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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회의원은 예외’ 고집하는 비뚤어진 정무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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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정무위 소속 의원들의 절반 이상이 국회의원에 대한 법 적용 예외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가 31일 정무위 여야 위원들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응답자 19명 중 9명(새누리당 6명, 더불어민주당 2명, 국민의당 1명)이 ‘부정청탁 금지’ 대상에서 국회의원을 제외한 조항 폐지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기타’라고 답한 4명 중 1명도 같은 입장이었다고 한다. ‘찬성’은 6명(새누리 2명, 더민주 2명, 국민의당 1명, 정의당 1명)에 그쳤다.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이 부정부패의 핵심 고리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19대 국회에서 뇌물수수 등 부패 혐의로 의원 체포동의안이 제출된 경우가 11차례나 됐다. 야당 원내대표까지 지낸 3선 중진이 3억원 가까운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충격을 주기도 했다. 20대 국회도 문을 열자마자 의원들이 친인척을 멋대로 의원실에 취직시킨 사실이 드러나 30명 넘는 비서진이 국회를 떠났다.

그런데 김영란법은 바로 이들 국회의원을 ‘부정청탁 금지’ 대상에서 뺐다. 언론인·사립교원까지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의원들이 스스로에겐 면죄부를 준 것이다. 공직자의 자녀·친척 특채와 4촌 이내 친인척 관련 직무를 금지한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법안 심사 과정에서 사라진 것도 마찬가지다. 특권 축소를 우려한 의원들이 이 조항을 통째 들어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기업이 공무원에게 로비를 할 길이 막히게 된다. 그런데 유독 국회의원만은 ‘공익 민원’이란 핑계 아래 청탁을 듣고 그 내용을 당국에 ‘전달’할 권한을 김영란법은 허용하고 있다. 자연히 기업들의 로비는 국회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의원들이 이권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김영란법의 취지를 퇴색시킨 장본인이 19대 국회 정무위다. 법안 심사 과정에서 ‘국회의원이 공익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를 예외 조항에 끼워 넣었기 때문이다. 이를 바로잡아야 할 20대 국회 정무위 위원들도 같은 특권의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이렇게 자정 능력을 상실한 국회라면 아무리 ‘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떠들어도 믿어줄 국민이 없을 것이다.

김영란법은 공직자·교원·언론인 등 400만 명 넘는 이들에게 엄중한 처신을 요구하는 법이다.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배우자가 흘려 들은 부탁이 부정청탁은 아닌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아야 한다.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감내해야 할 비용이다. 하지만 이 법을 만든 국회의원만 이런 부담에서 쏙 빠져나갔다. 자가당착의 전형이다.

국회의원은 자신들이 부정 청탁과 친인척 비리에 가장 쉽게 빠질 수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스스로 김영란법의 그물에 들어와야 한다. 마침 안철수·강효상 의원 등을 중심으로 국회의원을 부정청탁 금지 대상에 포함시키는 개정안이 마련되고 있다. 20대 국회가 진심으로 개혁에 뜻이 있다면 속히 김영란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이해충돌 방지’ 조항도 되살려야 함은 물론이다.