럼 생긴 이 ‘장난감’은 공을 잃어버리는 주말 골퍼들에게 공을 쫓는 재미를 선사했다. 매커믹은 고퍼를 폭발물이나 마약류 같은 위험물질 탐지장비로 둔갑시켰다. 탐지하려는 물질의 성분 카드를 삽입하고, 기계를 작동시키면 안테나의 움직임을 통해 반경 600m 이내의 탐지 대상 물질 존재 여부를 미리 판별할 수 있다고 ‘뻥’을 쳤다.

 이라크 정부 관리들에게 합리적 의심은 처음부터 설 자리가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절박한 심정인 데다 뒷돈에 굶주려 있었다. 요식 행위에 불과한 시연회를 거쳐 이라크 정부는 수의계약으로 에이드 대량 구매를 결정했다. 원가가 150파운드(22만원)에 불과한 에이드는 세트당 최고 2만5000파운드(3680만원)에 팔렸다. 받은 돈의 75%는 리베이트 형태로 이라크 공무원과 경찰, 군에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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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매커믹이 영국 경찰에 구속되면서 사기극은 막을 내렸다. 그는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라크 정부는 한 달 전 카라다 자살폭탄 테러 참사를 겪고 나서야 에이드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사기와 부패가 결탁해 만든 ‘에이드 신화’ 속에 이라크는 애꿎은 국민을 희생시키고, 국고까지 낭비했다.

 에이드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 에이드는 처음부터 가짜였다. 이라크의 절망적 상황과 만연한 부패 구조를 희대의 사기꾼이 돈벌이에 활용한 것뿐이다. 사드는 미국 정부가 미사일방어(MD)라는 세계 전략의 큰 틀에서 고안한 무기 체계로, 미 굴지의 방산업체인 레이시언이 정부 주문에 따라 제작한 미사일 요격 시스템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사용해 보지 않은 채로 도입한 것은 에이드와 사드의 공통점이다.

 미사일 요격은 흔히 남이 쏜 총알을 내가 쏜 총알로 맞혀 떨어뜨리는 ‘기적’에 비유된다. 실제로는 더 어렵다. 미사일 탄두의 낙하 속도는 음속의 약 10배로 탄환보다 2~3배 더 빠르다. 따라서 날아오는 적의 미사일을 최종 단계에서 저고도 요격 미사일인 패트리엇(PAC)으로 요격하기 전에 그보다 높은 고도에서 미리 한 번 더 요격을 시도한다는 차원에서 사드의 이론적 유효성은 인정된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사드는 성능 테스트에서 90% 이상의 요격 성공률을 보였다지만 조작된 실험 조건에서 기록한 성공률일 뿐이다. 요격에 성공한다 해도 탄두를 완전히 파괴하지 못하면 부수적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근본적 문제도 있다. 미군과 레이시언은 탄두를 완전히 파괴하지 못했어도 탄도를 바꿔 목표 방어지역에 떨어지는 걸 막았다면 ‘임무상 요격 성공(mission kill)’으로 간주하고 있다.

 사드가 필요해지는 실제 상황은 전쟁 상황이다. 한반도가 사드의 실효성을 검증하는 무기 시험장이 되는 전쟁 상황은 아무도 원치 않지만 그전까지는 누구도 실효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사드를 둘러싼 효용성 논란의 근본적 아이러니다.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 이론상으론 도저히 질 수 없는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은 패했다. 과학에 대한 맹신과 무기에 대한 과신이 오히려 파국을 부를 수도 있다. 부질없어 보여도 마지막 순간까지 사드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합리적 의심을 편의적 침묵으로 대신한다면 에이드의 허망한 신화가 한국에서 재연되지 말란 법이 없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